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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Apr 19. 2024

중요한 건, 해보는 것!

워셔액이 부족하다는 알람이 왔다. 평소였다면 남편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럼 남편은 카센터에 방문하라고 했을 것이다.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은 만큼 안 해보던 일에 과감하게 도전 중이다. 운전한 지 10년 정도 되었지만 워셔액을 바꿔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차는 왠지 내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혹은 카센터에 일임해 왔다. 곰곰이 따져보면 운행거리는 몰라도 운행 횟수는 남편보다 내가 더 많을 텐데 차에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나다.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는 운전하는 나에게 집중하느라 차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못했다. 차선을 언제 바꿀지, 문화센터에 가서 주차는 어떻게 할지, 집에 오는 길에 언제쯤 우회전 차선을 타야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오토로 되어 있는 헤드라이트 키가 언제 꺼졌는지도 모른 채 저녁에 집에 돌아오다가 따라오며 빵빵, 클랙슨을 울리는 택시아저씨에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친절하게 알려주셨지만 그걸 어떻게 켜는지 몰라 운전대를 부여잡고 덜덜 떨며 집에 왔다.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운전자들이 놀랐을는지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다. 운전은 조금씩 익숙해졌지만 차를 바꾸고 이사를 하며 다시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또다시 차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워셔액 교체를 검색해 보니 아주 쉬워 보인다. 보닛을 열고 워셔액 넣는 곳을 찾아 그냥 콸콸 붓기만 하면 끝? 오오. 이건 할 만하겠다 싶었다. 그동안 왜 시도조차 안 해봤던 걸까. 솔직히 보닛 여는 버튼을 처음 봤다. 차에서 내리면서 갑자기 눈에 띄는 조그마한 버튼과 운명처럼 마주쳤다. 보닛이 열린 모양이 그려진 직관적인 표시였다. 오, 이거구나. 쿠팡에서 워셔액을 주문했다. 여러 개씩 사면 더 쌌지만 혹시 몰라 일단 하나만 주문해 본다. 햇살이 좋은 날이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보닛 여는 버튼을 누르니 퉁, 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소리가 난다. 보닛 앞으로 가서 들어 올려보려고 한참 씨름했지만 안 된다. 음, 아, 이건 예상에 없는 일인데 뭐가 문제지. 차 종류를 자세히 써서 보닛 여는 법을 검색해 볼까 하다 한 번 더 해본다. 가운데 쪽에 웬 버튼이 눌러지며 위로 쭈욱 올라간다.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어색하게 움직이는 로봇의 가슴팍에 있는 네모난 문을 열면 복잡한 기계들이 들어있던 만화인지 영화인지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건가? 색이 비슷하지만 다르다. 브랜드마다 워셔액 색이 다른가?? 한참 남았는데 왜 알람이 왔지? 뭔가 이상할 때는 찬찬히 살펴보거나 의심을 하며 멈췄다가 갈 필요가 있다.  하마터면 그냥 열고 워셔액을 부어버릴 뻔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워셔액은 아닌 걸로.

이게 뭔지 어디에도 쓰여있지가 않다. 소금통, 설탕통 구분이 안될 때 손 끝으로 찍어먹어 보던 방법을 써볼 수도 없고 어쩌나. 저 구석에 있는 통 위에 와이퍼 표시가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와이퍼 근처에 워셔액 통이 있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뚜껑을 연다. 안 쪽은 보이지만 않지만 워셔액을 콸콸 쏟아붓는다. 한 통이 다 들어가려나 몰라서 얼마 안 남았을 때 속도를 늦췄다. 얼마나 채워졌는지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렵지만 한 통은 다 들어갔다.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보닛을 닫고 출발한다. 방금 전까지 보닛도 못 열어놓고 닫는 것은 꽤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 혼자 뿌듯하다. 시원하게 나오는 워셔액을 보니 또 한 번 뿌듯하다. 평소보다도 더 창문이 잘 닦이는 것 같기도 하다.

아쉬운 것은 쿠팡이 제일 싼 줄 알고 꼼꼼히 검색 안 하고 워셔액을 산 것이다. 후에 검색해 보니 워셔액은 1-2천 원 한다는 글도 있던데 내가 주문한 것은 대단한 기능이라도 있는지 무려 7천 원이나 줬다. 남편말로는 자사몰에서 5천 원에 판다고 한다. 뭐 배송비 생각하면 쬐꼼 싼 거 같긴 한데 비싼 종류인가 보다. 조금 시무룩했지만 그동안 남에게 의지하던 문제를 혼자 해결했다는 사실은 건재하다.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닌 일들도 해보기 전에는 어려워 보인다. 시도하기 두려운 감정이 앞선다. 예전에는 뭐든 해보고 도전하고 여기저기 관심을 가졌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있던 자리에 그대로 머물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이 많으신 분들께 새로운 것을 소개할 때면 언제나 답답함이 가득했다. 나는 그런 거 안 한다고, 원래 하던 것만 하겠다고 하실 때 이해를 못 했다. 조금만 익히면 이전보다 훨씬 편해질 수 있는데 왜 안 하려 하실까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려면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깨닫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도전에는 이전에 했던 노력의 배가 필요했다. 세월은 사람 앞에 점차 두터운 벽을 쌓아놓는다. 한 번도 부숴본 적이 없다면 그 벽을 깨는데 상당한 힘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얇을 때 일단 들이받아야 한다. 틈이라도 만들어 놔야 한다. 아니면 어느 순간 철옹성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항상 배우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아는 것은 늘 의심하고 모르는 것을 향해 과감하게 나아가고 싶다. 워셔액을 바꿔보려 마음먹지 않았다면 과연 보닛버튼이 눈에 들어왔을까. 늘 같은 곳에 있던 버튼을 난 언제쯤 알아차렸을까.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날카롭게 알아차리는 감각을 살려두어야 시야가 좁아지지 않을 것이다. 기회가 주어져서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시도하다 보면 이전에 눈에 띄지 않던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는 말은 실체 없는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다. 두드려본 사람이 깨친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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