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an 18. 2021

글쓰기

나에게도 너에게도 힘이 되는 글쓰기

일요일 밤 9시, 인스타의 지인 분이 소개한 글쓰기 특강 줌에 들어가 보니 접속한 분이 무려 130여명입니다. 강사는 파워포인트만 띄워놓고 그냥 읊지 않습니다. 즉석에서 수강생 한 분에게 바로 질문을 던지고, 해당자가 채팅창에 쓴 답글을 달자 그것으로 바로 글을 한편 타이핑해 뽑아냅니다.


눈 앞에서 타다닥 거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커서 자리를 단어가 채워 갑니다. 오직 채팅에 나온 답글만을 바탕으로 따끈따끈한 글 뽑는게 개운한 국물 속에 김 모락모락 나는 가락우동입니다. 타이핑을 따라 소리 내어 읽어가는데 가슴 한켠 훈훈함이 들어옵니다. 답글을 단 수강생 분의 입꼬리는 올라가고 눈이 반짝입니다. untact 시대에 connect로 꽉찬 라이브 방송입니다.


연세가 좀 있는 작가님은 굴곡진 인생만큼 통찰력 또한 돋보여서, 강의 자료를 후기 응모를 통해 배포한다고 하셨음에도, 듣는 내내 노트는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해집니다. 번호를 달고, 밑줄을 치고, 각주를 달듯 메모도 해 가며, 몇 번을 곱씹어 봅니다. 예시로 들어주는 문장에선 다들 정신없이 웃다가도, 한마디의 정리에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게 됩니다. 두 시간 남짓한 강의는 강의 끝에는 처음 보는 분인데도 존경심 마저 일었습니다.




세상에는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이 지금도 존재합니다. 글쓰기는 옛날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다가가 들려주는 것이지요. 그것은 어려운 말이 아닌 쉬운 일상 생활 단어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나의 글쓰기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요. 그 맛에 글을 씁니다.


저도 글을 쓰다 보니 간간히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실은 제 글은 정보 전달이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저를 위한 글입니다. 일상의 재발견처럼 매번 보던 것을 어느 순간 다른 시각으로 보며 무언가를 깨닫고 삶에 적용해 보고자 하는 것도 우둔한 저를 깨우치기 위한 것이지 남에게 어떤 목적을 두고 쓴 것이 아닙니다. 그러했기에 저의 글쓰기는 저 자신에게 더 없이 좋은 대화상대이자 치유의 공간이 되곤 했습니다. 복잡했던 생각을 털어낼 수가 있으니까요.


강사님은 나의 글쓰기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계속 남아 지금까지 저를 움직입니다. 성공이란 사전에만 존재하는 단어 같아 보이는 제 삶에서 쓰여지는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요. 몽글몽글한 감성의 싹이 움을 트기 시작합니다. 감성의 싹은 꿈이 되려고 합니다.


그런 꿈을 감히 꾸어 보아도 될까요. 피아노 선율 하나에서 따스함을 느끼고, 첼로의 비브라토에서 진한 감동이 우러나오듯이, 사각틀 안에 나열된 글이 연고가 되어 누군가에게 읽혀져 들어갈 때 마음의 상처와 힘듦을 매만져 주는게 가능할까요.




마침 강의 듣던 중에 배송된 자동연필깎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때아닌 기록적인 폭설로 일주일 걸린다더니, 그래도 눈 좀 녹았다고 사흘만인 일요일 낮에 물건이 옵니다. 두 시간 강의 듣는 사이 아이들은 집에 있던 연필과 색연필을 남김없이 끄집어 내 깎았습니다. 수십 자루의 연필을 깎아대며 얼마나 신났을지 상상은 가지만, 한편으론 아빠인 저도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건데 깎아볼 연필 하나는 기념 삼아 남겨줬어야지 하며 괜시리 아내에게 투정을 부립니다.


제 성격마냥 끝이 뾰족한 이 친구들로 무엇을 노트에 채워볼까 생각해 봅니다. 뭐 특별한게 있겠어요. 소소한 저의 얘기를 이어가야죠. 쓰면서 뭉툭해지면 바로 깎기 전에 불혹을 지나고도 여전히 모난 저의 성격을 떠올려 보렵니다. 날카로웠던 심이 치유의 글에 쓰여가며 무디어지듯, 제 그것도 누그러져 그대를 넉넉히 안고 품을 수 있음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에 눈이 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