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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wave Mar 05. 2019

두 번째 퇴사는 망설이게 된다.

출근길 JOB 생각 .35


파랑새는 없다.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퇴사를 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왔건만 이전의 고통과는 다른 또 다른 난관이 나를 막고 있었다.


이전 회사의 가장 큰 단점은 고용 불안정이었다. 외국계 기업이기도 했고 트렌드에 민감한 분야이기에 자칫 잘 못하면 후배들에게 그리고 경쟁업체에게 밀리기 쉬웠다. 성과 위주의 평가가 이루어졌기에 젊은 친구들이 빠르게 승진하여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반면 (내가 그랬다.) 위의 선배들을 보면 50세가 되기도 전에 대부분 다 잘려나갔다. 임원들의 평균 나이가  40대였으니 그 이후는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특히나  영어를 주로 쓰는 회사였기에 젊고 똑똑하고 외국에서 대학을 나온 이들이 주로 임원 자리에 올랐다. 나처럼 국내 대학을 나온 이들은 그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외국계라 국내 대학 학벌에 대한 편견은 없었지만 역시나 외국에서 대학을 나온 게 유리했다.


그래서 이직을 준비하던 중 국내 기업인데 고용안정성이 좋은 곳을 발견하고 운이 좋게 이직에 성공했다. 이전 회사보다 연봉도 낮았지만 회사의 안정성을 봤을 때는 괜찮아 보였다. (이때는 내가 운이 좋은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직 후 배치된 부서의 팀장을 파악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왜 내 전임자가 퇴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의 이직 이유가 고용의 불안정과 불안한 미래 때문이었다면 내 전임자의 이직사유는 사람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아침 7시에 나와서 사람을 들들 볶는데 매일이 피가 말렸다.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 팀장의 업무 스타일이 자기 밑에 사람 중에 가장 만만한 직원 하나를 골라 지속적으로 갈구고 쪼는 것이다. 그럼 이를 본보기 삼아 다른 직원들은 알아서 잘하게 만드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리더십(?)이 특징이였다. 일명 나는 한 명만 패 전법.


그렇게 나는 계속 시달리고 또 시달렸다. 지난주에는 A로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이번 주는 왜 A로 했냐고 B로 하라고. 그래서 B로 하면  너는 왜 시키는 대로만 하냐고. 네 생각은 없냐고. 그래서 B'로 수정하면 A로 하라고 본인이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왜 말을 안 듣냐고...


정말 아주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나도 경력 10년 차에 내 분야의 나름 전문가인데 이쪽은 1도 모르는 팀장이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이래라저래라 하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다.(회사 내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분이었으며 다른 직원들도 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와중에 예전에 모시던 상사가 다른 곳에 계셨는데 신규자리가 났다며 나에게 오퍼를 주셨다. 연봉이나  복지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이곳으로 이직할 때 고용안정성을 빌미로 연봉을 거의 절반 깎고 왔는데 본인 회사로 이직할 경우 지금 받는 연봉이 아니라 이전 회사에서 받던 연봉에 더 얹어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까지.


그때 당시 나는 옮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상사분과의 관계도 좋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도 적었다. 하지만 망설였다. 그리고 결국 옮기지 않았다. 아직도 또라이 같은 상사를 모시며 힘겹지만 말이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파랑새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보다 높은 연봉에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똑같이 고용안정성에 불안해할 것이고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힘겨워할 것이고. 또 그곳에 지금 같은 또라이가 없다는 보장이 없었다. 물론 내가 모시던 분은 괜찮은 분이었지만 그분이랑 평생 같이 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오늘도  나는 그 또라이를 이기려고 바득바득 출근한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 랑새는 내가  만들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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