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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ug 27. 2022

스페인에선 그렇게 살아도 되니?

네, 아마도 그런 듯요?

스페인의 마드리드 외곽의 소도시, 알칼라 데 에나레스 마을에선 축제가 한창이다. 

여전히 한낮 기온 35도 내외를 달리는 이곳에서 축제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불금이니 불토니 하는 말이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으니 주말에 시끄러운 건 이해한다.


하지만 여기는 평일에도 밤 11시며 자정이 다 되도록 드럼과 전자기타의 비트가 밤공기를 채운다.

도보로 20분, 2km가 안 되는 거리라 차단막을 내리고 창문을 닫아도 들린다.

집안 공기는 덥기 때문에 꽁꽁 닫고 산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러니 결론은 결국 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두둠칫과 지징지잉 대는 소리도 함께 맞을 수밖에 없다.


단 하루의 쉼도 허락하지 않고 매일 밤 자정까지 달구는 축제의 열기도 이제 딱 사흘 남았다.

그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축제의 정체라도 알아볼 요량으로 시내 외출을 감행했다.

집에서 나와 도보 20분. 잠깐 걸었을 뿐인데 어느새 16세기 근대 스페인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늘 거닐던 거리에는 빨강, 주황, 초록 등 단체티를 맞춰 입고 다니는 사람들로 붐빈다.

골목과 골목이 이어지는 광장에는 공연장 점검이 한창이다. 

간이주점, 거리 음식점들은 개시만 안 했다 뿐이지 이미 저들끼리 준비하며 흥이 한껏 나있다.


그나저나 관광안내소에 들어가 도대체 무슨 축제인가 하고 알아보니, 하아... 너무도 소박했다.

이름 그대로 그냥 '축제 ferias'라니. 아아, 이 소박하기 그지없는 스페인 마을 사람들아!


세르반테스의 고향, 알칼라 데 에나레스의 축제 ferias (출처: 알칼라 페이스북)


시간이 지날수록 축제를 보러 찾아오는 인파는 셀 수 없이 많아진다. 

골목마다 브라스 밴드의 폭발하는 흥과 가두행렬은 줄지어 따르는 가족, 연인, 친구, 모든 사람을 홀린다.

그야말로 피리 부는 사나이들의 대규모 행진이 모두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스네어 드럼을 심장 터질 듯 치고, 트럼펫과 트롬본을 귀가 터질 정도로 불어 재끼던 연주단원들은 인형탈 일행과 잠시 휴식을 취한다. 뒤따라 가던 사람들도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더위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행렬 곳곳 자기만의 리듬을 타며 가던 사람들의 면면은 신기하게도 닮은꼴이 하나도 없다.


팔과 다리에 문신 가득한 아빠는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유모차를 밀며 간다.

코뚜레 하듯 과감한 피어싱을 한 젊은 여성은 또래들과 유쾌한 수다를 떠는 중이다.

조카를 무등 태운 삼촌은 낮술로 벌게진 채 일가족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난리다.

나이 차이가 족히 띠동갑 두 번을 둘렀을 것 같은 연인인지 가족인지 모를 묘한 분위기의 커플은 서로를 정성스레 쓰다듬으며 둘만의 세계로 깊이 들어간다.

가죽 바지에 머리에 두건 쓴 할아버지는 곱디곱게 깔맞춤 한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셀카를 찍는다.

팔도 다리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는 20대의 딸은 엄마가 즐겁게 미는 휠체어에서 힘껏 소리를 지른다.

휠체어를 미는 엄마 옆의 아빠는 아들의 손을 높이 올려 잡으며 지금 이곳의 소소한 행복을 만끽한다.




그저 성실과 노력으로 살아오는 게 전부였던 사람의 시선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자유인 그 자체로 살아가는 스페인 사람의 모습은 어색하고, 놀랍고, 신선하고, 대단하게 여겨진다.


이렇게도 살아가는구나. 오늘만 보고 살아가는 것만 같은데,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즐기는 게 모든 것의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많은 경우 해답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장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는 길은 즐기는 데에 있는 게 아닐까.


공자는 이를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고 풀어 얘기했다. 

현대에 와서는 이를 뒤집는 말도 많다. 정상에 오르려면 즐기는 것으로는 택도 없는 말이라고.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 중엔 즐겨서 하는 사람이 없으며 끝없이 노력해야지만 가능하다고.


그렇다, 그들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성공에 모든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1등이라는 목표에 미쳐 끝없이 경쟁만 하다 인간미를 잃어가는 사회에서, 

즐김이라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공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가수 양희은 씨는 <엄마가 딸에게> 노래에서 가슴속을 뒤진 끝에 딸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너의 삶을 살아라


축제의 현장에서는 제 아무리 웃고 떠들며 즐길지라도 저마다의 속은 말로 다 못 할 사정이 있을 거다.

그래도, 그럼에도, 축제의 거리에 나와 건전하게 발산하며 함께 즐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홀로 어둠의 동굴로 들어가 음습함에 기거하며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는 상상 속에 끝없이 우울할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희비가 뒤죽박죽인 인생, 밖으로 나와 웃으며 마주하는 대인의 모습으로 내딛을 것인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느 편이건 간에 타인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갔으면 한다.

실은 다른 누구에게가 아닌 바로 하루에도 방황에서 헤매는 나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축제의 처음이자 마지막 불금을 향하는 대학 도시의 콘서트 열기는 새벽 1시가 넘어서도 여전하다.

다시 질문해 본다: 스페인에서 그렇게 살아도 되니?

다시 되물어 본다: 너는 너의 삶을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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