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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Jan 17. 2022

민주적인 좀비 (3)

아빠는 정치뉴스를 보고 있었다. 정치는 중요한 일이다.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매일 정치뉴스를 볼 필요는 없다. 정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세상에는 정치보다 중요한 것들도 많았다. 4, 5년마다 행사하는 한표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의 전부인 사람이 매일같이 정치뉴스를 체크할 필요는 없었다. 아빠가 정치뉴스를 볼 때마다 난 저것이 스스로의 책임에서 도망가는 일로 보였다. 삶을 바꾸려는 책임을 모두 정치에게 돌리는 짓이었다. 물론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훈수두고 싶어서 볼 수도 있긴 했다. 심야시간대라 그런지 정치뉴스는 앵커가 뉴스를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라 각 정당의 정치인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정치뉴스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나도 토론에는 눈이 갔다. 자극적인 말이 오가고, 격한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이 새벽시간대에 하는 성인예능 같았다. 어떤 예능도 저렇게 진심이고, 저급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들의 토론에는 몰입력이 있었다.


티비에서는 헤비급이 되기 직전인 두 정치인이 서로를 강렬하게 비방하며 헐뜯고 있었다. 한 명은 지방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정치인이었고, 한 명은 최근에 유명해져서 입당한 야당의 신진세력이었다. 그들은 상대방을 마치 세상에 존재하면 안되는 사람인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서로를 파렴치한 악마로 부르는 그들은 비슷한 브랜드의 곤색 양복에, 색깔만 다른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검정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상대가 세상에 존재하면 안되는 파렴치한 악마라면, 적어도 그 상대와 같은 옷은 입으면 안되는 게 아닌가. 최소한 어디가 어느 편인지 한 눈에 좀 알아볼 수는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은 한참을 떠들면서 특별법 개정과 지방자치단체의 개발이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빠는 정치인이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좋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썩을 것이라고 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내용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요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중구난방이었고, 화가 많이 나서 소리를 지르는 탓에 발음이 잘 들리지 않았다. 퇴근시간 지하철 안내음처럼 그들의 토론은 전반적인 소음의 정도만을 높이고 아무런 정보전달의 효과가 없었다. 내 무의식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믿음인 ‘중요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부족한 사람이 목소리를 키운다.’는 말은 역시 사실이었다.


낡은 양은냄비에 담긴 된장찌개가 거의 사라질 무렵, 아빠의 몰입은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정치인들의 토론은 좀비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갔다. 여태까지 하던 토론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웠다. 정치인들은 두꺼운 자료들을 꺼냈다. 자료뭉치를 책상에 내려놓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두 정당 모두 부유병의 치료와 좀비문제 대책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준비한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부유병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복잡한 설명이 없어도 우리는 모두 부유병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것을 중요하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것을 무서워했고, 좀비를 혐오했다. 신진 정치인의 목소리가 명료해졌다. 멘트를 많이 준비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번 정부의 부유병 대책을 두고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왜 부유병 환자들을 격리하고, 관리할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입니까. 부유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건 그럴 수 있죠. 전세계에서 현재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왜 부유병 환자를 그냥 둡니까.”


“병의 원인을 찾지 못했으니 환자들을 잘못 건드리는 건 위험..”


“제 말 끊지 말고 들으세요. 환자들에게 약을 투여하고 그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좀비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세요. 아 여기서 좀비란 말에는 비하의 의미가 있는게 아니고, 현상을 말하는 겁니다. 어쨌든 좀비는 맞으니까. 그 좀비들이 피해자고 우리가 가능하면 치료를 해줘야 하지만,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좀비 때문에 국가가 마비되고 있습니다. 도로에서 차도 마음대로 못 달려, 어디 갈 때마다 냄새 때문에 코도 막고 다녀야 돼. 우리 아이들이 왜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합니까. 저도 국회로 출근할 때마다 너무 무섭고 놀랍니다. 여의도에 있는 좀비들 때문에 내일이라도 공격당해서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국가와 행정은 도대체 뭘 하는 겁니까. 아무것도 안해서 우리 다 죽일 거에요!”


“일단 최소한 정정할 것은 정정하겠습니다. 부유병 환자들은 일단 어딘가를 이동하지도 않고, 사람을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과학적 원인과 근거를 아직 전세계에서 찾지 못하고 있지만, 냄새를 제외하면 그 환자분들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건 없습니다.”


“과학적 근거요? 지금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하셨죠?”


“예, 아직 부유병에 대해서는 어떤 과학적 해명도 존재하지는 않습..”


“아니 그러면 앞으로 좀비들이 움직일지, 우리를 공격할 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이 정부는 지금 제정신입니까. 이런 위험에 지금 우리 국민들을 노출시키는 거에요?”


“그게 아니고, 환자들이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확실해요? 절대 100% 그럴 일 없다고 할 수 있냐구요. 병의 구조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확신을 하십니까. 그리고 왜 자꾸 환자라는 표현만 씁니까. 실상 좀비가 맞고, 좀비를 우리 정부가 처리 못하고 있는 거잖아요. 제약회사와 커넥션이 있는건지, 왜 문제를 자꾸 키웁니까. 우리 경제만 어려워지게.”


“저희가 무슨 문제를 키우고 있습니까. 그리고 좀비라는 표현 좀 안 썼다고 그렇게 이상한 음모론을 가져오세요? 얼마든지 써드리죠. 그 좀비들을 치우면 드는 재정적인 문제를 알고나 말씀하시는 겁니까. 좀비들은 자신을 억지로 이동시키려고 하면 난동을 부립니다. 그래서 그들을 강제로 이동시키고, 그 이동시킨 상태를 유지하려면 상당한 행정력이 소요됩니다. 좀비격리 정책을 취하면 재정이 감당이 되질 않습니다.”


“아니 이 정부는 세금을 그렇게 거둬가면서 왜 필요할 때는 재정이 없습니까. 이 시대 최악의 정부라고 말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재정이 왜 부족해요. 막 쓰니까 부족하지. 그리고 부유병 환자들의 문제가 경제적인 문제입니까. 솔직히 유가족의 입장에서 보세요. 자기 가족이 둥둥 떠서 있는게 좋겠습니까. 예의를 갖춰서 치워줘야죠. 그리고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돈이 좀 들어도 안 보고 싶을 수 있잖아요!”


“먼저 경제 이야기를 꺼낸 건 그 쪽이잖아요! 그리고 돈이 좀 들어요? 그 돈이 얼마인지는 아십니까. 그리고 행정처리를 하려고 해도, 예산안에 매번 반대하시면서 무슨 적극적인 행정을 해요. 그 쪽 대표랑 먼저 이야기나 하고 오시든가.”


“그 쪽?? 지금 말 다 했어요?”


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도 잊고 토론을 빤히 바라봤다. 그 토론은 불편했다. 나도 사석에서는 부유병 환자를 좀비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들을 공식적인 방송에서 좀비라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부르는 게 좋아보이진 않았다. 보기 좀 그렇다는 한 마디가 좀비를 격리시켜야 할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냥 불편했다. 누군가가 보기 싫다는 게 그들을 치울 수 있는 이유가 된다면, 나도 저기에 출연한 정치인들이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지적하기 시작하면 한도끝도 없고, 괜히 예민한 사람이 되겠지만, 전반적으로 좀 그랬다. 결국 좀비도 돈문제였고, 돈만 별로 들지 않았다면 그들은 치워졌을 것이다. 좀비들이 사회에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용이었다.


그치만 난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어떤 불편함이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괜히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면 같이 있어야 하는 시간만 길어진다. 좀 무력하기도 했다. 그들이 원래 존중없이 말하는 직업이라는 건 당연했다. 내 불편함은 사회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었고,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한다고 세상과 내 삶 중에 바뀌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최선은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작은 신발에 어거지로 발을 우겨넣는 일이었다. 그거라도 하면, 무난하게 존재감없이 넘어갈 수 있으니까.


아빠는 계속 화를 냈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정치인보다 아빠가 한 혼잣말이 더 많았다. 내용은 비슷했다. 특히 부유병 환자들을 격리시키거나 죽일 수 없다는 정치인의 발언이 있을 때, 아빠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나약해서 병에 걸린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서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며 아빠는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에게 기생하고 있는 사람들은 살 자격이 없다는 말을 붙였다. 아빠가 일자리를 잃어버린 건 10년도 더 된 일이고, 그는 모든 경제활동을 엄마에게 기생하고 있었다. 상처받은 중년은 등장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좀비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망가뜨렸다고 생각하며 자위하고 있었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부유병이 생기기 전에도 그는 젊은 여자애들이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이야기했고, 비정규직 노조 때문에 정규직들이 안정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약해서 병에 걸린 좀비새끼들을 뭘 도와줘. 탱크는 뒀다가 뭐해? 싹 밀어버리고 다 쏴버려야지. 다들 빠져서 그래. 기합 넣고 정신 차렸으면 좀비병? 부유병? 저런 병에 절대 안 걸려. 뭐 하시 싫어서 저러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 난 저렇게 안 컸어.”


저 말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아빠의 저런 생각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명목상 같은 방에서 앉아 있는 나부터 저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부유병에 대한 우리 아빠의 의견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술취해서 소리지는 사람의 의견이나 우리 아빠의 의견이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계속 소리치는 기분과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말하기를 포기한 사람 중 비참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와 아빠는 각자의 방식으로 비참했다.


티비토론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부유병 환자대책을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되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정치인들이 부유병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환자가 둥둥 떠다닌다는 것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비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적당히 상대방의 입장이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토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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