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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l 15. 2021

뮤즈, 영감, 그리고 글쓰기

뮤즈 - 춤과 노래·음악·연극·문학에 능하고,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예술의 여신이다. 또한 지나간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학문의 여신이기도 하다. 고대인들은 뮤즈를 무사(Musa)라 불렀는데, 이는 ‘생각에 잠기다, 상상하다, 명상하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보통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자매 여신들로 나타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복수형으로 무사이(Musai)라 불리기도 했다.  
출처 : 두산백과


영감 - 1.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
예문) 영감이 들다.
2.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
예문) 영감에 의해 쓰인 작품.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글쓰기뿐만 아니라 무엇이건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고자 할 때면 나오는 용어, 뮤즈와 영감.


글을 쓸 때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감정을 회상하며 글을 쓴다. 꼭 글의 주제나 내용과 관련이 없더라도, 가족이나 친구와 즐거웠던 순간을 담은 사진을 보면 기분이 한껏 고조된다. 도파민의 분비가 늘면서 글 내용은 가볍든 무겁든 관계없이 즉흥적으로 술술 풀려간다. 뮤즈가 내 곁에서 손가락을 거들어 주고, 영감이 찾아와 내 머릿속을 신나게 휘젓는 것처럼.


경쾌한 타이핑 속에 천의무봉, 일필휘지가 내게도 적용되는구나 라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든다. 겁 없이 글 한 편을 작성하고 별 주저함 없이 브런치의 발행 버튼을 누른다. 그때부터 기본적인 맞춤법부터 시작해 문장과 문단 전체를 고치는 퇴고 단계를 시작한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후배는 글 발행 전에 무려 서른 번도 넘는 검열과 퇴고를 거친다고 고백했다. 나도 그도 삼성이란 대기업에서 보냈고, 보낸 햇수로는 내가 몇 년을 더 앞설 것인데, 나는 그처럼 퇴고를 잘 못한다. 아니, 거의 안 하는 편이다. 흘깃 보며 입으로 중얼거리는 정도에 그친다.


그렇다고 삼성과 엘지의 회사원으로 일하던 당시 보고서를 덜상사에게 보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게 겁도 없이 보냈다간 나중에 어떤 입장에 처할지 알기 때문이다. 그땐 내지를 용기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브런치의 글쓰기는 그때만큼 나를 짓누르는 상사가 없기에 방자해진 듯싶다. 직장인 당시 워드의 토씨부터 시작해, 파워포인트의 사각형 모서리 꼴이며 서체, 그래프 색깔 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종종 내지르듯 쓰는 글은 이전 억압에 대한 보상심리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시원스레, 빨리 쓰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대체 너 뭐냐, 엉? 쓰면 쓸수록 참 찌질이네 정말 어휴)

어제 쓴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바쁘> 는 어떤 검색이나 출처도 없다. 그저 내 평범한 일상, 관찰에서 얻은 생각으로 채운, 2000자도 안 되는 짧은 글이다. 그럼에도 토막글에 꼬박 한 시간 반을 썼다. (자료를 참고하는 글은 세네 시간은 기본이다)


심지어 매거진 성격상 무슨 글을 써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글을 전개해서 마쳐야 할지도 아는데, 갈팡질팡할 때도 있다. 첫 문장, 첫 줄, 첫 단어 하나 썼다 지웠다 수도 없이 반복다. 이걸 쓰자니 저게 빠질 것만 같고, 저걸 선택하자니 이 내용이 부족해 아쉽다. 하나에 딱 집중해서 써 내려가면 될 텐데, 주저주저함이 나도 글도 지치게 한다. 그러는 사이 처음 구상한 글은 깔끔한 한정식도, 서양식 코스요리도 아닌, 먹고 남은 걸 비벼 툇마루 아래 멍멍이에게나 주는 게 되고 만다.




2년 전 우연히 일방 통보를 받고 시작한 본격 칼럼 글쓰기가 있었다. 꼬맹이가 걷지도 않고 바로 달리기를 면 그런 기분일까. 그나마 내 주위 환경 글감으로 삼은 덕에 소재 고갈에 시달리진 않았다. 스페인 여행과 문화, 역사를 적절한 감성과 버무려 쓰면서 어쭙잖은 칼럼니스트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릅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던 시절.


순백의 화면을 보기 좋은 컴퓨터의 글씨체로 따박따박 채워가고 마침내 메일 발송 버튼 누를 때의 쾌감에 필적할 대상을 아직도 못 찾았다. 직장인 시절, 상사를 위한 보고서 마감과는 차원이 다다. 다행히 지인들은 제법 잘 쓴다 라며 칭찬을 해 주었다. 손님들에게 방문지 관련 글을 읽어 드리거나, 카톡으로 전달하면 언제나 기분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그게 쌓여서 나도 모르게 글을 잘 쓴다 라는 착각에 빠졌다.


맞다, 착각이다. 그건 순전히 글쓰기 뮤즈와 영감 덕이었음을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나이아가라 폭포 마냥 어느 때고 촥촥 거침없이 쏟아낼 것 같았던 글은, 시간이 지나면서 실개천도 아닌 사하라 사막 이름 없는 오아시스 마냥 있는가 싶으면 금방 증발해 버리고 말 정도로 초라해졌다.


지금 와서는 그저 산속 옹달샘이라도 되어 노루든 토끼든 산자락 동물들이 할짝 핥을 물만 나와도 좋겠다. 약수가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재 수준에선 목만 축일 정도가 되어도 원이 없겠다.




영감을 받아 글을 쓰고, 글쓰기의 뮤즈가 있어야 타이핑이 시작되는 현실. 이건 사실상 내 글쓰기 깜냥 처음부터 작가 레벨이 안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온전한 자력으로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운동은 글에 비해 참으로 솔직하다. 자기가 한 만큼만 근육이 되거나 살이 빠지니까.


너무도 정직한 운동 앞에 내 민낯과 맨 모습을 보일 자신과 용기가 없다. 글쓰기에 빠져 들수록 나를 드러내는 한편 감춘다는 느낌 동시에 받는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황당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영감과 뮤즈로 돌아가면, 둘의 존재는 바람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뛰노는 아이를 볼 때, 어디선가 방향도 없이 잠깐 휙 지나가는 산들바람. 둘이서 내 머리털 한 번 살짝 건드려 주고 간 거다.


글을 쓰고 싶은데 영감이 없다고, 뮤즈가 내 작품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징징대는 건, 바람 한 점 없어 땀이 식질 않았며 떼는 것에 다름없다. 부채라도 가져오면 되는 것을. 게다가 USB로 충전되는 손풍기도 있어서 언제고 원하는 대로 바람을 만들 수 있는데 말이지. 그리 보면 글쓰기가 안 된다 하여 좌절할 건 없는 셈이다. 영감과 뮤즈는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역으로, 영감이 임하고 뮤즈가 곁에 와 줬다고, 글감이 삼태기로 넘쳐나네, 글마다 전부 작품이네 으하하하 자뻑하고 있는 내 꼬락서니가 더 우습지 않을까. 그런 정도의 영감은 1.75유로, 한화 2362원짜리 싸구려 스페인 레드 와인 한 병만 따도 얻는 것이니 말이다.


기막힌 영감이 임했다며 취할 일도 아니고, 글에 날개를 달아주는 뮤즈가 없다고 상심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아프리카 오지 마을, 모두에게 식수원이 되는 우물 하나 파낼 힘이 내게 있으면 족하겠다. 그 힘은 한두 번, 일이 년 자판을 두드려 본 것으론 택도 없을 것이다.


물이 나올 때까지 파내려 갈 힘, 그러다 물이 나오면 좋다며 단박에 그만두는게 아닌, 조금 더 팔 근력. 과욕 부리지 고 텃밭에 줄 물과 그날 하루 식구가 마실 식수 얻을 정도면 좋겠다.


매일 물항아리 지게를 지 다니면, 나중에 마음 맞는 분들과 함께 우물을 하나 더 파지 않을까. 글쓰기의 우물 함께 나누고 싶다. 뜨거운 한여름, 우물가에서 같이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킬 작가님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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