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사무실에는 '부심'과 '텃세' 따위는 없습니다.

전국에서 발령받은 동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지역 부심 따위 없습니다.

by 박중현

100여 명이 넘는 피해자들로부터 피해진술서와 자료들을 취합하고, 피의자(앞으로는 범죄자보다는 공식 법률용어 피의자로 대신하겠습니다.) 체포 후에 구속영장 청구하고, 보도자료 만들어서 언론사에 배포까지 마무리하니 2달이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때 팀원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업무를 나눠서 하고 피해자들과 다른 분들에게 사이버범죄 중 오늘까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직거래 사기 사건의 유의점과 배상명령 청구 과정을 알려 줬을 건데 그 당시는 피의자 검거하고 보고하는 게 제 업무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이버범죄 예방이라는 부분까지 신경 쓸 여유는 전혀 없었고 굳이 내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이버범죄 예방?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형사는 범인을 잘 잡아야 유능한 형사지!’



구속 사건 처리하고 나서 수신한 격려 메시지, 출처:박중현


공식 보도자료 배포하고 나면 저의 팀장과 수사과장은(제가 업무 관련 보고하는 라인은 저의 지능팀장 그리고 업무를 총괄하는 수사과장 순으로 올라갑니다.) 신경 쓸 일은 없겠지만 저는 100여 명의 피해자분들에게 사건 처리 결과를 개별적으로 알려 줘야 하고 궁금하신 피해자분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업무 때문에 2주 동안 전화받느라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혼자 업무를 처리하는 부담감이란..

특히 구속 사건 처리할 때 위에서 보고해 달라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검거보고서, 체포 보고서, 무슨 보고서, 보고서.....




피의자 구속 사건은 체포 후 검찰에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기간 내에(이 시간은 정말 저에게 중요한 시간입니다.) 구증한 증거들로 자백을 받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수만 가지 내적 갈등을 하고 있는 피의자가 자칫 도주를 한다거나 불상사가 생겨 버리면 그 모든 책임은 저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조사 기간 동안 사무실에 아무도 출입을 못하도록 보안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이럴 때는 이상하게 전화도 많이 옵니다.

한 손으로 사무실 전화기 받고 동시에 걸려오는 휴대전화는 우선 사무실 전화 통화를 마무리해야 하기에 스피커 폰으로 틀어놓은 뒤 먼저 걸려온 사무실 전화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하면서 곧바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합니다.

두 손은 지방경찰청(현재는 경기북부지방경찰청으로 독립했지만 당시에는 경기지방청 제2청이었습니다.)에 보고할 검거 보고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이런 저의 모습이 바로 옆 ‘경제범죄수사팀’ 사무실 직원들에게는 다 보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경제범죄수사팀 사무실 바라보고 촬영한 전경, 출처:박중현(2016년 사무실 철거 전 촬영한 마지막 모습)


경제범죄 수사팀 직원들은 팀장님(여기는 경제범죄수사팀 팀장님이 별도로 계십니다.) 포함해서 총 4명이서 근무하고 통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제가 바쁘면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전화도 대신 받아주고 서류도 대신 접수해 주는 동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범죄수사팀 직원들이 다른 업무로 바쁘면 제가 대신 전화받고 서류 접수해 주고 이런 방식으로 오랫동안 같이 일했기 때문에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지냈습니다.

그만큼 서로를 위해주고 옆 사무실에서 팀원들이 바쁠 때 전화라도 걸려오면,

'형!!!!'하고 부르고

제가 알아서 전화를 당겨 받는 그런 사이였습니다.


큰 사건 하나 마무리하고 나니 추가 피해자를 찾기 위해 도움을 받았던 더치트(the cheat) 측에서 저에게 소중한 감사패를 보내 주셨습니다.

감사패를 보내기 전 더치트 대표님께서 저에게 직접 전화를 주셔서 피해 예방에 애써 주셔서 고맙다는 의미로 피해자들의 응원 메시지와 감사패를 보낸다는 말에 그동안 힘들었던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서 근무하는데 감사패 받으니 정말 기분이 좋네요! 되게 뿌듯한 일 한 것 같습니다!”

“아! 혼자서 근무하는군요?”

더치트 측에서 혼자서 어떻게 일하는지 많이 놀라면서 궁금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부터 더치트 회사와 인연이 돼서 많은 일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더치트에서 받은 감사패, 출처:더치트(아직도 저의 집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보내준 피해자들의 응원 메시지, 출처:더치트

힘들고 바쁠 때 도와준 동료들에게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저의 성격상 점심과 저녁때 맛있는 거 많이 먹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연천에 의외로 맛집이 꽤 많았었는데 가끔 처갓집에 갈 때면 한 번씩 들러서 먹곤 합니다.

부산 출신이어서 그런지 한 달에 1-2번은 꼭 해물이 들어간 요리를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함께 고생한 옆 사무실 팀원들 포함해서 지능팀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속이 시원하고 후련해지는 '해물 칼국수' 먹으러 갈 때는 고향인 부산 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특히 추운 겨울날과 날씨가 선선해질 때 엄청나게 들어간 바지락으로 육수를 낸 뜨끈한 칼국수 국물을 들이켜면 제일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었고 저는 이때부터 해물 칼국수에 매료되어서 현재까지 집에서 '바지락 술 찜'을 해서 먹곤 합니다.

직원들과 가장 많이 먹었던 연천 차탄리 '고향 손 칼국수' 출처:네이버 이미지


1 급지 경찰서에 비하면 한 명의 형사가 취급하는 사건이 적을지 모르겠지만 전체 인원이 적다 보니 각자 기본 업무 처리에 그리고 경남 창원, 제주도, 전라도, 부산에서 경기 최북단으로 발령받은 직원들이 전부였기 때문에 인사 발령 때마다 요직에 같은 지역끼리 끌어주는 '지역 부심'이나 타 지역에서 새로 발령받은 직원을 타깃으로 행해지는 '텃세'따위는 모두 사치였습니다.

아니 그 딴것 할 만큼 모두들 여유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보통의 경우 순번으로 들어가는 당직을 서게 되면 다음날 오전에 곧바로 퇴근해서 쉬어야 하지만 예고 없이 수배자 검거 전화를 받게 되면 저희들끼리 정해놓은 순번으로 기꺼이 함께 가곤 했습니다.

이런 동료들과 함께 있는데 지역끼리 모이는 지역 부심이라든지 텃세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외근을 나가 있는데 경제팀 직원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다른 지역 경찰서 사이버범죄 수사팀으로부터 연천 관내에 조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출석을 하지 않고 있어서 살고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일이었습니다.


"형, 군인 피해자들이 직거래 사기당했다고 하는데 피해자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급하게 외근 볼일을 마치고 들어가니 훈련하다가 오셨는지 얼굴에 위장크림이 그대로 묻어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산다고 돈은 송금했는데 대신 박스 안에 똥 묻은 바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내용물이 담겨 있는 박스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사실 택배 박스는 수사에 큰 도움은 되지 않지만 제가 대신 받아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작은 박스 안에는 치킨 뼛조각, 바지 안에는 똥 묻은 팬티가 들어있던 택배박스, 출처:박중현

택배 박스 안에는 노란 치킨박스와 입었던 옷가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노란 박스를 열어보니 먹다 남은 치킨 뼈 조각이 들어 있었고 입던 바지 안에는 엉덩이 부분에 누런 똥 자국이 묻어 있었습니다.

아마 먹다 남은 치킨 조각과 응가 묻어서 빨지 않은 팬티를 택배 박스로 받은 당사자 분은 정말 기분이 똥 되셔서 얼굴에 위장크림도 지우지 않고 경찰서로 오셨을 겁니다.


" 증거자료 찾아보니 중신으로 보인다고 하셨죠? "

제가 물어보니 네티즌 수사대의 실력으로 추가로 확보한 자료들을 저에게 제출하셨습니다.


'도대체 이런 종류의 인간은 뭐하는 놈들일까?'

끌어 오르는 분노감이 생기면서 다시 한번 구속시켜야 할 범죄자가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런 피의자는 분명히 피해자가 많이 발생하였을 것이고 전과도 분명히 많은 놈일 거라고 저만의 로드맵을 또 한 번 그려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접수하기 전에 충남 아산 '수사연수원'에 4주간의 '사이버범죄 추적 수사과정'교육을 신청해 놓았고 그 주 토요일에 컴퓨터학원 등록하기로 했는데 시간 스케줄 조정이 불가피했습니다.

종로에서 컴퓨터 C언어 접수하면서 촬영한 사진, 출처:박중현

일단 마음먹었기에 직장인 대상 주말과정으로 컴퓨터 공부는 시작하고, 아산에서 4주 교육받으러 가기 전 최대한 피해자들 모은 뒤 교육 마치고 바로 검거하는 걸로 스케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사이버 수사 형사답게 접근해 닭다리 튀김보다 못한 인간 체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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