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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11. 2024

초여름 - 승준과 윤혜

윤혜는 여름밤 데이트가 좋다. 해가 지고도 한참 동안 환한 여름밤이 좋다. 일 년에 두어 달은 활동 시간을 늘려 산다. 열대야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초여름 밤이 윤혜가 사계절 중 가장 아끼는 시간이다. 평소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윤혜지만 초여름 밤은 예외다. 윤혜 옷장에는 초여름밤 치장을 위한 옷이 빼곡하다. 오늘 윤혜는 스퀘어넥 민소매 원피스를 꺼낸다. 발목에 끈이 있는 하얀 샌들을 신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드문 여름 바람에 원피스 끝자락이 나달거리며 종아리를 간지럽힌다.

윤혜를 따라 승준도 여름 한정 야행성이 된다. 두 마리 여름 철새의 오늘 저녁 메뉴는 파스타다. 자주 가던 생면 파스타 가게가 장소를 옮겨 재단장 후 다시 오픈하는 날이다. 윤혜는 바지락 알리오올리오를 시키고 승준은 볼로네제파스타를 시킨다. 승준은 윤혜가 알려준 여름밤 음료를 두 잔 시킨다. 얼음이 들어있는 차가운 모스카토다스티다. 와인을 즐기지 않는 승준이지만 여름밤에 마시는 차갑고 달달한 화이트와인은 더위를 몰아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파스타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공원이 있다. 언덕을 조금 오르면 있는 공원에서는 도시의 야경이 보인다. 캄캄해진 하늘에 야경의 끝자락이 닿아있다. 여기저기 박혀있는 별들이 내려와 도시의 불빛이 된 듯 경계가 모호하다. 늘 타인과의 경계가 뚜렷한 윤혜는 다 품어버린 까만 여름하늘이고 싶어 여름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 끝이 모호했지만, 승준과의 경계를 쉽게 허물어버린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여름밤을 좋아해서. 하필 초여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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