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저렇게 푸릇푸릇할까요. 연두빛이 너무 예뻐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식물 쇼핑을 다닐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연두빛 하늘 하늘함의 주인공은 바로 고사리입니다. 홀연히 그 매력에 빠져 하나씩 둘씩 구입하고 곁에 두게 되는데요. 보고만 있어도 봄의 상큼함을 내 집으로 데려온 것 같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어여쁜 고사리가 집으로 온 순간부터 내 속을 썩이기 시작하지요.
고사리는 나름 예민하기로 유명한 식물입니다. 속 흙은 과습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밖으로 나와있는 잎들은 물을 너무나 좋아하지요. 그래서 가습기를 틀어주거나 수시로 물분무를 해서 잎이 마르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게 웬만한 부지런함으로는 하기가 어렵습니다. 귀찮다는 이유로 조금만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금새 잎이 타버립니다. 누렇게 변하고 말라 비틀어지지요. 그래서 얼마나 미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름을 제외하고 건조하기만 한 우리나라 날씨에 고사리를 늘 촉촉하게 유지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처음엔 푸릇푸릇하고 어어쁘던 고사리가 차차 밉상으로 변하기 시작사지요. 여러 종류의 고사리를 길러봤지만 잎이 아주 두껍고 그나마 건조에 강한 아비스 고사리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렇습니다. 비슷한 잎맥과 모양을 가진 아프파라거스가 생생하게 새 잎을 내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지요. 잎이 꼴보기 싫어질때마다 다시는 고사리를 사지 않으리라 다짐하는데요. 화원에 가면 또 다시 연두의 싱그러움이 눈길을 끌어 자연스럽게 손이 갑니다. 밉상이 될 줄을 알면서도 집으로 들여 후회하는 일상의 연속입니다.
고사리는 사춘기를 닮았습니다. 아니 사춘기가 고사리를 닮았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시기이지만 한없이 까칠하기만 한것이 비슷하지요. 너무 예뻐서 계속 보고 싶은데 새초롬하니 피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대해줘야 제대로 키워내는 건지 마냥 어렵기만 한것도 비슷하지요.
학원에 갔던 딸아이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열시반이면 집에 들어와야하는데요. 열한시가 다도록 소식이 없네요. 이상하다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디야?"
"집 앞이야."
다 왔다길래 들어오려니 했는데요.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소식이 없습니다. 여자 아이 혼자서 열한시가 넘는 야밤에 돌아아디는게 걱정스러운데요. 집으로 들어서는 아이의 표정은 무심함 그 자체입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걷다 왔어."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다는 딸아이였습니다. 스스로 걷고 왔다는 게 놀라워서 다시 한번 물었지요.
"왜?"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걸었어."
항상심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기분이 들쑥날쑥한 적 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던 친구인데요.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 걸었다니 나쁜 일이 있는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엄마 이거 먹을래? 기분이 안 좋고 공부도 안되서 아빠 돈으로 초콜릿 샀거든. 혼자 여섯개나 먹었더니 느끼해. "
아이가 두개의 킨더초콜릿을 내밉니다. 내가 도리 도리 고개를 젖자 멀리서 기회를 엿보던 아들녀석이 냉큼 채갑니다.
"무슨 일 있는건 아니지?"
"아니야."
아이는 짧은 대답만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아이 잠 단속을 몇 번 하다가 제 풀에 껶어버린 나는 오늘도 12시가 넘어 잠이 들테구요. 아이는 자기 방에서 두시넘어서까지 뭔가를 할 것입니다. 말린다고 말려지지도 않고 화낸다고 달라지지 않는데요. 오늘은 기분이 안좋다하니 내버려둡니다. 호르몬이 춤을 추는 사춘기라서일까요. 아이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을까봐 덜컥 겁이 났지만 아이가 괜찮다니 믿는수밖에 없지요. 하늘 하늘 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해드셋으로 귀를 막아버리는 딸아이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언젠가부터 딸아이는 가족과 함께 하는 활동을 피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심심한 날이거나 얻을 게 있을 거 같을때는 함께 하지요. 아직 중2밖에 안된 녀석이 가족여행도 마다하고 집에서 혼자 숙제와 시험준비를 하겠다고 했을때는 새삼 놀랐습니다. 혼자 자는게 무섭지도 않은가 싶었는데 아이는 그 다음날 혼자 읽어나 시간에 맞춰 학교도 잘 갔습니다. 혼자서 신이나서 1인 피자를 배달시켜 먹는 것을 보고 다 컸구나 싶기도 했지요. 하지만 어느날은 중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저래서 사회생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분위기를 못 맞추기도 하지요. 그런 모습 중 어떤 것이 진짜 아이의 모습인지 아리송합니다. 그리고 어느 장단에 맞춰 아이를 대해야 할지 어렵기만 해요. 마냥 어린아이로 대하면 자존심 상해하고 존중해줬다가 엉뚱한 행동을 해서 감당에 골머리를 썩으니까요.
아직 나는 아이를 다 알지 못합니다. 뱃속에서부터 키워서 하나 하나 내가 보지 않은 아이의 발달이 없었지만요. 이제 사춘기가 되다보니 아이도 내가 모를 자신만의 시간과 경험이 생기더라구요. 어쩔땐 내가 배 아파 나은 자식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거리감이 느껴질 만큼요. 그런 과정들을 겪어 나가면서 아이도 나도 성장해 나갈 테지만 가끔은 너무 남남같아 서운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아이가 고사리를 닮았고 고사리가 사춘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아이가 나에게서 충분히 독립하고 싶으면서도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지금의 아이이겐 자연스러운 과정일 테니까요. 그 과정들을 거쳐 나가면서 더 튼튼하고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겠지요. 아직은 조심스럽고 예민하기만 한 사춘기 딸아이는 오늘도 나를 아리송하게 합니다. 어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기도 하는데요. 내 생각보다는 아이의 바램대로 잘 따라가주려합니다. 어차피 내가 욕심부린다고 해도 과습이나 건조를 이겨내는 것은 아이 제 몫일 테니까요. 아이가 건강하고 싱싱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귀하고 사랑하는 나의 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