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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07. 2022

2월 7일 박민지의 하루

부산행


아침


오늘의 일정은 매우 간단했다.


오후 2시까지 부산역으로 가서 오후 3시에 있을 강의실로 가서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내가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고?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내 주제에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날의 일


처음 이번 강의에 대한 연락을 받은 것은 한 달 전의 일이었다.


평소처럼 방송을 준비하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광고 문의나 스팸 전화라 생각하고 전화를 무시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전화가 왔고 나는 전화를 아예 끄고 오늘 할 콘텐츠에 대한 고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날 밤, 방송을 마치고 핸드폰을 켜니 어떤 문자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박민지 양.  박현준 교수예요.  전화가  되어서 문자 남기니 보면 연락 요망


뭔가 친근하게 나를 대하고 싶었지만 이내 사무적인 말투로 끝나버린 이상한 문자였지만

대학교 시절 존경하던 교수님의 연락이었다.


교수님이 갑자기 무슨 일이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교수님 수업을 들었고 대학원 진학 상담 때문에 교수님께 연락을 했던 것이 전부였다. 갑자기 교수님이 나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답변은 드리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밤이었다.



교수님께 죄송하다는 문자를 드리며 내일 오전에 가능하신 시간을 말씀해주시면 연락드린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날 교수님의 답변은 없었다. 아마도 주무셨을 것이다.



다음 날 오전 늦게 일어나니 교수님의 문자가 와있었다.


“오전 수업이 있으니 오후 1시쯤에 연락 줘요”


무슨 일인데 이렇게 나의 연락을 기다리는지 의아했지만 시간 맞춰 연락드린다는 답변을 하고 나는 어제 방송을 했던 내용을 보며 밀린 편집 작업을 시작했다.



오후 1시가 되자 나는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박민지입니다. 잘 지내셨죠?”


아아 민지 , 어제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해요. 다른 게 아니라 요새 민지 양이 유튜브 활동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어


나는 뭔가 통화가 길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서 용건만 간단하게 듣고 싶었다.


“아.. 네 교수님 그렇습니다. 혹시 어떤 일 때문이실까요?”


 미안해요, 내가 바쁜 사람을 두고 너무 용건을 제대로   했네. 내가 지자체에서 하는 사업을 돕고 있는데 거기서 유튜버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교육하는 일을 하더라고. 거기 커리큘럼 중에 유튜버가 직접 와서 강의를 하는 내용이 있는데 혹시 민지 양이 해줄  있나 해서.. 물론 페이는 거기서 챙겨줄 거예요”


전혀 상상도 못 한 제안이었다.

그리도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그.. 그렇군요. 교수님. 제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데 언제까지 답변을 드리면 될까요?”


“내가 이번 주 목요일까지는 답변을 줄 수 있다고 해줘서 혹시 가능하면 내가 담당자를 연결해줄게요”


목요일이라니… 오늘이 수요일인데 이 분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


“아하.. 교수님 그렇군요. 그럼 할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담당자님 연락처 주시면 제가 자세히 이야기하고 결정하고 싶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이 대답이 최선이었다. 담당자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거절할 생각이었다.


“고마워요, 민지 양. 내가 담당자한테는 연락해놓을게요. 담당자가 따로 연락이 갈 거예요. 너무 두서없이 부탁해서 미안하고 언제 학교 오면 내가 밥 살게요”


“아닙니다. 교수님. 제가 나중에 학교 찾아뵙고 식사 대접할게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딱 이 정도 선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교수님께 인사를 드렸다.



휴우… 강의라니… 유튜버가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크리에이터 교육이 생긴 것은 알고 있었다.

내가 엄청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강의를 해도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한편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나의 꿈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었다. 대학원도 그렇기에 가려고 생각해보았지만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 취업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취업이 생각보다 잘 안 되자 나는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심심풀이였고,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버릇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에게도 재능이 있는지 나의 말과 고민상담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고 서서히 나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게임도 하고 시시한 농담도 하고 브이로그도 찍으며 나는 서서히  삶을 즐기기 시작했다. 엄청 큰돈은 아니었고 정기적인 수입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수입이 생기며 집에서도 나보고 취업을 하라는 소리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점도  일의 장점 중의 하나였다.


내가 그냥 좋아서 한 일인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뭘 가르쳐줄 수 있을까?


이런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이 말하던 지자체의 담당자였다.


담당자는 나에게 이메일 주소를 물어보고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전달해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화로 간단히 내용을 소개했다.


한 달 후 부산에서 강의를 한다는 굉장히 구체적인 내용이었고 강의에 따른 교통비와 페이 등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말하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일정이나 페이, 모두 괜찮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바로 하겠다고 말해버렸다.


기뻐하는 담당자의 모습이 핸드폰 너머로 상상이 갔다.


마지막으로 나는 어떤 것을 이야기하면 되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특별한 것은 없고 그냥 내 이야기를 하고 수강생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자유롭게 답변해주면 된다고 했다.


걱정한 것만큼 그리 어렵지는 않았고 내 이야기만 하면 되는 거라 크게 부담이 가지 않았다.


담당자는 이메일로 자세한 내용을 전해준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는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덜컥 승낙한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면 어떻게 될까?


잡생각들이 들었지만 무를 수는 없었다.


그냥 조용히 다녀오자… 그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어디서 알았는지 구독자들은 나에게 어디서 강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잘하고 오라고 응원을 해줬다. 그러면서 언젠가 팬미팅도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나는 웃으며 언젠가 뵐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의미 없는 멘트만 칠 뿐이었다.





강의 전 날


나는 그제야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강의를 하게 되었고 내일 한다는 내용


교수님은 문자를 하나 보내며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주셨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했다.




기차 안



강의 당일


나는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으로 간 김에 뭔가 재미있는 콘텐츠도 찍을까 싶어서 다양한 기획을 해봤지만


지금은 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긴장되기만 했다.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뭘 물어볼지,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내가 자격이 있을지… 이런 생각들이 나를 다시 지배하기 시작했다.




강의장


강의를 하기로 한 건물에 도착하자 나는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담당자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담당자는 오늘은 10 정도가 참여했다고 말했다.   정도면 굉장히 많이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지각하던 사람들도 오늘은 일찍 왔다고 한다.


내가 뭐라고… 이 많은 사람들이….


강의장에 들어서자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반겨준다.


물론 모두가 나를 알아보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아저씨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눈치였고 어떤 분은 내가 생각보다 젊다고 큰 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굉장히 민망한 순간이었다.



강의 시작


시간이 되자


담당자는 강단에 서서 나를 소개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인사하고 오늘 말씀드릴 내용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했다.


그러는 사이에 세 분이 더 들어왔다.


나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 심호흡을 크게 하였다.



이것도 방송이다. 방송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다


악플을 남기는 사람도 있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다


오늘은 그런 사람은 없다.


단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조금 유명한 유튜버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의 롤모델은 아니지만, 나는 적어도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다.


평소의 방송처럼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이런 생각을 빠르게 하고 나는 다시 뒤돌아


웃으며 이야기했다.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유튜브 채널 민자씨를 운영하는 박민지라고 합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꼭 따라가야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듣고 흘려보내셔도 됩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들보다 먼저 유튜브를 시작했을 뿐입니다. 오늘은 그 경험담과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감정들, 그리고 제가 실수했던 내용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말이 진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드리는 말씀이 여러분들이 앞으로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의를 마치고



강의를 어떻게 마쳤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다시 기차 안이었다.


다만 모두들 나의 말에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다는 것만 기억났다.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교수님의 문자였다.


오늘 잘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고생했다는 문자였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여러모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오늘은 조금이나마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했고

오히려 내 삶에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다.



오늘 방송은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하루 일과는 여기서 끝이지만 나의 오늘 방송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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