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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

by 다정한 여유

나는 급한 사람이다. 마음이 급해서 행동이 빠르다. 성미가 급해서 걸음이 빠르다. 생각이 급해서 말이 꼬인다.


어렸을 때, 나는 뭐든 느긋한 아이였다. 특히 음식을 무척 천천히 먹었는데 부모님은 재촉하지 않고 언제나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엄마는 내 손을 쓰다듬으시며 옛날 어른들이 손가락이 길면 게으르다고 하시더니 딱 맞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잠 많고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늘어져 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증권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내 식사 속도가 현저하게 느리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칼국숫집에 갔던 어느 날, 느리게 먹는 데다 뜨거운 것을 못 먹어 겨우 두 입 먹고 물 마시려 젓가락을 놓았을 뿐인데, 팀장님이 다 먹었으면 가지, 하고 일어나셨다.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누구도 내 식사속도를 맞춰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돈 벌기 위해 일하는 회사원에게 점심시간은 맛있는 밥 먹는 시간이 아니고 배 채우는 것임을 인식했다. 그날 이후 어느 식당을 가든 늘 같은 메뉴를 시켰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식당메뉴에는 비빔밥이 있다. 아침에 시작한 주식시장은 점심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다른 회사에 비해 더욱 점심을 빠르게 먹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됐다. 신입 행원시절도 비슷했다. 점심은 노상 씹는 둥 마는 둥이었다. 밥 먹기 전, 갱의실 바닥 온돌을 켜고 같은 건물 꼭대기에 있던 식당으로 올라갔다. 5분 만에 밥을 먹고 내려와 좁은 갱의실 바닥에 모로 누워있었다. 까딱하면 데겠다 싶도록 온도를 올린 바닥에 누워 극세사 담요를 덮고 쉬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다. 그래야 오후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역류성 식도염을 얻고 나서야 아주 나쁜 습관이었음을 알았다.


살면서 성격이 급해진 것인지, 몸 속 어딘가에 있던 유전자가 뒤늦게 발휘된 것인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욕심이 많아서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시간은 한정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짧은 다리와 좁은 보폭이 아쉬워 축지법을 배우고 싶을 정도로 종종거리며 여기저기 쏘다닌다. 문 밖을 나서면 두세 군데 들르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그런 반면 약속 없는 날에는 딴판이다. 집에서 내내 늘어져 지낸다. 해야할 일을 끝까지 미루고 미루다 느지막이 시작한다.

나는 과연 게으른 사람일까, 부지런한 사람일까. 나는 성격이 급한 사람일까, 느긋한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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