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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04. 2022

2월 4일 윤성훈의 하루

새로운 프로젝트

성훈이 새로 맡은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남들 다 하는 사업의 아이템을 그대로 가져와 별다른 창의성 없이 만들려고 하는 것이었고 깊은 고민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다음 달까지. 데드라인은 그렇게 빡빡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성훈은 군말 없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까라면 까야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자신이 저항한다고 해서 돌아오는 것은 성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업무 평가뿐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성훈은 한숨을 쉬고 일에 몰두했다. 성훈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만 했다. 보아하니 옆의 다른 팀원들은 불만인 것 같았지만 성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일의 책임은 자신이 아닌 팀장이 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안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성훈의 일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잠시 후, 팀장이 성훈을 불렀다. 팀장은 성훈에게 새로운 업무 지시를 했다. 성훈이 잠시 생각해봤는데 팀장이 방금 시킨 일은 그리 효율적이지 않고 지금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무언가 반발이라도 할까 하다가 성훈은 그만두었다. 설득하기도 싫었고 설득도 안 되는 상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성훈이 책임질 일은 없었다.


성훈은 항상 그런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성훈은 착한 사람으로 불렸다. 실제로 성품이 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남들의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훈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줬을 때 성훈을 착한 사람으로 불러줬다. 성훈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군대에 있을 때도 성훈은 부대에서 칭찬받는 병사였다. 선임들과 잘 지내는 것은 물론 간부들의 말도 잘 들었고 또 일도 곧잘 잘했다. 성훈은 부대에서도 착한 병사로 불렸다. 하지만 후임들은 성훈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성훈은 회사에서 항상 칭찬받는 사람이었다. 일처리에 있어 미숙함은 있지만 본능적으로 윗사람을 잘 따르고 그들이 하라는 업무를 어떻게는 해내는 모습에 상사들은 그를 좋아했다. 다만 본인이 무엇을 스스로 결정하는 데는 아쉬움이 있어서 리더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상사들이 성훈에게 가지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성훈을 끼워준 것도 그가 순종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상사들은 이제 일처리도 제법 빨라지고 상사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 어떻게든 처리하는 그가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빠른 시일 안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성훈도 그들이 자신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거기에 보답하고 싶어 했다. 


성훈은 업무 시간 내내 자신의 업무에 집중했다. 분명 옆자리 동료의 불만이 이해는 가지만 성훈은 자신의 일을 오늘 안에 어떻게든 끝마쳐야 했다. 성훈의 자리에는 키보드 소리만 들렸다. 


성훈의 정리한 자료를 팀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사실 이 일은 정말 쓸데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위에서는 또 좋아하는 것들이라 팀장은 성훈의 순종적인 성실함이 필요했다. 팀장은 성훈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남은 일들 마무리하고 주말이니 일찍 퇴근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팀장은 임원들이 있는 자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일을 마친 성훈은 그제야 잠시 휴식을 취했다. 다른 동료들이 성훈에게 잠시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말했다. 성훈은 보통 거의 휴식 없이 일을 하는 타입이지만 연휴가 끝나고 다시 주말을 맞이하는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동료들을 오랜만에 따라갔다. 

동료들은 팀장과 이번 프로젝트를 살짝 흉을 보기 시작했다. 성훈은 이런 대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팀장 앞에서는 다들 한마디 말도 못 하는 사람들이었고 설사 팀장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개선될 것도 아니었다. 정말 싫은 사람들은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냥 회사를 때려치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성훈이었다. 성훈은 먼저 자리를 일어나며 먼저 자리로 가겠다고 말하고 카페를 나왔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동료들의 말이 살짝 들렸지만 성훈은 개의치 않았다. 


자리로 돌아온 성훈은 잠시 음료수나 마시자는 팀장의 말에 웃으면서 따라갔다. 탕비실에 있는 아무도 안 먹는 오래된 음료수를 건넨 팀장은 성훈에게 힘들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잘하면 성훈에게도 좋은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훈은 그런 팀장에게 방금 카페에서 다른 동료들이 했던 말을 넌지시 말했다. 물론 불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고자질한 것에 가까웠다. 팀장은 한숨을 쉬며 그런 애들은 그냥 빨리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을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성훈이 있어서 회사가 굴러간다고 성훈을 칭찬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성훈은 다시 인정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일을 마치고 성훈은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따뜻한 방에서 쉬고 있으니 갑자기 프로젝트에 대한 걱정이 몰려왔다. 


‘이대로 가면 별로 좋지 못할 텐데….’


성훈은 순간 이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다시 정신을 차렸다. 어쨌든 자신은 회사의 방침을 따를 것이고 언제나 그래 왔듯 회사는 굴러갈 것이라 성훈은 생각했다. 


‘나는 그저 업무 지시를 따를 뿐이야.’


성훈은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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