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Jan 31. 2022

1월 31일 최서진의 하루

퇴사자 모임 


오늘은 오랜만에 친한 지인들과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전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단톡방을 통해 안부를 묻고는 했는데 공교롭게도 단톡방 멤버 모두가 이번 설에는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싶기도 해서 나는 그들에게 모임을 제안했고 사람들도 밥이나 같이 먹자고 응답했다. 그중에서 시간이 되는 사람들을 추리고 나니 총 3명이 모일 수 있었다.


내가 지난번에 다닌 회사는 이제 성장하는 스타트업이었다. 아무런 시스템조차 없고 직책, 직무, 역량에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회사에서 주어지는 업무를 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언론에서 우리 회사를 좋게 다뤄주고 있어서 그런지 회사를 지원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만큼 뽑히는 사람도 많았다, 물론 그만큼 정조차 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시일 안에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는 곳이기도 했다. 일주일 만에 퇴사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봤다.


나는 회사에서 2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 나 역시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회사에서 버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음이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론플레이를 항상 하는 곳이었지만 내부에서 봤을 때는 비전 없이 그저 돈 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려는 회사의 방향성, 그리고 그 방향성조차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바꿔되는 경영진, 그럴수록 끊임없이 늘어가는 업무, 그 와중에 정치질이나 하고 있는 고인물 임원 등, 나를 힘들게 하는 요인은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마음에 맞는 동료들 덕분에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같은 팀원, 점심을 같이 먹으며 친해진 사람들, 퇴근 후 맥주 한잔하며 가까워진 사람들이 있었다. 회사 뒷담화를 하기도 하고 모자란 상사를 함께 욕하기도 하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특히 친해진 사람이 6명 정도가 되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나누는 사이까지 되었다. 


우리 대화 주제의 절반 이상은 회사와 상사 뒷담화가 되었다. 현수는 그중에서도 가장 회사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성민과 지은은 현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회사의 가장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되었다. 재웅은 조용히 우리의 말에 리액션만 해주는 친구였다. 민영은 그러한 이야기는 싫어했고 주식이나 투자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현아는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그만둘 거라고 말만 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부류였던 것 같다. 상사에 대한 욕도 하고 투자에도 관심이 있기도 했고 맛있는 집을 찾는 것도 좋아했기에 이를 공유하고 싶어 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회사 생활 내내 서로를 의지하고 말동무가 되어가며 함께 힘든 생활을 버텨냈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그만둔 것은 민영이었다. 우리 멤버 사이에서 가장 조용하던 민영이었지만 제 나름대로의 불만이 있었던 모양이다. 소문에 의하면 민영은 비트코인으로 꽤나 돈을 많이 벌었다고는 말도 있었다. 민영은 퇴사를 하자마자 우리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그다음에 현수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에서는 항상 불만을 이야기하는 현수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 실적을 핑계로 회사를 나가는 것을 몇 달간 꾸준히 압박했다. 현수는 처음에는 버티려고 했지만 결국 실업급여까지 받으면서 회사를 떠났다. 우리 멤버 중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현수가 나가자 우리들도 이제 회사를 나가 살 길을 찾아야겠다는 절박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수 다음으로는 지은, 그다음에는 성민 등 가장 불만이 있던 그룹이 회사를 떠났다. 현아는 계속해서 휴가를 내며 면접을 보러 다니더니 결국 좋은 곳을 구했다. 그렇게 멤버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고 나만 남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직처를 제대로 구하지 못 한 나는 한동안 회사에 계속 머물렀다. 단톡방은 여전히 있었고 회사 사람들은 나를 통해 여전한 회사의 불안함을 전해 들었다. 우리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이번에는 어떤 바보 같은 소리를 했는지 내가 전해주면 회사 사람들은 웃으면서 그 사람은 역시 아직도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곤 했다. 이제 참여자가 완전한 관찰자가 된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그저 남의 이야기로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몇 달 후… 우리의 대화는 완전히 끊기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것은 작년 12월이었다. 새로운 회사로 옮겼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새로 옮긴 곳도 뻔했고 이상한 상사들과 이상한 업무 지시는 이곳에서도 여전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예 다른 일을 찾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회사 이직을 핑계로 단톡방에 말을 걸었고 사람들은 나의 이직을 축하하며 언제 꼭 보자고 말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설 명절을 계기로 오랜만에 그들과 모일 수 있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현수와 현아였다. 성도 같도 이름도 비슷해서 남매가 아니냐고 놀리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었다.


“그냥 회사 다니고 있어요. 여기도 엉망인 것은 마찬가지네요. 현아 씨는 어때요?”


“현수 씨 회사도 그래요? 저희도 그래요. 요샌 회사가 내 일이 아닌가 싶어요. 다른 일이라도 찾아볼까 고민하고 있어요.”


현수와 현아 모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모두 퇴사를 하고 처음 하는 모임이라 예전처럼 예전 회사 욕하고 지금 다니는 곳이나 요새 사는 인생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이후 우리는 최근에 본 영화 이야기나 최근에 관심이 있는 것 등을 이야기했지만 서로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예전처럼 공통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는 없는 것 같았다. 



“… 뭐 여하튼 요새는 다른 일 알아보고 있어요. 일도 그런데 크로스핏을 요새 배우고 있는데 이게 저한테는 다른 삶의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어요. 평생 이 일만 하는 게 정답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항상 다음 플랜을 준비하던 현아는 지금도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뿐…. 



“일단 다녀야죠. 옮긴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회사에서도 지금 모임처럼 회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그중에는 창업을 한다는 사람도 있어서 그 사람이랑 가끔 주말에 만나서 사업 이야기도 하고 있어요.”


항상 그룹의 리더가 되던 현수는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새로운 그룹을 만든 모양이다. 그런데 현수 성격에 사업이라니…. 불만만 이야기하고 대범한 구석은 없던 현수라 사업을 한다고 하니 나는 그가 조금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음의 스탭을 준비 중인 그들에 비해 나는 아직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어 조금 씁쓸해졌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단톡방에 ‘오늘 봐서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시간 되면 만나요!’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냉동 만두를 만들면서 다시 핸드폰을 쳐다봤다.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메시지를 읽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이 현수와 현아였는지는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컴퓨터라도 하려고 책상에 앉는데 메시지 알림이 왔다.



“오늘 못 가서 아쉽네요 ^^.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은의 메시지였다. 곧이어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모티콘)”


현아의 메시지였다. 이후로는 어떤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들과의 인연은 이제 서로 안부를 묻는 정도에서 서서히 잊혀질 인연이 될 것 같다.

그냥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겠다.

이전 01화 2월의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