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도 이 질문에서 오랫동안 자유롭지 못했답니다.
비전공자로 실내디자인을 시작했었기 때문에 자, 컴퍼스 등의 도움 없이 그림을 그리는 프리핸드 드로잉(freehand drawing) 앞에서는 늘 작아졌거든요.
예전 회사에서 저의 사수는 생각하는 공간을 말하면서 슥슥 그려내는 능력자셨어요.
당연히 입시미술을 한 전공자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전공은 수학과, 부전공으로 실내장식디자인을 하였다는 것을 알고 조금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사수는 프리핸드 드로잉 실력을 키우기 위해 대학시절 미대 전공생에게 오랜 시간 과외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림실력은 꼭 타고나는 것은 아니구나.’
이후 저는 관련 책으로 독학도 해보고, 학원도 다녀보고 했지만 제 그림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꾸준히,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입니다.
우리 다들 알잖아요.
꾸준히, 오랜 시간은 참,,, 쉬운 말인데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이만치 지나고 나니, 그림실력은 여전히 제자리지만 예전처럼 부끄럽지는 않답니다.
조금 뻔뻔해졌달까요?
뭐! 어때! 알아보기만 하면 되지!
디자인 상담을 할 때, 또는 강의를 할 때,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간단히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상대방이 알아볼 수만 있다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그림은 완성이 아니라 '설명을 위한 도구'이니까요.
여기서 그림을 글씨로 바꿔 볼까요?
한 작가가 원고지에 글을 씁니다.
손글씨가 너무도 멋진 작가도 있지만, 글씨를 잘 써야만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글씨는 보고 읽을 수 있으면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내용이니까요.
디자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손그림은 보고 서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면 됩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분명 훌륭한 스킬입니다.
그러나 그림실력이 조금 부족하다고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디자인에는 여러 스킬이 필요하니까요.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디자이너, 기획력이 좋은 디자이너, 색감각이 뛰어난 디자이너, 마감재 선택이 탁월한 디자이너 등등 말이죠.
가끔 비전공자들 수업에서 프리핸드로 도면을 그리도록 하면,꽤 오랫동안 시작을 못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펜을 종이에 대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혹시 잘못 그려도 다시 그리면 되는데 처음부터 완벽한 선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몰래 자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프리핸드 드로잉의 매력은 기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선에 있습니다.
그리고 펜 외에 다른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간편함도 있죠.
그래도 프리핸드 드로잉이 여전히 두렵다면 이것 한 가지는 꼭 연습해 보세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펜(볼펜 X)으로 직선을 그려보는 것!
양쪽 끝에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점과 점 사이를 이어줍니다.
이때 중요한 건 한 번에 가장 빠른 직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선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선만 잘 그려도 꽤 그럴싸해 보이거든요.
삐뚤삐뚤해도 괜찮아요.
그게 손그림의 매력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