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책 데이트] 함께 읽는 시
모두들 폭염 속에서 저만의 피서법을 터득한 듯 각자 분주한 토요일을 보냈다. 나는 종일 거실 정리를 하느라 땀을 빼서 시원하게 목욕하고 책을 읽었다. 남편은 폭염 속에 맛이 갔던 컴퓨터를 고치느라 땀을 뺐고, 컴퓨터 해체 후 청소기까지 동원해 먼지를 빨아들이고 청소를 하더니 컴퓨터를 되살려냈다. 중3, 초5 딸아이는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가서 시원하게 숙제도 하고 중간중간 잠도 자고 책도 읽다가 왔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러 작은 도서관에 갔다가 3권의 책을 업어왔다. 생각지도 못한 득템이었다.
다시 가족들이 모여 저녁을 먹고, 홈트레이닝 운동을 하고, 빨래를 정리하고, 목욕을 했다. 아이들은 아빠와 TV 시청을 했다. 좋아하는 걸그룹이 ‘아는 형님’에 출연한 모양이다. 나는 벽걸이 에어컨이 가동 중인 시원한 거실 한편 내 책상에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기분 좋게 책을 읽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딸과 함께 잠들기 전 베갯머리 책 읽기를 했다. 거실에 함께 누워 뒹굴뒹굴하며 책을 펼쳐 가슴에 와서 박힌 문구나 문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금요일에 읽는 가족의 시]를 펼쳤다.
부부
문정희
부부란 여름날 멀찍이 누워 잠을 청하다가도
어둠 속에서 엥 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나머지를 어디다 바를까 주저하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함께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젤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손은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 보는 사이이다
서로를 묶는 것이 거미줄인지
쇠사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부란 서로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오도 가도 못한 채
죄 없는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멋들어지고 실감 나게 현실적으로 정의 내리는 시(詩)가 있어서 참 반갑다. 내가 문정희 시인의 ‘부부’를 펼쳐 읽으니, 딸내미는 엄마 아빠를 연상한 듯 ‘쿡쿡’ 웃으면서도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조용해진다.
“엄마,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어.”
“엄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떤 느낌이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은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없어.”
무한 질문과 고백이 이어진다. 결혼과 연애는 분명 다른데, 딸내미는 연애의 무덤인 ‘결혼’과 ‘부부’에 관한 시에서 ‘연애’를 떠올리고 있었다. 좋은 시절, 좋은 감정을 떠올리는 것이 지금 내 딸에게는 가장 필요한 순간 이리라. (다행이다. 티격태격 우리 부부의 모습이 내 딸에게는 좋은 감정을 떠올리는 매개가 될 수 있어서 말이다.)
“좋을 때구나~인생은 길어.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날 거야. 그때 되면 그 사람에게 너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다 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날지도 몰라. 사랑을 하면 뭘 하지 않아도 예뻐지지. 그리고 싸우기도 하겠지. 지금 엄마 아빠처럼. 그래도 그 시절을 겪고 나면 또 한 뼘 자라나 있을 거야.”
깊은 밤으로 가는 길목, 폭염을 뚫고 내게 왔던 베갯머리 책 읽기는 달콤하게 사랑의 감정을 품은 채 그렇게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