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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28. 2022

2월 28일 김동윤의 하루

마지막 출근일이자 첫 출근일

동윤은 오늘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출근했다. 특별히 할 일이 있어서 일찍 온 것은 아니었다. 단지 회사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조금 여유롭게 하고 싶어서 일찍 온 것이었다. 동윤이 이른 시간에 출근하자 항상 회사에서 가장 빨리 출근하는 사람 중 하나인 현수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동윤은 현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잠시 후 다른 사람들도 출근했고 다들 동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동윤의 마지막 출근일이었다. 지난 5년 간 다녔던 회사를 뒤로 하고 동윤이 새로운 출발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몇 달간 친구와 준비하던 사업을 이제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동윤은 익숙한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동윤은 회사를 둘러보며 지난 5년 간의 일을 떠올렸다. 처음 면접을 보던 날, 첫 입사를 해서 업무에 익숙해지던 때, 사이가 안 좋았던 동료와의 에피소드, 성과를 인정받던 날, 하루에 수십 번씩 퇴사를 고민하던 때, 회사의 성장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때 등 수많은 감정과 일이 있었던 곳이었다. 동윤은 막상 회사를 떠난다고 하니 시원섭섭했다. 회사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는 자신의 미래도 걱정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동윤의 상사가 그를 불렀다. 

홍부장은 동윤을 아끼는 사람 중 하나였다. 홍부장은 동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물론 동윤의 미래에 건승을 빌어주기도 했다. 홍부장은 동윤에게 커피를 사주며 언제든 다시 돌아오고 싶을 때는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말했다. 동윤은 웃으며 자기가 성공하면 홍부장을 모셔가겠다고 답했다. 홍부장도 웃으며 자신이 아는 동윤이라면 충분히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부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동윤은 인사팀으로 가서 필요한 자료들을 건넸다. 그리고 동윤은 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동윤의 자리에는 선물이 있었다. 동윤이 물어보니 팀원들이 준비한 선물이라고 했다. 동윤은 왜 이런 걸 준비하냐고 하면서도 팀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팀원들은 회사를 나가도 꼭 연락하라고 동윤에게 말했다. 동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 또 회사를 찾아오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응답했다. 동윤은 자신과 항상 의견 충돌이 잦았던 명진도 아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윤은 명진에게 고맙다고 말했고 명진은 동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윤은 다시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짐은 진작에 챙겨놔서 정리할 것은 거의 없었다. 동윤은 회사 컴퓨터를 내규대로 정리했는지를 마지막으로 체크했다. 그리고 회사 보안팀으로 가서 필요한 절차를 끝냈다고 말했고 보안팀 직원 하나가 동윤 자리로 가서 마지막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다.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직원은 동윤에게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말했다. 동윤은 이제 끝이라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에서 동윤이 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났음을 홍부장에게 말했고 홍부장은 동윤에게 이제 집에 가도 된다고 말했다. 

모든 짐을 챙긴 동윤은 회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홍부장을 비롯해서 동윤과 친했던 직원들이 그의 마중을 나왔다. 동윤은 사람들을 향해 지난 5년 간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며 90도로 인사했다. 회사 동료들은 그런 동윤의 건승을 진심으로 빌어줬다. 1층으로 와서 회사 건물 밖으로 나가니 동윤의 마음은 더욱 미묘해졌다. 동윤은 회사를 떠나는 것이 좋지도 싫지도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저 허무한 기분이었다. 


오늘은 동윤의 마지막 출근일이었지만 첫 출근일이기도 했다. 밖으로 나온 동윤은 바로 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호는 동윤의 어린 시절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이자 동윤의 창업 파트너였다. 동윤은 민호에게 항상 가던 카페로 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몇 달간 주말마다 민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카페였다. 아직 동윤과 민호의 회사는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았다. 몇 달 동안 사업 아이템을 정리하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만 주말마다 만나다 보니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민호는 먼저 지난 1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집에서 일하면서 동윤과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았다. 동윤은 퇴근하고 나면 그때부터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었고 늦은 새벽에 잠을 청하는 날도 많았다. 결국 동윤은 민호처럼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그래야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민호는 아직 회사 사무실도 못 구했으니 조금 더 있다가 나오라고 했지만 동윤은 민호만 혼자 짐을 짊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왔어?”


카페에는 민호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는 동윤의 얼굴을 슬쩍 보고는 다시 눈앞에 있는 노트북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는 바쁘게 무언가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이제 정말 김사장이네? 야 이제 너네 여기 임대료 좀 내라”


카페 사장 성민이 동윤에게 장난을 치며 그에게 인사했다. 사실 동윤과 민호가 자주 가던 카페는 학교 선배인 성민의 가게이기도 했다. 성민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일찍부터 카페를 하고 있으니 동윤과 민호에게는 창업 선배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카페를 전전하며 사업 준비를 하는 동윤과 민호의 사연을 들은 성민은 그러지 말고 자신의 카페로 와서 편하게 일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매출도 좀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형, 항상 고마워요. 오늘은 커피 말고 좀 비싼 거 좀 먹을게요.”


동윤이 성민에게 인사하며 가게 메뉴판을 보며 말했다.


“비싼 거 말고 임대료 좀 내라니깐. 야, 너네 사무실 구할 거면 이 근처로 해라. 너네 회사 직원들 여기 오면 내가 좀 할인해줄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에휴, 사무실 어디로 구해야 할지 그것부터 막막하네요. 아메리카노랑 이거 케이크랑 쿠키도 2개 주세요”


“비싼 거 먹는다더니 아메리카노랑 케이크냐?”


“죄송해요. 나중에 돈 벌면 형님 아예 근사한 식사 대접할게요.”


“농담이다. 인마. 우리 사이에 무슨. 그냥 주변에 여기 홍보 좀 많이 해줘. 요새 손님 없어서 내가 먼저 죽게 생겼다. “


성민의 카페에는 동윤과 민호 외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 처음 카페를 오픈했을 때는 그래도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주변에 대형 카페들이 많이 생기고 코로나 시국이라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손님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커피맛은 보장할만해서 단골들은 많았고 배달로 주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임대료가 비싼 동네라 임대료를 내기는 조금 빡빡했다. 그나마 성민의 집이 조금 여유로운 편이라 버티는 것이라고 성민은 솔직히 말하기도 했다.


“요샌 정말 다들 어렵네요. 예전에는 사장님 소리 듣는 형이 정말 부러웠는데 창업하려고 보니깐 형이 존경스러워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보면 무언가를 계속 타이핑하던 민호가 말했다.


“존경은 무슨. 그나마 집에서 빌린 돈이랑 그동안 좀 모아둔 돈으로 버티는 거지 뭐. 이젠 그것도 어렵다. 올해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어 이젠.”


커피를 내리던 성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면 저희가 잘 될 테니깐 저희 회사로 오세요. 형님 마케팅 잘하시잖아요?”


노트북을 보던 민호가 성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케팅을 공부한 성민은 졸업 후, 이름이 알려진 마케팅 회사에 취직해서 입사 1년 만에 꽤나 주목받는 루키로 성장한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만은 그렇게 3년 간 일을 하다가 회사에 회의를 느끼고 퇴사 후 카페를 차렸다. 


“에이 무슨. 마테팅 잘하면 지금 카페 홍보도 잘했겠지 뭐. 다 예전 이야기야. 그냥 위에서 시키는 거 잘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이랑 한 거지. 그리고 너네는 내 후배들 아니냐? 너네가 더 잘하겠지. 자 여기, 주문하신 음료 나왔다.”


성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음료를 민호에게 갖다 주며 말했다. 그리고 의자를 가져와 동윤과 민호 사이에 앉았다. 


“그래서 지금은 뭐하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민도 동윤과 민호의 사업 내용에 조금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의 회사에 함께 합류하는 것을 아예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부지원받을 것들이 있어서 그거 서류 쓰고 있어요. 귀찮은 게 많아요. 이미 썼던 거 계속 쓰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남의 돈 받는 건 월급쟁이나 사업 쟁이나 마찬가지네요.”


자료를 작성하느라 바쁜 민호를 대신해서 동윤이 말했다. 그러면서 동윤도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고 있었다. 


“근데 너는 오늘 왜 온 거냐. 오늘 퇴사하는 날이라며? 그냥 오늘 같은 날은 좀 쉬지. 내일도 쉬는 날이고. 앞으로 바쁘게 일할 건데 뭐하러?”


“그래, 동윤아. 오늘은 괜찮으니 3월 2일 날 출근해. 그날 사무실 좀 같이 보러 다니자.:”


성민이 퇴사하자마자 여기로 달려온 동윤에게 묻자 민호도 거들면서 말했다. 


“에이, 어떻게 그래. 너랑 나랑 공동대표인데. 너만 고생시키기는 어렵고. 그리고 쉬는 날이 어딨어. 앞으로는 달려야지. 지금 뭐 체크하고 있어?”


동윤은 민호의 노트북을 보며 대답했다. 그때 배달앱에서 주문했다는 알림이 카페에 크게 울려 퍼졌다.


“어이구. 손님이시네. 고생들 해라. 나도 고생하러 간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주문 더 하면 땡큐고.”


동윤은 그런 성민의 모습을 잠시 쳐다봤다. 호기롭게 출발한 창업의 길, 당장 내일은 어떻게 될지, 성민처럼 계속 버틸 수 있을지, 아니면 뉴스에 나오는 잘 나가는 기업들처럼 현재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빛을 볼 날이 올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명확한 것이 없었다. 그저 당장 오늘, 그 오늘을 버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길로 가게 된 자신의 상황이 무섭고도 설렜다. 


“지금 쓰는 거 빨리 쓰고. 전에 말하던 그 아이디어 좀 더 생각해봤어. 그것도 이야기하자.”


동윤은 타이핑을 하며 민호에게 말했다. 


“아 그래. 그렇지 않아도 나도 주말 사이에 좋은 생각이 나서. 이야기해보자. 고맙다.”


“아니야. 내가 고맙지. 우리 싸우지 말고 회사 잘 만들어보자.”


“안 싸울 수가 있나. 의견 충돌은 좋은 거지. 우리 전에도 언성 높인 적 있잖아? 나쁜 게 아니야. 더 잘하려고 그런 던데 뭘. 그게 회사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거고.”


“네가 나보다 더 사장님 같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고맙다.”


“너답지 않게 실없는 말은 하지 말고 이거나 빨리 쓰자. 오늘은 일찍 퇴근시켜줄게요. 김사장님.”


“저도 사장님이거든요? 성민호 사장님.”


“알겠습니다. 이거 빨리 쓰시죠.”


동윤은 민호가 자신의 창업 파트너라는 것이 좋았다. 뭐든 꼼꼼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민호의 성향은 동윤에게는 부족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민호 역시 동윤이 자신이 가지지 못 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보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동윤은 민호가 사업을 하자고 했을 때 크게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허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동윤이었지만 그는 오늘만큼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접어두고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오늘은 동윤의 마지막 출근일이자 첫 출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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