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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06. 2024

승준과 윤혜

'새엄마는 별을 가로채려다가 실패하고 마을에서 쫓겨나고 마을의 밤은 끝나게 된다.'


윤혜와 승준은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고도 한참 앉아있었다. 학교 근처에 생긴 멀티플렉스 극장에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하는 관이 따로 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승준을 따라 둘은 공강시간에, 학생처 근무가 끝나고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와 물음표가 가득한 윤혜 얼굴을 보고는 승준이 슬며시 웃음을 터뜨렸다.

"너 영화 하나도 이해 안 됐구나?"

창백한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 웃음기 없는 입꼬리, 가느다란 콧날의 윤혜는 예리한 분석에 일가견이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단순하고 둔한 편이다. 사람의 표정에서 마음을 읽어내는 것에 소질이 없는 윤혜와 달리 승준은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다들 표정이 별로 없다고 하는 윤혜도 승준의 눈에는 오히려 미묘한 표정변화가 눈에 띄었다. 윤혜는 부러 말하지 않는 것까지 알아채는 승준이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윤혜는 별생각 없이 보는 액션영화가 좋았다. 철학적인 내용이 많고 메타포가 가득한 독립영화는 너무 어려웠다. 영화를 좋아하는 승준은 자신의 해석과 평론가들의 해석과 대조해 보는 것을 즐겼다. 캐릭터 분석부터 감독이 이전에 찍었던 영화, 출연배우가 그동안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까지. 영화얘기할 때만큼은 승준은 윤혜의 표정변화를 모르는 듯하다. 신나서 이야기를 하는 승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승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축구선수를 하던 승준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부상을 입고 그만뒀다. 미련이 남은 듯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덕분인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었을 뿐인데 멀리서 오는 사람도 승준을 보면 시선이 한참 동안 머문다. 처음에 윤혜는 그런 승준과 다니는 것에 어깨가 으쓱했고 시선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승준을 쳐다보는 눈길은 늘 윤혜에게 옮겨오며 끝이 났다. 그런 시선들이 윤혜 어깨를 움츠러들게 했다. 승준에게 가는 시선이 싫어지자 끝이 없어서 재밌던 영화평론이 조금 지겨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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