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 습득 방식을 따른다면서, 왜 책으로 시작하는가?
엄마표영어는 모국어 습득 방식을 따르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데
왜 엄마표영어는 책으로 시작하는 건가요?
운영하고 있는 엄마표영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알림이 울렸다. 채팅방에 계신 한 멤버 분이 조심스레 질문을 해 오신 것. 흥미로운 포인트이기도 하고, 엄마표영어를 시작하면서 한 번쯤 궁금해했을 부분일 것도 같아서 관련 내용을 적어내려가도 되겠냐는 허락을 구하고 정리해서 옮겨본다.
질문을 주신 분은 외국에서 잠시 일도 했었고, 영어를 많이 공부하고 영어를 바탕으로 한 업무 경험도 있다고 밝히시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는 언어이기에 책으로 먼저 공부시키는 게 조금 이해가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의 경우는 생활영어가 기본 베이스가 되는 상황이었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자연스레 단어의 확장이 필요함을 느꼈기에, 이를 위해서 책읽기를 도입했다. 독서가 효과적인 인풋을 주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대개 한국인 가정에서 엄마표영어를 시작하면, 아이의 노출 정도와 관계 없이 영어그림책으로 시작을 한다.
많은 이들이 엄마표영어는 모국어 습득방식을 표방하기에 생활영어, 영어그림책, 소리 노출을 해주는 인위적인 노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모국어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가장 좋은 건 부모 중 하나가 혹은 둘 모두가 영어를 잘 하고 육아에 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와 같은 환경을 제공하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생활영어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엄마표영어가 모국어 습득방식을 표방한다고 할 지라도 생활영어부터 접하는 진짜 모국어 환경에 처한 아이들과는 환경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게 맞을 지도.
질문자의 질문에 나의 첫 마디는 이랬다.
엄마표영어를 무조건 책으로 시작하는 건 아니에요!
아이가 영유아라면 자연스럽게 영상 소리 노출 환경을 만들어주면 모국어를 캐치하듯 하나둘씩 단어/문장을 습득하기 시작한다. 우리 집의 경우도 이랬고. 기본 단어, 생활영어부터 흡수하고 그 이후 부모가 자연스럽게 단어 확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 발달 단계에 맞춰 그 다음은 자연스레 책육아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
하지만 모국어인 한국어가 유창한 나이대의 5세 정도 이상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2세 이전의 뇌는 모국어와 외국어를 같은 뇌 영역을 통해 학습 및 기억에 관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이건 '뇌' 연구결과에 불과할 뿐. 아이가 이미 모국어와 외국어를 구분하기 시작했다면 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든 간에 아이가 '자신의 의지'로 외국어를 거부하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스페인어를 1도 모르는 성인에게 모국어 환경을 조성해준다며 스페인어 음원을 틀어놓는다면 과연 이 성인은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시청각 협응이 되지 않고 소리만으로는 맥락이 이해되지 않기에, 의미는 커녕 단어 하나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인 것이다. 이 부분은 스티븐 크라센이 '언어를 습득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영상에서 이야기했던 부분인데, 조금 더 심도 있는 내용을 보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검색 및 시청이 가능하다.
영어에 노출이 없었던 경우라면 소리노출이나 영상노출을 해준다고 틀어둘 지언정 효과적인 노출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 아이의 나이가 한 살 두 살 더 많을 수록 학교의 커리큘럼도 맞춰 가야하기에, 절대적인 노출량을 채워주기가 어려운 상황이 온다. 그래서 효과적인 노출을 통해 아이가 영어에 적응을 빨리 하고 습관을 만들어주는 걸 목표로 진행해야 엄마도 덜 지치고 아이도 흥미를 이끌어내며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엄마표영어는 결국 누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느 정도까지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느냐가 최종 결과를 보여주기에.
정리하자면 영어에 노출이 적은 아이들이 생활영어조차, 혹은 간단한 단어조차 모르는 상황에 있는 아이들이 조금 수월하게, 아는 단어를 하나하나씩 늘려가며 영어 귀를 열 수 있게 디딤돌 역할로서 원서를 사용하여 단어 인지 과정을 도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태가 된 것이지, 영어원서부터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하는 건 아니란 말이다. 단지, 환경적인 특징 때문에 모국어 습득 환경과는 조금은 다른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는 것!
책 속에 모든 길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마다 성향과 선호하는 바가 다르다. 나 조차도 글씨를 보는 것보다는 책보다는 영상을 더 좋아했다.
영어책을 인풋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단어를 눈에 익히고 동시에 단어 확장을 할 수 있다. 거기에 주제와 관련된 독후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책 만큼이나 요즘 유튜브나 기타 다른 영상들 역시 좋은 컨텐츠가 많다.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경우는 자막 처리가 제법 잘 되어 있다. 원하기만 한다면야, 영어 자막과 함께 시청이 가능하다. 꼭 집중듣기(음원을 틀어놓고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며 읽는 것) 하는 것처럼 영상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큐멘터리 등의 영상은 책과 마찬가지로 유익하고, 나와 같은 시청각형 인간들에게는 오히려 더욱 새로운 자극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다양한 장르의 영드, 미드를 보며 실생활에 사용하는 영어 표현들을 자연스레 습득했다. 나아가서 이 과정들을 통해 즐거움 속에서 영어 듣기 실력이 향상되었고, 영어 단어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한 번 아이들 영어 귀가 뚫리고 나면, 아이의 관심도에 따라 영상 노출을 다양한 장르로 해 주는 것이 가능해진다. 인풋의 소스를 다양하게 해줄 수 있고, 단어 확장 역시 수월해진다. 이 때부터는 사실 독서습관 및 지문 이해 능력 등에 도움이 되는 원서읽기도 중요하지만, 실생활에서 영어가 어떻게 쓰이는 지를 영상을 통해 시청각의 협응으로 더 빨리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첫째가 지금 8살, 초등 1학년인데 요즘 옥토넛을 영어로 시청하고 나에게 한국어로 해양생물의 특징 등을 이야기해 준다. 놀라운 사실은, 해양생물 관련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 이 점을 고려한다면 시청각 협응을 통해 영어를 받아들이는 흡수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 지 단번에 이해가 된다.
아무리 엄마표영어가 모국어 습득방식을 표방하고 모국어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해도, 한국은 EFL 환경일 수 밖에 없다. 엄마나 아빠가 영어를 유창하게 해서 어느 정도의 상황에 맞는 영어를 사용해주는 것이 가능하다면 모국어 환경 100%의 방법을 따라도 큰 무리가 없이 진행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만 믿고 영어 노출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심지어 신랑이 영국인인 우리 가정조차 집 밖을 나서면 한국어 이외의 언어는 들어볼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잘 곱씹어보면 집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영어 환경 (일테면 English Only Zone)을 조성해주는 것 말고는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없을 정도라 해도 무방하니.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경우가 아니고 아이 머릿 속에 한국어/외국어 구분이 이미 지어진 상태에서 시작하는데 그마저도 영어 노출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라면 영어원서로 아이들이 아는 단어 하나 둘씩 늘려 모국어 환경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필수단어 100-200개를 먼저 인풋을 주면서 시작을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요즘들어 특히나 엄마표영어를 한다는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영어원서만이 답이다! 라는 인식을 갖도록 책을 쓰거나, 방향을 잡는 느낌도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시작을 영어원서로 하더라도, 끝맺음까지 영어원서로 해야 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아이들이 모두가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영어를 못 하는 것도 아니듯이, 엄마표영어를 영어원서로 시작해야만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하는 아이의 연령에 따라 영어원서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란 사실은 이 과정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