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대화 일기] 글쓰기와 설거지
청소년 공부방 복지사로 일한 지 6 개월째. 나는 오후 1 시에 출근해서 밤 9 시에 퇴근한다. 일어날 때 일어나고, 잘 때 자는 단순한 삶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요즘 들어 일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삶의 균형을 잡는데 신경을 쓴다. 집에 돌아와서는 직장에서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퇴근이 늦은 엄마를 기다리며 올빼미형으로 생활리듬이 바뀌어가고 있다. 휴대폰 의존도도 급격하게 높아졌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아이들과 저녁을 차려 먹고 혼자 안방에서 TV를 보거나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아이들도 각자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제안을 했다. 가족끼리 잠들기 전 30 분 정도 휴대폰을 멀리 하고 침묵으로 책을 읽는 ‘묵독 파티’를 갖자고 했다. 아이들이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책을 읽었다.
우리 집 식탁에는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관계 >, 나쓰카와 소스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 그림책 이노우에 마사지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 >, C.J. 슈나이더 <엄마는 누가 돌보지 >가 한 몸인 듯 뒹굴고 있다.
조용히 침묵을 벗 삼아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정적을 감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 읽고 싶은 책 하나를 놓고 읽다 보면 어느새 하루 일과를 마감하는 하품이 물려 온다. 다음번에는 ‘낭독 파티’를 열어야겠다. 자신이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에 밑줄을 치고 밑줄 친 구절을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고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을 가져보는 거다.
얼마 전 예능 프로에서 가수 비가 나와서 아내 김태희와 결혼해서도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유명 연예인 부부도 결혼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나는 남편에게 물었었다.
“부부간에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까?” “당신은 뭘 할 때 가장 행복해?”
내 질문에 남편은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난 설거지할 때 보람을 느껴”
피곤에 절어 있는 나를 대신해서 부엌 설거지를 해두면 내가 기뻐할 모습이 떠오르면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우리 남편이 이렇게 자상할 때가 있었다니 새삼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난 혼자 있을 때 책을 읽고 글을 써.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하게 정리가 돼”
“몸을 과격하게 한번 움직여봐. 땀도 나고 한결 몸이 가볍고 개운해”
미뤘던 일들을 꺼내보자.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 혼자는 혼자대로 좋고, 둘이면 둘이어서 좋고, 셋이면 셋, 넷이면 넷이어서 모두에게 좋은 일들. 혼자 하다 아깝다면 다 같이 하고, 다 같이 하다 힘들면 혼자서 편하게 해도 되는 일들. 주변을 둘러보면 꼭 있다.
‘부부 둘만의 시간 혹은 혼자만의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호기심에서 시작된 내 궁금증은 남편과의 대화에서 해답을 얻었다. 부부간의 대화의 질이 곧 행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남편의 설거지는 타인을 돕는 성취감과 보람을 동시에 얻게 해 주는 행복의 열쇠였다. 앞으로도 남편에게 설거지할 기회를 많이 많이 만들어 줘야겠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