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팔렸다. 설마 그런 순간이 올까 싶었으면서도 언젠가 마주할 순간이었다. 사실 집안의 경제적 이유로 20년 가까이 살았던 집을 매물로 내놓은 지는 꽤 됐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집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그러다 낌새가 심상치 않은 사람이 몇 차례 집을 구경하고 가더니 결국 오래 살던 추억의 집과 이별하게 됐다.
집이 팔려야 한다는 생각과 팔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지난 1년간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고 갔다. 백수에다 코로나 때문에 '집콕'하던 내가 주로 손님을 맞이했다. 집을 살피고 가는 과정은 짧고 허무했다. 평균 10분을 넘지 않았다. 자취방 같은 원룸도 아니고 그래도 3-4인 가족이 살 집인데 과연 이 시간 동안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시간이 짧아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의 장점보다 단점을 찾는 게 주요 목표였다. 혹시 어떠한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왜 집을 시세보다 싸게 내놓았는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느낌적인 느낌대로 그런 사람들은 한 번의 방문으로 이 집과의 인연이 다했다. 그리고 나는 내심 안심했다. '조금 더 이 집에 살 수 있겠구나.'
그녀가 나타난 것은 얼마 전이었다. 5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 남편과 아들. 세 가족이 살 것이라 말했다. 그녀의 태도는 다른 사람과 좀 달랐다. 집을 천천히 훑어보더니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다른 사람들이 했던 질문과는 다른 결의 질문이었다. "이 집에 살아보니 어떠셨어요?", "어떠한 점이 좋나요?", "여기는 다르게도 활용할 수 있겠네요." 마치 어린아이가 신나는 소꿉놀이를 하듯 그녀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그녀는 이후 3번이나 집을 더 구경하고 난 뒤 계약을 하겠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방이 텅 빈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분명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했던 우리 집의 장점과 가치를 발견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천천히 또 자세히 살펴보고 다양하게 상상하면서! 그녀에게서 발견의 미학을 배운다. 내가 새로 이사 갈 집을 처음 보았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새로 이사 갈 집은 지금의 집보다 좁고 누추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철없게도 한숨을 내쉬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그 집의 단점들부터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그녀처럼 새로 이사 갈 집의 잠재적 활용도를 상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페인트 칠을 한다든지 가구를 어느 위치에 놓는다든지 개성을 발휘해서 꾸밀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뒤늦게 얼굴이 붉어졌다.
집이 팔렸다. 나는 이제 새로운 집으로 가야 한다. 단순히 자취방을 구하는 게 아니라, 20년의 추억이 녹아 있는 공간을 떠나는 게 퍽 아쉽다. 하지만 만남 뒤 헤어짐이 오고 헤어짐 뒤에 만남이 온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가 있지 않던가. 옛집의 새로운 주인이 될 그녀를 다시 떠올린다. 새로운 사람을 발견하는 것처럼, 그녀가 즐거워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즐겁게 상상해보려 한다. 안녕 나의 집. 안녕 나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