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리스라도 괜찮아

[부부 섹스 일기]

by 써니B

아침나절 동네 친구와 강변을 걷는다. 나뭇잎들은 햇살을 받아 점점 더 진한 초록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도 제각각 잰걸음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아침 햇살이 이리 밝으니, 올여름은 얼마나 길고 더울까?’ 언제 왔다 갔는지 몰랐을 만큼 유난히 짧았던 봄의 끝자락에서 아쉬움을 달래 본다.


길게 뻗은 가로수를 따라 걷다 보면 한없이 힘들게만 느껴졌던 걱정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다.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지고 빨라진다. 머리와 등과 허리는 기분 좋게 땀에 젖었고, 내 마음도 차분하게 카페 한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요즘 우리 부부관계에 대해 궁금해한다. 시시콜콜 부부관계 횟수까지 물어본다. 나는 부부관계 횟수까지 밝혀야 하냐며 둘러댔지만, 솔직하게 다 이야기를 했다. 난 아직 생리 중이고 남편은 정관수술을 하지 않았다. 출산 이후 자연스레 서로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임신의 공포 때문에 부부관계를 안 한 지 6-7 년은 족히 된 거 같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다.


요즘 주변에서 부부관계를 걱정하는 소리를 부쩍 많이 듣게 된다. 부부관계가 너무 없는 거 같다며 남편과 손잡고 병원 상담을 받으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둘 사이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잘 살고 있는 건지 괜히 불안해지기도 했었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남편과 섹스를 안 해서 불행하니?’ 그렇지는 않다. 인간은 모두 섹스의 산물이고 , 섹스를 하며 활기차게 사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의 만족도를 섹스 횟수로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 요즘 나의 생각이다. 정답은 없다. 부부 사이 친밀감을 높이는 방법은 섹스 말고도 아주 다양하다.


분명한 것은 부부관계가 없다고, 연애 때처럼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애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둘 사이에 서로 다른 욕구가 존재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서로 대화할 용기와 진심만 있으면 된다. 어떤 결론이든 두 사람의 대화와 합의에 의한 것이라면 문제 될 건 없다.


어떤 사람은 부부관계를 할 때만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육체적인 사랑, 정욕적인 사랑이다. 관계적인 사랑, 생활적 사랑은 아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가정생활연구센터 오웬 모건은 부부가 성관계를 갖는 시간은 그들의 일생 중 0.1 퍼센트도 채 안 된다고 했다. 섹스할 때만 배우자를 사랑한다면 그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 99.9 퍼센트는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부부는 섹스를 하지 않는 99.9 퍼센트의 길고 긴 시간 동안 사랑해야 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남편과 손잡고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오르가슴을 느낀다. 등산할 때 내 손을 앞에서 끌어주는 것도 좋다. 하산해서 먼지 터는 기계를 내 엉덩이에다 흔들어 대는 남편의 장난도 밉지 않다. 잠잘 때 내 발 한쪽 남편 발 사이에 턱 하니 얹어도 뭐라 하지 않는 남편이 고맙다. 남편이 “이건 뭐냐?”며 능청스럽게 찰랑거리는 내 뱃살을 만져도 허용해준다.


지금의 나에게는 ‘섹스 잘하는 남편 ’보다는 ‘대화하고 공감하고 용기를 주는 남편 ’이 더 좋다. 섹스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대화가 막히면 못 살 거 같다. 섹스를 해야 행복하다는 강박을 벗어던지니, 섹스를 안 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불타는 금요일 , 요즘 야근으로 지친 남편을 마사지로 풀어주고 싶다. 그러다 빈틈을 노려 0.1% 몸의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오늘 밤 이부자리 대화의 주제는 ‘몸의 대화’다. 희열을 느껴보고 싶다. 설사 몸의 대화가 성립되기 전 먼저 잠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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