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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08. 2024

윤혜가 꾼 꿈

어느 공주가 화려한 결혼식을 한다. 겹겹이 쌓인 레이스 소재의 머메이드라인 드레스를 입고 작은 큐빅이 잔뜩 박힌 은하수 같은 베일을 쓰고 있다. 아름다운 공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고 성대한 결혼식은 끝이 난다. 공주와 왕자는 사계절 내내 따뜻한 섬나라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어둑어둑 신혼 첫날밤이 찾아온다. ‘헉, 내가 공주가 아니라 왕자야? 이게 무슨 일이야? ’ 자신의 위치를 깨달은 윤혜는 당황스럽다. 갑자기 현실을 찾듯 모기장처럼 치렁치렁한 캐노피를 걷으며 꿈에서 깼다. 휴, 다행이다. 평생 못할 경험을 꿈에서 할 뻔했다.

“와, 엄청 신기한 꿈이다. 이런 꿈 얘기는 처음 들어봐."

이수는 밥 먹으러 가는 내내 신기하다, 이상하다 중얼거렸다. 욕구불만인 거 아니냐, 네 안에 또다른 네가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보라며 갖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꿈해몽을 아무리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는다. 누구에게 물어야할까 감도 오지 않는다. 아직도 손끝에 레이스가 느껴지는 듯 해서 묘한 기분이 발끝에서 올라왔다.


"윤혜 너 뭐 먹을거야?"

"나는 라면."

"넌 맨날 라면만 먹더라. 나는 오늘 뭐먹지. 알밥 먹어야겠다. 여기 알밥 은근히 실해."

둘은 학생식당에서 오랜만에 저녁을 먹는다. 기억하기 싫은 지독한 여름이 지날 때쯤, 개학을 앞두고 이수는 윤혜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짜고짜 수혁과 너 사귀는 거냐 안 사귀는 거냐 물었다. 학교에 왔다가 수혁을 보았고 그 옆에는 팔짱을 낀 여자가 있었다고 했다. 팔짱낄 수도 있는거지 뭐, 되지 않는 말로 답을 했다. 윤혜는 수혁이 마가렛꽃다발을 가지고 왔을 때부터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수에게도 자신에게도 이제야 인정한다. 윤혜를 또렷이 보고 있던 검고 확실한 사실을 애써 부정했던 것은 수혁에 대한 마음이 이미 커져 버려서였을 것이다. 먼저 다가온 것은 수혁이었는데 발 빼지 못한 것은 자신이 되어버린 상황이 언짢았다. 그럼에도 다 꺼져버린 불씨에 희망을 걸며 뻔한 드라마 속 결말이 아니길 바랐다. 아직 채워야 할 복수전공 학점이 가득한 것이 이 시점에서 가장 불행한 사실이었다. 이수는 왜 따지지 않냐고, 네가 그런 태도라 수혁이 그랬을 거라는 말까지 해가며 열불을 냈지만, 윤혜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럴 거였다면 애초에 윤혜는 생일날 혼자 카페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윤혜는 그런 자신이 익숙하고 편했다. 언제부터 윤혜의 탑은 비뚤어지기 시작했을까. 지금 다 무너져버렸는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지 윤혜는 알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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