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김밥 장사를 하던 그 아가씨,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돈으로 시계만 사는 게 아니라 시간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
오후 3시가 되자마자 아르바이트 학생은 후다닥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그녀는 3시 전에 미처 마무리되지 못한 설거짓거리를 떠안아야 하는 사장이다. 오늘도 설거지통 앞에 서서 가게를 나서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제대로 인사를 해주지 못했다. 손이라도 흔들 요량이었다. 하지만 축축한 물기 탓인지 고무장갑을 연신 벗겨내려 애를 쓸수록 궂은 팔자가 그녀에게 착 달라붙 듯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사장님. 계산 좀 해주세요.”
고무장갑이 아직 채 벗겨지지 않았는데 아르바이트생은 좀 전에 떠났다. 속도 모르는 야속한 손님은 홀로 남은 사장을 연신 불렀다. 1분만 일찍 불렀으면 좋으련만 어디 장사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을 것이다.
“네!!! 잠시만요!!!!!!!! 금방 나갈게요!!!"
자꾸 채근하는 고객을 향해 목소리만 앞세워 내보냈다. 억지로 뜯어낸 고무장갑을 팽개친 손은 그 목소리 뒤를 쫓는다.
땀의 대가가 너무 저열하다. 건너 건너 집 누구 사장은 오픈 한 지 몇 달도 채 안 되어 외제 차를 뽑았다는 데 몇 년째 스쿠터 한 대도 뽑지 못한 그녀는 언제부턴가 매월 돌아오는 말일이 무섭기만 하다. 받은 거 없이 달라는 놈들만 젖은 손의 고무장갑처럼 달라붙는다. 아르바이트생이 미처 정리하지 못해 테이블에서 나뒹구는 그릇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더욱더 신산스럽다. 열심히 해도 정리되지 않는 그녀의 빚더미를 보는 심정이겠지.
계산을 마친 후 고무장갑을 벗은 김에 그릇을 차곡차곡 모아서 주방으로 돌아왔다. 하다만 설거지도 마저 하고 얼른 시장에도 다녀와야 하고 저녁 장사도 준비해야 하고…. 머릿속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늘 마감 때까지의 스케줄을 되뇌지만 그 속에 그녀의 밥때는 없다. 밥장사하면서 내 밥을 못 챙긴다는 이야기는 이제 우습지도 않다.
“배달의 민족, 주문. 배달의 민족, 주문”
“옘병.”
머릿속 스케줄을 흐트러뜨리는 배달 접수 알람 소리가 났다. 욕이 절로 나는 소리다. 몇 년째 이 시간에 혼자 가게를 이끌고 나가는 게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아직도 저 알람에는 정신이 아득해진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소리에 겨우 벗었던 고무장갑을 다시 내동댕이쳤다. 찰싹. 고무장갑이 부딪히는 마찰음에 정신이 든다.
“아이고, 이게 왜 떨어진대?”
괜히 신소리를 하며 홀에 남은 손님이 들었을까 봐 실수로 떨어뜨린 척했다. 얼른 짜두었던 머릿속 계획을 다시 쪼갠다. 오늘도 밥 먹기는 글렀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다. 하루 8,590원이면 주문을 놓치는 걱정 없이 저녁 장사 준비도 할 수 있고, 작은 일에 옹졸하지 않을 대밭 같은 마음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대밭 같은 마음을 포기했다.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는 마음으로 살아 갈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월말을 준비해야 하는 그녀는 사지 않을 애꿎은 시간만 하염없이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녀는 매일 같이 그녀를 본다. 그녀는 한남에도 있고 공릉에도 있고 부산 대연에도 있었으며 진천 두촌에도 있었다. 전국 도처에 있는 그녀들을 대변하기 위해 온 힘을 갈아 넣고 있던 그녀는 2017년 겪었던 계란 파동이 2021년에 또다시 재생 되는 것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였던 시절과 그녀들을 돕는 현재의 교집합에 최대한 머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