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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ul 25. 2022

다시 사는 듯 오늘을 아껴 사는 마음

기적 같은 오늘을 사랑합니다

몇 년 전 오래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덕에 한국 본가에서 거의 6개월을 지내다 왔다. 우리 가족은 내가 고등학교 때 살던 아파트에서 몇 년 간 같은 도시의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갔었는데 그곳에 살 때 나는 결혼을 해 스페인으로 떠났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 갔을 때는 다시 내가 고등학교 때 살던 집으로 가족들이 이사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집에 지내는 동안 유독 고등학교 때 생각이 많이 났다.


몇년 만에 만난 장마비가 신기해 허둥지둥 이런 사진도 찍고 (c)이루나


나는 고등학생 때 자던 방이랑 똑같은 방에 누워 그때 했던 생각 - 난 언제 누구랑 결혼할까 - 이런 것을 궁금해하던 기억이 나 굉장히 낯설고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순식간에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초월해 그 방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땐 오빠도 아직 본가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네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다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일을 안 해도 됐고 내가 사서 채우지 않아도 되는 냉장고가 집에 있었고 종종 오랜 동네 친구이자 동창과 만나 놀았다. 그때가 단언컨대 가장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지겨웠던 종로의 풍경도 이토록 애틋하고  (c)이루나


시간이 흘러 그 좋은 시절도 끝났고 나는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때 한국에서 보낸 봄과 여름을 떠올리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 그때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서 가족들과 살다 오기를 너무 잘했다고. 회사를 그만두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더 시간이 흘러 내게 남아 있을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더 팍팍해진 마음과 조금 더 넉넉해졌을 주머니일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내 삶의 마지막 날들을 살고 있을 때 내가 가진 모든 걸 포기하고서라도 갖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나는 정말 내가 가진걸 모두 다 주고서라도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할 것만 같다. 젊고 건강한 나와 모든 가족이 함께 있었던 그때 그 봄과 여름.


친구와 갔던 그 여름의 부산 바다 (c)이루나


그 이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오늘은, 어쩌면 미래의 내가 너무 간절히 바라고 기도해서 돌아온 시간은 아닐까. 한 번만 더 살아보고 싶은 시간이라서, 삶의 마지막 날을 걸어가다가 문득 뒤돌아서 죽어라 뛰어온 그런 시간은 아닐까. 미래의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이들이 함께 하는 지금 이 시간들, 그러니 어찌 기적 같은 오늘이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의 나는 다정한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고 오늘의 웃음과 풍경 같은 것들에  오래 시선을 두려 노력한다. 좋아한다고 더 많이 표현하고 싶고 더 많이 눈을 마주치고 싶다. 흘려보내고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소중해서 그렇다. 먼 미래의 내가 그리워할 시간을 산다. 별거 없는 일상이라고 치부하다가도 다시 사는 듯 아껴 살고 싶은 이유이다. 오늘이 벌써 그리운 오늘이다.


친구와 가족과 먹던 삼쏘맛 못 잊어 (c)이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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