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대화 일기] 설 명절 이야기
황해도가 고향인 시아버지 덕에 우리는 지하철 7 호선을 타고 공릉동으로 설을 보내러 간다.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일가친척들과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으로 조금은 어색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어느덧 주부 17년 차.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이 제법 어울리는 것 같다. 부지런한 시어머니 덕에 나물과 전을 부치고, 식구들과 함께 먹을 불고기, 잡채, 도토리묵무침 요리를 준비하는 정도의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 이제 이 정도쯤이야 슬슬 여유를 부리는 내가 참 대견하다.
설날 주방은 여전히 시어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여자들로 비좁다. 남자들은 상을 펴거나 음식을 나르고 밤을 깎는다. 아이들은 설날 세배로 벌어들인 용돈 수입에 입이 귀에 걸린다.
이번 설은 특별한 이벤트도 없고 큰 일도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주말 내내 우리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신학기를 맞은 두 딸들과 그동안 미뤄뒀던 방안 정리도 하고, 오랜만에 집밥도 먹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핀다.
“고독사가 문제야. 앞으로 1 인가 구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더 걱정이다.”
“노인 고독사의 80%가 남자들 이래. 남자들이 여자들처럼 수다를 떨기를 해. 쓸데없이 술이나 먹고 말년을 쓸쓸하게 보내게 될 확률이 높아.”
“요즘 명절 증후군이 여자들한테만 있는 게 아니야. 아이들도 잘 알지도 못하는 먼 친척들이 와서 몇 등 하냐고 꼬치꼬치 물어서 스트레스가 심하대. ”
남편이 식탁 앞에 둘러앉은 식구들에게 굵직한 사회적 이슈와 달라진 설 풍경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나도 말을 이어받았다.
“인생은 원래 고독한 거야. 안 그래? 혼자 왔다가 혼자 가니까”
“여자들 죽기 전에 남자들도 가족들과 나눠 먹을 수 있는 음식 하나 배웠으면 좋겠어"
내 걱정과 반격이 반갑다는 듯 츤데레 남편이 결정타를 날린다.
“그래, 당신은 고독사 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 있잖아. 알았지?”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입으로 ‘뚜 ~뚜루뚜뚜 ~’ 배경음악을 깔아준다.
“오오 ~아빠 지금 엄마 편드는 거야? 으이그 닭살 ~~~”
매년 맞이하는 설 풍경. 비슷비슷한 듯 조금씩 다르게 가족들만의 독특한 스토리를 품고 있다. 우리 세대를 지나고 나면 미래세대의 명절 풍경은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조금 더 많이 쉬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들로 채워지기를 바라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