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라나의 편지
글을 꽁지로 올리니 두 사람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참 좋았어요.
언니와 성호의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는 저마다의 글쓰기 최전선에 놓여 있구나’였습니다. 누구 하나 물어본 적 없는데 이 하나의 질문에 답을 하는 글을 쓰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러분은 글을 왜 쓰나요?”라고요.
성호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고 자기 삶을 가꾸며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글을 쓴다고 이야기하네요. 혜정 언니는 본인의 글쓰기를 순수 글쓰기도 직업적 글쓰기도 아닌 경계성 글쓰기라며 정의하며 언젠가 자신만의 노선을 정하길 기대하네요.
그렇다면 나는 왜일까요? 나는 왜 글을 쓸까요?
은유 작가님의 글과 여러분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쓴 글이 몹시 부끄러워졌어요. 어제 하루 온종일 쓴 글에 오로지 ‘나’로만 가득한 게 부끄러웠어요. 내 욕심으로만 가득 채워진 글을 나는 썼구나 싶었어요.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있노라면 은유 작가님의 글은 ‘연대의 글’이란 게 느껴지지 않나요? 그 부분에 대한 인상이 강렬했는지 머리말에 밑줄을 그은 부분을 옮겨봅니다.
“세상이 피폐할수록, 삶이 고단할수록 여럿이 함께 읽고 쓰고, 느끼고 쓰고, 말하고 쓰고, 회의하고 쓰는 이 찬찬한 삶의 쾌락을 도무지 내려놓을 수 없다. (중략)”
언젠가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쓸 때 나 역시 여러 사람과 글을 함께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함께 글 쓰는 사람을 꿈꾼다.’는 내용을 소개 글에 쓰기도 했죠. 그런데 그 글을 쓴 나는 어디로 간 것인지, 스스로가 사라져 버린 느낌이 듭니다.
귀도 얇고 눈도 얇은 나는 누군가의 성공 사례를 듣고 보며 내 글에도 ‘부와 명예’를 좇는 목적을 부여했어요. 그러는 동안 나의 글다움은 사라졌고, 글밥이 되는 책 읽기는 더 멀어져 간 기분이 듭니다.
은유 작가님 역시 글이 써지지 않고 책이 멀어졌던 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작가님 역시 업으로써 글쓰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작가님이 했다는 ‘쓸쓸한 분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침에 30분 일찍 집에서 나와 사무실 근처 벤치나 카페에서 잠깐 책을 읽거나 필사를 했다. 점심시간에 책을 들고 나와 카페에서 한 시간씩 책을 읽다 들어갔다. 쓸쓸한 분투였다.”
쓰는 표현들을 보면서 어떤 식으로 해야 작가님처럼 써질까?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마 우리 셋 다 글을 쓰는 이의 입장에서 공통된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하늘 같이 우러러만 보이는 그분과 그나마 나의 연결고리를 겨우 찾아낸 점이 있다면 ‘사보 작가’ 란 부분일 거예요. 저는 작가님과 달리 언제나 대체 가능한 갑을병에 해당하는 ‘병’이죠. 작가님은 대체 불가한 문장을 쓰라고 했지만 제 현실은 대행사 관계자와 담당자에게 교정을 당해야 하는 비참한 직업인이죠.
은유 작가님을 그 어떤 작가들보다 감히 '존경'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시선이 향해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도 작가님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그녀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쓰기 모임을 하셨죠. 그리고 계속해서 나오는 책들에는 작가로서 명예, 성취보다 우리 사회의 비치지 않는 그늘을 향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작가님처럼 자발적이지 않았지만 제가 만났던 사회의 그늘진 곳에 그래도 늘 희망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기관에서 조차 포기해버린 중증 장애인 한 명의 케어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며, 임대 아파트 오갈 데 없이 외로운 노인분들을 위해 공동체를 꾸린 사람 저는 그렇게 사람 속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느냐? 이것은 자신 없었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기다리고 들어줄 수 있느냐? 물음을 바꾸었을 때,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주 저는 사회복지학과에 대학원 원서를 썼습니다. 뒤늦게 '사회복지사'로 재취업을 해보겠다는 마음보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 곁에서 들어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저의 이 바람이,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 닿을 수 있을까요? 나의 글로 감히 그들을 공감해주고 토닥여주길 감히 꿈꿔 봅니다. 앞으로도 더더 은유 작가님의 글 속에 지혜를 구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언제 가을이었냐는 듯 몹시도 추운 밤입니다. 부디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기요~
누군가에게는 더욱 시릴듯한 겨울 어느 날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라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