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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05. 2022

2월 5일 정지혁의 하루

겨울 평양냉면

다시 돌아온 주말을 즐기던 지혁은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오랜만에 평양냉면을 먹기로 했다.

평양냉면 매니아인 지혁은 한때 주말마다 전국의 평양냉면 맛집을 찾아다니곤 했다. 최근 몇 년 간은 평양냉면에 대한 열정도 식어서 예전만큼 먹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평양냉면을 좋아했다. 


지혁은 오랜만에 자신의 형에게 평양냉면이나 먹자고 연락했다. 지혁이 사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사는 지혁의 형은 지혁만큼은 아니지만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형도 지혁의 연락을 받고 바로 나갈 수 있다며 자신이 차를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주말에 형제 둘이 밥을 먹게 되었다. 지혁의 형이 차를 가져오자 지혁은 바로 차에 올라탔다. 지혁의 형은 장소는 네가 정하라고 말했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지혁은 최근에 떠오르고 있다는 평양냉면 집을 떠올렸다. 전통적인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 입소문이 점차 퍼지던 곳이었다. 지혁의 형은 아무 곳이나 괜찮으니 배고프니깐 빨리 가자고 말했다. 지혁은 내비게이션에 위치를 입력했다.


평양냉면 집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게 근처로 가니 사람들이 꽤나 바글바글했다. 지혁의 형은 근처에 주차를 하고 갈 테니 먼저 들어가 있으라며 지혁을 내려줬다. 가게 종업원은 지혁에게 1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고 지혁은 일행이 올 거라 괜찮다고 대답했다. 지혁은 가게를 슬쩍 훑어보았다. 깔끔한 인테리어, 정갈한 메뉴판 등 지혁이 좋아하는 느낌의 가게는 아니었다. 그냥 요즘 생긴 평범한 음식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지혁은 맛은 그래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10분 후, 지혁 일행은 가게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다시 봤다. 평양냉면의 가격은 13,000원이었다. 딱 적당한 가격이지만 이 가격이면 그래도 유명하거나 지혁이 좋아하는 평양냉면 집을 갈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형은 별로 아랑곳하지는 않았지만. 형은 평양냉면 2개에 사이드로 수육을 먹을지 , 만두를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혁은 자신이 살 테니깐 수육이나 하나 같이 먹자고 말했다. 형은 미소를 지으며 평양냉면 2개와 수육을 시켰다.


밑반찬이 먼저 나와 지혁은 맛을 봤다. 그냥 평범한 맛이었다. 이윽고 수육이 나왔다. 가격에 비해 그리 푸짐하지는 않았지만 정석을 따라 만든 수육 같았다. 한 점을 집어 먹어본다. 계속 생각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맛있는 수육이었다. 배가 고픈지 두 점을 한 번에 집어 먹던 지혁의 형은 차를 안 가져왔으면 낮술이나 할 것인데 아쉽다고 말했다. 

냉면을 잠시 기다리며 지혁의 형과 사는 이야기를 잠시 했다. 지난 명절 때 잠시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형제 단둘이 대화를 하는 것은 또 오랜만인 것 같았다.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지혁의 형은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점심 먹고 오후에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지혁의 형은 지혁에게 요새 만나는 사람은 없냐고 물었다. 지혁은 작년에 헤어진 후로는 따로 만나거나 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일이 워낙 바쁘기도 하고 요즘 같은 시국에 따로 시간 내서 누구를 소개받는 것도 어렵다고 대답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도중 메인 메뉴가 도착했다. 지혁은 냉면을 지켜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면을 먹기 전에 먼저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한 입 마셔봤다. 평양냉면치고는 조금 간이 센 것 같았다. 매니아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약간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지혁은 이제 면을 먹어봤다. 면의 끈기와 풍미는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지혁이 생각하는 평양냉면의 맛보다는 보다 가벼운 느낌의 맛이었다. 맛이 없다고 할 수는 없고 맛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맛있게 먹는 사람이 많을 그런 정도의 냉면이었다. 

지혁은 형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으려고 형을 쳐다봤지만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형은 맛있게 먹고 있었다. 형은 유명한 곳만큼의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맛있다고 말했다. 지혁은 냉면에 대해 계속 아쉬워하면서 일단 배가 고프니 계속해서 먹었다. 지혁은 냉면을 먹으며 잠시 옛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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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혁의 아버지는 평양냉면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평양냉면은 커녕 냉면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형제가 어린 시절부터 형제를 데리고 서울 시내의 유명한 음식집을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에는 평양냉면집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는 평양냉면집을 잘 가지를 못 했다. 어린 형제는 평양냉면의 맛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혁은 아예 평양냉면을 싫어했다. 하는 수 없이 형제의 아버지는 함흥냉면이나 다른 맛있는 음식을 사주었다. 

지혁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도 평양냉면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 친구들과 우연히 평양냉면집에 가서 냉면을 먹었지만 지혁과 친구들은 이런 거를 왜 먹는지 모르겠다며 다시는 오지 말자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 지혁이었지만 대학을 졸업하면서 입맛이 약간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평양냉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양냉면의 매력에 빠지면서 평양냉면 특유의 맛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전국 평양냉면 맛집을 돌아다녔고 언젠가 평양의 옥류관을 가는 버킷리스트에 넣을 정도로 평양냉면 매니아가 되었다. 지혁의 형도 지혁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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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을 다 먹은 형제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혁의 형은 지혁의 표정을 보고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구나?”라고 말했다. 지혁은 자신의 입맛에는 별로이지만 과거에 평양냉면을 싫어했던 자기 입장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런 냉면이면 그래도 평양냉면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될 것 같은 맛이라고 평했다. 지혁은 평양냉면에 대해 엄격한 것은 아니어서 이런 것도 평양냉면의 일부일 것이라 생각한다고 형한테 말했다. 형은 그런 지혁을 보고 웃으면서 “까다로운 녀석…”이라고 말했다.


지혁의 형이 지혁을 집 근처까지 데려다줬다. 지혁은 형에게 오랜만에 형이랑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어 좋다며 다음에도 또 같이 먹자고 권했다. 형은 동생에게 “어릴 때는 맨날 자기만 보면 싸우려도 달려들던 녀석이 변했다.”라고 말하며 동생에게 인사하고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밖은 무척이나 추웠다. 냉면을 먹어서 그런지 지혁의 몸은 더욱 차가웠다. 지혁은 ‘그래도 이게 겨울냉면의 매력이지, 다음 주에는 내가 좋아하는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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