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들의 엄마라는 기적, 너희들이 내 아이들이라는 기적
아이들을 좋아한 건 아주 어릴 적부터였다. 엄마의 지인들이 아기를 데리고 집에 오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조카들을 업어주고 먹이고 놀아주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놀이였다. 그때는 그게 다인 줄 알았다. 아이란 늘 웃고 바쁘고 예쁘고 귀여운 존재라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예쁜 모습만이 아니라 괴로운 모습까지, 그 무게까지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을. 아이가 울부짖을 때, 그 옆에서 껴안아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 순간마다 나를 겸손으로 이끄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들이 우울에 잠길 때면 나도 같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순간마다 오히려 내가 버틸 힘이 생기는 것이 신기했다. 아이를 지키려면 내가 먼저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힘 덕분에 사회생활도 덜 힘들어졌다. 예전 같으면 남의 시선 한마디에도 흔들렸을 텐데, 아들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나니 세상의 무게가 예전만큼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 마인드가 생겼다.
나는 오래전부터 유쾌하고 귀여운 할머니로 늙고 싶었다. 나이와 주름을 핑계 삼지 않고 농담 한마디로 사람들을 웃게 하고, 작은 일상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런 할머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 소망을 잃지 않는 것도 자식 덕분이었다. 아들의 아픔이 '병'임을 이해하고,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그렇게 다짐하고자 하는 훈련 속에서 나는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살아오면서 고난은 늘 있었다. 부모가 다투는 모습이 그럴 때도 있었고, 없는 형편이 짜증 날 때도 가끔 불쑥.
그러나 그때마다 할 수 있는 만큼 애쓰고 뛰어넘은 나의 사소한 경험들이 나를 지탱했다. 초등학교 시절, 촌뜨기였던 내가 전학 간 작은 도시의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구연동화를 준비해 오랬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창작동화를 써 갔고, 뜻밖에도 전교생 앞에서 읽어보라는 칭찬을 받은 일이 있었다. 부끄러움, 괴로움을 이기면 보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마음에 새겼다. 고등학교 때는 줄넘기 2단 뛰기 수행평가 때문에 죽어라 연습해 하나도 못 넘던 내가 만점을 받은 일. 농구 슛 다섯 개를 넣어야 A라는 기준 앞에서 열심히 연습했지만 겨우 B를 받았지만 최선을 다한 내가 마냥 기특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밥집 알바를 시작했다가 하루 만에 포기했다. 창피했지만, 그 부끄러움이 다시는 쉽게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루 씩 백 번 포기하면 백일은 일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에 또 도전하고 나를 시험했다. 하루이틀 알바에서 일주일 알바, 한 달 두 달 알바로 점점 길어졌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자랐다.
아들이 공부를 잘하던 아이였기에 대학을 포기했을 때는 모든 문이 닫힌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절망감을 오래 붙잡지 않기로 했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대학이 아니어도 이 넓은 세상은 다 우리 아이들의 무대이고, 그 무대 위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은 무한하다고 믿기로 했다. 한정된 길을 걷지 않아도 아이의 삶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다짐하기로 했다.
오늘 아침에는 먹고 싶던 소시지가 없다고 짜증을 내던 아이였지만, 그러나 나는 안다. 30분만 지나면 화낸 게 미안하다며 사과할 아이임을. 엄마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은 ㅡ그깟 소시지가 문제니? 있는 거 그냥 먹자.ㅡ하며 말하는 게 아니라 그때까지 기다리고 안아주고, 다른 먹거리를 차려주는 게 내 몫이었다. 아픈 아이에게 수치심까지 주지 않겠다고,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아프지 않았다면 달라질 얘기다. (버릇 나빠지게 엄마가 이런다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저 우울증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방을 쓰레기로 만들던 아이가 언젠가부터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씻지 못해 누워만 있던 아이를 겨우 겨우 설득해서 목욕시켜 주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샤워를 한다. 웃음이 사라진 집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던 아이가 운전 강습을 받고 면허시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기적이 멀리 있는 걸까. 나는 기적이 내 곁에 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엄마라는 삶을 사는 것이 기적이다. 이혼이란 시련으로 ㅡ나만 잘하면 가족을 변화시키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것ㅡ이라 믿었던 내 자만심을 겸손으로 바꾸어 준 것도 기적이다. 매 번 파도처럼 다가오는 고난 끝에 기쁨과 휴식이 있다는 기적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다. 그것으로 오늘을 산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한없이 부족한 내게 와준 것.
그게 내겐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