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Jun 21. 2020

.노인이라 불리어진 적이 없는 재벌총수의 비애.

늙음


대문 밖 의자.


출근길 집을 나서고 모퉁이를 들어서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러닝셔츠 하나로 여름을 그곳에 앉아있던 할아버지의 옷이
"어! 할아버지의 옷이 긴팔이 되었네. "라고 하면   계절이 바
뀐 것이다.

계절마다.  박제처럼  앉아있는 할아버지의 얼굴 너머 빈 공간을 응시하는 시선 속에는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눈부처가 없다. 빈 허공 같은 풍경만 시선에 스쳐간다.
사람들은 그저  풍경 속 그림이 되었다가 그림속져나간다.

아름다운 미니스커트의 아가씨에게
머무는 시선도
아장아장 걸어가는 꼬마 아이에게 머무는 시선도 푸른 하늘을 보는 시선처럼 투명하다.

그저  죽음 너머의 세상을  기다리는 정지된 세계를 보는 듯
평온하기만 하다.

그 흔한 미소 하나 없이 자신의 살아온 생을 대변이라도 하듯,
말없이 긴 시간 대문 밖 세상을 구경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을
감탄하면서 마주한다.


저 평온한 호수 같은 표정 안에도
한때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욕망이라는  회오리가 있었을 테고,
집착처럼 끊적끊적한 애증의 끈적거림이 있었을 테고.
차디찬 얼음 같은 냉정함이 있었으며
봄날의 연둣빛 풋풋함이 있었을 텐데....


봄가을 여름이 되면
갈 곳도 없이 매일매일을 대문 밖 의자에 앉아서 허공을 직시하는 노년의 삶이 아름답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른다.

가족들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손주를 가슴에 안은 노인의 모습.
수석을 쓰다듬고.
난을 정성스레 손질하는 노인의 모습.
바둑을 두면서  장고하는 노인의 모습.
한복을 입고서
문중들의 회의에 기품 있는 완고함 표정으로 앉아 집안의 어른으로써 어떤 결정을 내리는 노인의 모습.
그룹 총수로 모든 아랫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걸아가는 노인의 모습.
시골마을에  논밭에 앉아서 구슬땀을 흘리며 햇살 밑에 익어가는 노인의 모습.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로만 불리어진 노인의 모습도.

그 어떤 모습이라도.
젊은이들의 시선에는 늙음이라는  노인의 마침표로 끝을 맺는다.


단 한 번도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본 적이 없이 회장님으로만 불리어진 어느 재벌 총수의 비애는 자신이라는 시간 속으로 들어갈 기회도 없이   어지러운 세상속에만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인지 모른다.


세상을 향해 삿대질을 하든지
초라한 몰골로 누워지네 든 지
권력을 손에 쥐고 타인 들위에서 군림하던지

늙음이라는 건 세상을 풍경처럼 바라보는 시간이 왔다는 것인가!
아무것에도 머물지 않는 시선
죽어있는 듯한  시선
생의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듯한 그 시선을
왜 나는  평온하다고 느끼는 걸까!
나는 늙음에서 어째서 평온함만을 보려 하는 걸까!

그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갔다는 의미가 아닐까!

때가 되면
그저 한 인생의 시선은
자신의 삶 안으로 돌아갈 시간이 찾아온다.

혼자가 되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 시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죽음을 기다리는 체념 같은 시간.
평온한 내면의 휴식 같은 시간
무로써 텅 빈 시간
지나간 세월의 회한의 참회의 시간
빛바랜 추억을 무한 반복되는 재생의 시간.

그 표정 안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의 흔적들이 고여 있는 것일까!

기억마저 희미해진 지난날들을 조각조각 맞추다 또 사라지고
또 맞추기를 반복하다 보면 밥때가 되고 허기를 채우고
다시 대문 밖 의자에 앉아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지난날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던 흔적만이라도 잡고 싶은 기억들.
그저 존재의 순간 속에 머물기 위해 세상을 구경한다.
사람들 속이 아닌 대문 밖 풍경  정지된 시간 속에서....

혼자만의 정지된 시간 속.

자신의 삶을 감당해낸 자의 얼굴은 평온하다.

자신의 시간 속
주위는 풍경이 된다.

할아버지의 풍경 앞으로 내가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는 지구의 한 모퉁이 대문 밖 의자에 앉아있고.
할아버지와 나는 같은 시간 속에 존재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하나의  같은 풍경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하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