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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10. 2024

기억에 남는 후배

고등학생 이수는 오늘도 뛴다. 점심시간이면 1분이라도 더 놀기 위해 늘 뛰어다닌다. 오늘은 농구대 하나를 차지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도록 피구인지 농구인지 헷갈리는 경기를 했다. 그 덕에 옆 반 남자애들의 원성을 샀다. 안 그래도 몇 개 없는 농구대인데 예상하지 못한 패거리에 빼앗긴 게 억울했을 것이다. 이수는 중학교 때 배우 레이업슛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160 후반에 머무르는 키가 아쉬워 배웠는데 결국 170은 되지 못했다. 생각보다 너무 재밌다며 내일도 하자고 애들이랑 속닥이고 있는데 예비종이 울린다.

"야, 달려!! 다음 시간 국어야."

빡빡하기로 소문난 국어 시간이다. 늦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에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이 코너만 돌면 된다. 신나서 코너를 돌았는데 웬 벽과 부딪혔다.

"엇,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하얀 벽이 말을 했다. 2학년에 키가 제일 크다고 소문난 녀석이었다.

"아, 뭐야. 조심해야지. 됐어, 괜찮아."

민망함이 몰려왔다. 이수는 말을 마구 내뱉고 교실로 급히 갔다. 앉자마자 종이 울렸다. 너무 급히 달려왔는지 빠르게 뛰는 심장이 쉬이 제 속도를 못 찾는다.

'아니 고등학생이 향수를 뿌려도 되는 건가?'

땀 냄새에 반쯤 섞여 있던 우디향이 아직 코끝에 있다. 다음 날부터 그 2학년은 이수를 볼 때마다 꾸벅 인사를 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던 나날이 지났다. 졸업식에 저 멀리서 친구들이 떠미는 2학년이 느껴졌다.

"선배, 졸업 축하드려요." 이번에도 꾸벅 인사를 하고는 말없이 뭘 안겨준다. 핑크빛 장미 한 송이에 유칼립투스 두 가닥이 함께 포장되어 있다.

"누구? 후배? 같이 사진 찍어줄게, 서봐봐."

떠미는 엄마 말에 얼결에 사진을 같이 찍었다. 나중에 인화된 사진을 보니 상당히 어색하다. 그래도 둘 다 웃고 있다. 그 이후로 이수는 유칼립투스를 볼 때마다 우디향과 함께 졸업식이 떠오른다. 후각이 오감 중에 가장 빠르게 감정을 자극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니, 왜 하필 오늘 늦잠이냐고! 뛰자, 뛰어."

대학생 이수는 뛴다. 오늘 채플에 늦으면 다음 학기에 두 번씩 들어야 한다. 쓰러지더라도 들어가서 쓰러지겠다는 각오로 달린다. 이수가 들어온 뒤 강당 문이 잠겼다. 급히 마시는 들숨에 우디향이 가득 들어온다. 이수는 반사적으로 돌아본다.

"이수 선배, 아직도 뛰어다니세요?"

2학년이 웃으며 이수를 보고 있다.

'뭐야, 얘가 왜 여기 있지. 근데 내 이름 알고 있었네?'

image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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