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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07. 2024

기억에 남는 생일

7월 초가 생일인 윤혜는 6월 중순부터 설렜다. 친구들과 왁자지껄 파티하는 것도 아니고 생일마다 특별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생일이 좋았다. 가족들과 미역국을 먹고 작은 케이크에 촛불을 불 때도 좋았고 이수와 함께 학교 앞 파스타집에서 2인 세트를 시켜 세트에 포함된 와인 한 잔 마셨을 때도 좋았다.

21살 생일 전날, 자기 전에 통화를 하던 수혁은 윤혜에게 다음 날 연락을 줄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모아둔 설렘이 폭발이라도 하는 것 같았고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뛸 수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다음 날 오전에 계절학기 수업이 모두 끝나고 집에 간 윤혜는 제일 좋아하는 원피스를 꺼냈다. 시원한 소재의 남색 원피스는 적당히 파인 브이넥에 연한 베이지색의 카라가 달려있어 윤혜의 인상을 부드럽게 해주었다. 무릎보다 살짝 올라간 길이는 윤혜의 하얗고 가느다란 다리를 돋보이게 했다. 눈에 진저섀도우를 바르고 워터프루프펜슬로 아이라인을 평소보다 길게 그렸다. 속눈썹을 잘 집어 올리고 진한 갈색 마스카라를 아래속눈썹까지 살짝 발랐다. 일 년에 몇 번 사용하지 않아 거의 새것인 코랄치크로 마무리했다. 화장한 덕분인지 어쩐지 윤혜 빰이 발그레했다.

하숙집 방에서는 에어컨을 세게 틀기가 부담스러워 근처 커피숍으로 나왔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아이보리핸드백에 겨우 들어간 단편소설집을 꺼내 읽었다. 5시가 되어 가도록 수혁은 연락이 없었다. 눈으로 읽는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 책을 덮었다. 복수전공을 하는 경영학과 마케팅 수업에서 팀플을 하다 만난 복학생 수혁은 저음에 울리는 목소리였다. 윤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의 참여가 저조해서 어쩌다 둘이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윤혜에게 자꾸 전화해서 뭘 하냐고 물었다. 윤혜는 별로 할 말이 없어 길지 않은 대답을 했는데 말을 계속하며 통화를 이어가는 쪽은 수혁이었다. 어느새 윤혜가 익숙해져서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을 때, 수혁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윤혜가 냉정하게 연락을 받지 않자, 수혁은 정리할 참이었다고 했다. 며칠 뒤 수혁은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윤혜가 좋아하는 마가렛 꽃다발을 주었다. 윤혜는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에게 이렇게 마음을 쉽게 여는 사람인 건지 이수와 싸우고 연락을 안 한 지가 한 학기가 되어가서 마음이 허해서 그런 건지 헷갈렸다. 중요한 건 먼저 연락하는 빈도수가 윤혜 쪽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다.

책을 덮은 윤혜는 팔뚝에 오소소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배가 고파져 티라미수를 하나 시켜 먹고 리필한 아메리카노를 다 먹고 나니 윤혜만 남아있었다. 시간이 안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밤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윤혜는 커피숍을 나왔다. 집에 오고 나니 티라미수에 촛불이라도 꽂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윤혜가 기억하는 최악의 7월이었다. 그 덕분에 이수와 다시 연락되었으니 아주 최악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윤혜는 기억을 바꿨다. 후에 그 얘기를 들은 이수는 열을 냈다.

"중간에 전화 한 번을 안 하고 기다린 거야? 너도 진짜 대단하다. 나중에라도 전화해서 따지지 그랬어."

"그러게, 왜 그랬을까? 바보 같이."

혹시라도 못 온다고 할까 봐 두려웠다고 이수에게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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