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택시 이용법
먼저 영화의 한 장면을 보자.
1998년에 만들어진 홍콩영화 <유리의 성 (주연: 여명, 서기, 감독: 장완정)> 의 한 장면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대사 한 마디 없이 손짓만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장면에 나오는 제스처를 해석해 자막으로 넣어봤다.
이 짧은 장면을 통해 홍콩사람이 아니면 영화를 봤어도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것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택시가 빅토리아 하버를 넘어가는지
묻는 손짓
홍콩의 택시 중에는 홍콩섬과 구룡반도 사이의 '빅토리아 하버'를 넘어가지 않고 한 곳에서만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홍콩섬 택시는 홍콩섬안에만 운행하고 구룡반도 쪽 가면 길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요즘이야 GPS로 찾아갈 수 있다지만 아직도 모르쇠~ 핑계 대는 경우도 종종 만날 수 있다.
택시를 이용해 하버를 넘어가야 하는 경우, 홍콩 사람들은 택시에 타고나서 가지 않는다고 하면 내리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특유의 손짓을 사용하다.
영화에서 예전 구룡반도에 홍콩의 옛 공항 '카이탁' 공항이 있을 때 공항에서 홍콩섬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 장면이다.
여주인공이 홍콩섬으로 가냐고 묻기 위해 손으로 '웨이브'를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그것인데, 해저터널을 통해 하버 '아래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운행하지 않는 택시 확인하는 법
운행 중이 아닌 택시는 아래 그림과 같이 유리창 앞에 빨간색 표시를 세워놓는다. 우리나라 택시는 “예약“이나 “빈차” 등으로 표시하는데 한글을 읽지 못하는 외국인 경우는 ”예약“ 을 켜고 지나가는 택시를 보고 승차 거부로 아는 경우가 있다 한다.
아무튼 홍콩 택시의 빨간 표시는 휴무인 택시뿐 아니라 (운행 후) 퇴근시간이던가 어떤 사정으로 특정 지역으로만 가야 하는 경우도 쓴다. 저 빨간 표시를 세워두고 손님을 가려서 받는다.
물론 영화 속 장면처럼 유리한 손님만 받으려는 얌체 택시도 있다.
확인하지 않고 멈춰있는 택시 문을 열고 올라탔다가 불필요한 시비가 붙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자.
숫자를 나타내는 손짓
영화 속에서 택시기사의 십자가 모양의 손짓은 숫자 10을 나타내는 제스처다 (한자 열 “십”자)
여기서는 10이 아니라 100을 나타내고 있기는 하다.
주로 시장이나 식당 등 시끄러운 곳에 가면 물건이나 음식의 가격을 얘기할 때 손으로 숫자를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 자주 겪는 일은 아니겠지만 알아둔다면 유용한 지식이니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중화권은 비슷한 손짓을 사용하지만 일부 지역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특히 6 이상의 숫자를 한 손으로 표시해야 할 때 아주 유용해서 솔직히 우리도 좀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저게 똑같다고?
영화 속 아저씨가 시연하는... 주먹 쥔 손가락 사이로 엄지손가락을 끼워서 하는 '욕' 제스처가 한국만의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사실 알고 보면 한국, 홍콩은 물론 중국, 스페인, 티르키에... 북한도 쓰는 상당히 글로벌한 욕이라고 한다.
만약 저 나라들을 여행하다가 험한 꼴을 당하게 되는 경우에 유용하게... 아니 더 위험해지니 절대로 쓰지 말도록 하자.
이처럼 짧은 영화의 한 장면에도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모르고 넘겼을 장면들이 많이 숨어있다.
홍콩에 살기 전에 저 영화를 봤을 때는 저 장면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살면서 다시 본 영화에서는 신기하게도 내가 몰랐던 많은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씩 오래전 봤던 홍콩영화들을 다시 찾아보는 나에게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