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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잔 Oct 24. 2021

앞으로도 우리는

애정 듬뿍, 성호의 편지

< 에필로그 >

라나와 혜정언니에게     


‘가을’이라는 말은 

참 마음을 풍성하게도 서럽게도 합니다.


우리들이 지난 봄 부지런히 모여 책을 펴놓고 

우리의 일상을 길어 올리던 때가 떠오르네요. 

<올리버 트위스트> 읽고 모이기로 했던 날, 다 읽고 온 사람은 혜정언니뿐이었어요. 

그리곤 정작 이야기꽃을 피우게 된 책은 <태도가 능력이 될때> 였죠.     


혜정언니는 대학원 생활을 막 시작했고, 

라나는 미취학 어린이 둘과 살림을 돌보며 외주 작가로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는 일을 하며 작은 출판사 마케팅을 프리랜서로 병행하고 있었죠. 

저는 논술 강사로 일 한지 일 년도 안 된 시점이었구요.      


이 책을 본능적으로 골랐던 건 혜정언니예요. 

주부의 정체성을 단전쯤에 깊이 품어두고 언니는 호기심을 길잡이 삼아 영혼을 깨우러 다녔던 듯해요. 

아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만큼 클 동안 블로그 기자로, 대전 지역의 여러 강의와 활동을 수년간 섭렵했죠. 

그러다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봐온 언니의 남편은 아내의 새로운 호기심 줄기 다발을 발견하곤 제대로 해보라며 대학원에 등 떠밀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대학원 생활이었어요. 

담당 교수가 국가 예산을 따오는 연구 사업을 추진하며 학교에 4시간 출근해서 공모부터 사업 진행에 필요한 일을 하며 월 백만원의 급여를 지급하기로 한 상황이었고요. 

대학원생과 노동자 역할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누군가 알려주기를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시점이었던 가봐요. 


언니 모셔온 우리의 훌륭한 조언자를 만나고 

저와 라나는 ‘지각은 왜 일생토록 고쳐지지 않는가‘ 라는 주제로 반성과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저는 서울에 놀러가는 버스 안에서 이 글을 써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왜 아파트는 레고처럼 생겼는지 잠시 딴 생각을 해봐요. 


우리가 언제부터 책을 함께 읽었는지 더듬어보니 올해 5월이었는가봐요. 


라나와 제가 책을 함께 읽기 시작한 건 8년이 더 됐어요. 

배가 남산만하게 부른 임산부 두사람이 책모임에서 첫 만남이라니! 

저는 오래하던 모임이었는데 

저보다 더 부른 배를 안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임산부를 보고 오지라퍼인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어요? 

말을 걸고 서로 번호도 교환해요. 

그 다음 날 바로 만나 수다를 떠는 데 우리의 취향이 책과 글쓰기에서 운명적으로 만나지지 않겠어요. 

그렇게 우리는 대전 맛집과 함께 저자의 강연, 새로 생긴 책방을 투어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를 낳고는 애기띠에 아기를 매달고 4명이 한 세트로 여행도 육아도 숨통이 되어 주는 책도 함께 했어요.  

     

그 인연이 언니와 라나와 저 이 세 사람을 묶어 함께 책을 읽게 했나봐요. 

라나와 같이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언니를 만나 우리가 이제야 우주의 기운을 받는가 보다 하고요. 

     

’비블리오 독서 배틀‘에서 우리 셋이 일등 먹은 일은 길이길이 기념할 사건이에요. 

우리 셋은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역량을 쌓아 오지 않았나 싶어요. 비대면에 최적화된 우리 셋은 대회 준비도 책모임도 화상으로 훌륭히 해냈어요. 


그치만 시상금으로 백만워치 책을 사준건 너무하지 않아요?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우리라도 책이 백만원치 미리와서 읽어달라 아우성치면 부담스럽다구요..     


저는 가을이 깊어갈수록 이불속에서 이야기를 탐닉해요. 

매일 눈을 뜨고 감는 시간마다 이야기가 저를 다독여 주어요. 

잘자 그리고 잘잤니 하고요.      


우리가 책을 읽고 글을 지어내는 동안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우리 세 사람 어느 자리 어느 시간에 살더라도 읽고 쓰고 나눠요.

사랑해요.      

                                                애정을 담아 성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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