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대처하는 자세

by 공간여행자

‘학기 중 견학을 가서 좋았어요.’

‘학기 중 견학을 가서 싫었어요.’


‘수업 중 동영상 자료를 보여줘서 지루하지 않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수업 중에 동영상을 보는 것 싫어요.’


강의를 한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한 강의에서 상반되는 평가를 받았다.


매 학기 학생들이 성적표를 받듯이 강의 담당교수들도 강의평가를 받는다.


수업 준비, 진행, 방법, 평가 등에 관련한 질문들에 보통 5점 척도로 답하도록 하여 항목별 점수와 합산 점수를 보여준다.

그리고 주관식 의견란이 있다.

주관식은 보통 수강인원의 20%, 많아야 30% 정도가 작성한다.


처음에는 똑같은 수업에서 상반된 의견이 나왔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아니 사실은 억울했다.

좋았다는 의견이 5건에, 싫었다는 의견은 1건이었다.

그럼에도 좋았다는 반응보다는 싫었다는 반응만 뇌리에 남았다.


견학지를 물색하고 연락해서 관람 예약을 잡는 일.

관련 영상을 찾고, 보고, 필요한 부분을 편집해서 준비하는 일.

이런 일들을 나는 왜 한 걸까? 하지 말걸.

좋은 소리도 못 듣는데 말이다.

급기야 이런 생각 끝까지 가고야 만다.

좋았다는 의견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민 끝에 선배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교수님은 강의평가에 안 좋은 말 있었던 적은 없었죠?"

매년 우수교원상을 받는 선배였다.

"왜 없어? 있지."

"그래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돼요? 의욕이 너무 떨어져서요."

"나도 똑같아. 근데 나는 주관식 의견에 답변을 달 수 있었으면 좋겠어.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주고 싶을 때가 많지."

선배다운 생각이었다.


물론 따끔했지만, 나에게 도움이 된 의견도 있었다.

한 발표수업에서 발표자가 지각을 하여 발표순서를 미뤄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공평성에 집착하여 늦은 학생에게 페널티를 주며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과 다른 수강생들의 시간 또한 허비시킨 것에 대해 강한 어조로 나무랐었다.

그러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교수자와 학습자라는 수직적 관계로 일방적으로 대하는 듯하여 불편했다는 의견을 받았다.

순간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배의 말처럼 답변을 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앞으로 잘못한 부분을 지적할 때는 개별적으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태도에도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덧붙이자면, 페널티를 받은 당사자가 쓴 글은 아니었다)


그 밖에도 시험 부정행위에 대한 제보나 팀 과제에는 시간적 여유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은

다음 수업을 준비하면서 꽤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의견은 '그냥 싫다'였다.

이유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이상하게도 이유 없는 악플 같은 의견을 더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악플에 시달리던 연예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도 이해되었다.

본인을 좋아하는 팬들, 주변 지인들이 훨씬 더 많은데도

왜 아무 의미 없고 사실도 아닌 악플에 상처받는 것인지 말이다.


이상하게 이유 없는 악플이 더 마음에 남는다.

왜 싫을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싫어할까?

나도 모르게 잘못한 것이 있는 걸까?

이유를 내가 만들어내고 그 이유에 내가 상처받는다.

없는 그 이유를 계속 혼자 생각하고 만들어 낸다.

(혹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만 두길 바라고 바랍니다. 이유 없는 싫음은 내가 아닌 누구라도 싫다는 말이니까요.)


아쉽게도 ‘10년 차 시간강사는 악플에 상처받지 않는다’는 아니다.

다만, 좀 더 설명하게 된다.

이 수업은 앞으로 어떤 부분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왜 이 발표수업을 하는지, 이 견학은 왜 가는지.

이 동영상에서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어서 당연하지만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일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유 없는 악플은 없다.

그래도 여전히 강의평가를 확인할 때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클릭한다.


오늘의 한마디
그냥 싫은데?
무지개 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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