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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n 02. 2021

잊으려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누군가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있다와 없다는 공생한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누군가 머물다 떠난 자리일까.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리일까.

당신의 마음 속 빈자리는.

-<생각이 나서> 황경신


Q. 생각하지 않으려 한 사람이 있나요. 


Don't think of an Elephant!


A. 미국의 인지언어학 교수인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책을 냈습니다.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말라는 순간 바로 그 대상이 생각난다는 역설적인 상황인 것이지요. 부정을 하려는 건데 오히려 역효과를 보고 마는 겁니다. 학창 시절 헤어진 연인 때문에 힘들어하던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예전엔 잊으려고 술을 마셨는데, 이젠 술만 마시면 생각나서 너무 힘들다고 말이죠.  


누군가 생각하지 않으려 한 사람, 물론 있습니다. 진짜 그 이름만 들어도 불쾌해지고, 그 옛날 안 좋았던 기억이 되살아 나서 아예 삭제해 버리는 경우지요. 보통 이런 경우엔 높임도 낮춤도 아닌 통칭으로 씁니다. 아, 그 인간? 이렇게요.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원리라는 물리적 명제까지 가진 않더라도 압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 모든 책임이 그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을요. 부부싸움만 쌍방의 잘못이 아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차단 또는 삭제 등의 단계에 가기까지 수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나도 잘못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지요. 하지만 고심 끝에, 내가 그렇게 조치를 취하건 안하건 상대가 알게 되는 경우는 드물 테니 (애당초 그렇게까지 연락을 살갑게 하는 사이도 아니었으니까요), 결국 제 심신의 안녕을 위해 조치를 내립니다. 그러고 속으로 생각해요. 그 인간은 애초에 나를 고려하지도 않았을 거야 라고요.


그리고 그때 당시 모자랐던 저의 모습, 부족한 인격,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긁어 부스럼을 만든 실수 등을 밑거름 삼아 앞으론 조심하자는 다짐을 합니다. 한편,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라더라, 첫인상이 끝 인상이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등의 온갖 의구심이 제 마음의 발목을 잡습니다. 제가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고, 자기반성의 거울을 마주합니다. 불편했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민망하고 창피함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이라도 그러지 않고 사는 게 어디냐 하며 스스로를 달래 봅니다.


그러다 보면 과거 찌질하며 원하지 않았던 모습의 그 사람 또한 결국 나였음을 받아들이고, 어깨를 툭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지요. 그렇게 과거에 사로잡혔던 발목은 자유를 얻습니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그런 부류가 아닙니다. 내 정성을 쏟은 사람에게서 이유도 모른 채 관계가 끊어졌을 때 덮쳐 오는 허무함과 상실감이지요. 


정성이라는 건 다름 아닌 시간입니다. 내 시간을 들인 겁니다. 밥을 먹고, 선물을 사 주고, 문자를 보내고, 편지를 쓰고, 어딘가를 같이 놀러 가고 한 그 모든 것은 결국 내 돈이 아니라, 내 시간을 쓴 것입니다. 돈은 썼어도 때가 지나면 다시 법니다. 돈은 통장에도 넣어둘 수 있고, 금고에 보관할 수도 있어요. 필요한 때마다 꺼내 쓰는 게 가능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아요.


시간은 일회용품입니다. 재사용도 안 되고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지나가면 다시 붙잡지 못합니다. 추억은 그래서 시간을 먹고 자라고, 시간이 있어 의미가 생깁니다. 단 한 번의 화염 속에 휩싸이는 강렬한 기억이든, 가랑비에 촉촉이 젖어 들어 시나브로 알아차리는 자각이든, 누군가와의 추억은 인생의 스탬프를 남기는 행위입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쏟아부었던 마음이 더는 갈 데가 없어지자 방황을 합니다. 잊고 싶은 게 아니라 더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으로만 남을 뿐 만날 방법이 없으니 점점 흐려져 갑니다. 그를 되찾고 싶은 마음의 인덕션은 이미 9단계까지 오른 상태인데, 냄비 안에 끓는 물은 모락모락 김이 되어 끓어 올라갑니다. 바글바글 끓던 물은 더 이상 부어지는 물이 없어 자리를 잃고, 새까맣게 타버린 냄비만이 내 마음에 남겨집니다.


내 타임라인에 진하게 남겨진 그 영혼을 두고 몇 날 며칠을 생각하니 결국 꿈에서라도 만납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나 잡히지도 않고, 다시 회상도 안 되는, 오직 꿈에서만 모든 것이 가능했던 상태로 조우합니다. 때로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꿈에서마저 그저 먼발치에서 관찰자로만 있는 나는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허우적 댑니다.


그렇게 심적으로 힘들어하다가 시절인연 이란 얘길 들었습니다. 시절인연? 듣는 순간 직관적으로 아! 하는 생각이 들었고, 후에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신기하지요. 그렇게나 혼자 속 끓고 어쩌지 못했던 마음과 현상이 어떤 단어로 설명이 되자 아, 그렇구나 하고 가라앉습니다. 


지금도 꿈에서 가끔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이젠 그렇게 힘들어하지 만은 않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좋았어도 헤어지고, 나빴어도 헤어지니까요. 좋아서 헤어지면 애틋하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좋고, 나쁜 만남으로 시작해 헤어지면, 나쁘니까 얼른 헤어지니 그나마 다행이라 좋은 거고 그렇습니다. 이제는 꿈에서 다시 봐도 꿈에서도 깬 후에도 속을 긁지 않습니다. 자신의 시간을 들여 내게 찾아와 준 그에게 고맙다며 빙긋, 미소를 보냅니다.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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