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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Oct 26. 2020

창조되는 마음

연약함


언제부터 그 사람이 내 마음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을까?
언제부터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일까?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사람을 한번 좋아하면
마음이 뒤바뀌는 일이 별로 없다. 한 사람의 매력이 주는 그 힘은 믿음이든 신뢰이든
내 마음에 애정 불변의 법칙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애정 했던 그 사람은 신앙 속으로 깊이 들어가 나에게 인간적인 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신앙이 깊어갈수록 그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강해졌다. 흔들림이 없었고 늘 정답을 가지고 있었고,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난 점점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외로웠었다.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대화는 점점 단조로워져 갔다. 그렇게 믿음의 강을 사이에 두고 내 마음도 애정 불변의 법칙을 깨고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그 사람 곁에서 나를 외롭게 만든 건  한때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 사람만의 생각이 없어졌던 까닭이었고. 그 사람만의 고유성이 사라진 이유였다.
내가 느꼈던 그 사람만의 인간적인 매력이 사라지고 나자.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사람은 깊은 신앙심으로 깊어지자 점점 자신의 세계를 통제하고 자아를 죽여갔다.   그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믿음이란 내가 다다를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었고 알 수 없는 세계였다.

우리의 관계가
멀어져가는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 사람의 깊어져 가는  신앙심 때문에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자
우리의 소통은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가끔씩 그 사람의 과거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매력들을 떠올린다. 그 불안정했던 고뇌와 연약함은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서로에 위안을 주며 편안함과 동질감을 주었었다. 우리가 서로에 개 이끌렸던 건 바로 그런 내면의 공허함과 불안정한 마음 때문이었다.

나도 신앙이 깊어지면 이런 마음의 공허가 사라지고 내 마음 안에서 평온함을 찾으면 이런 나만의 인간적이 매력이 사라지게 될까?

내가 예수님의  사랑과는 별개로  교회라는 거부 감안에서 기독교라는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건 성경 속 전지전능한 나의 창조주가 아니었다.
나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도 아니었다.
성경이 영리주의라 반박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도마복음서를 읽고 인간적인 예수의  대화에서 느끼는  위로와 공감 때문이었다.
성경 안에서는 도무지 예수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믿기만 하기에는 신의 아들을 내 이성이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마복음서에는 인간 예수의 어록들이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 있었다.
은유와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단호함과 연약함이 인간적 매력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단지 믿기만 해라가 아니라 먼저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전지전능하신 신의 강함은 인간의 마음을 굴복시키지만
전지전능하신 신의 연약함은 인간의 마음속 위대함을 이끌어낸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단지 인간에게 자신의 권세를 위해  순종만을 원하고
굴복만을 원하는 게 아니다. 당신이 지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숭고함도 원하신다.
그러기에 죄지은 자도 용서하는 것이다.

완전한 인간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연약함에 더 귀 기울 이 신다.
우리에게 기적이나 어떤 환상을 주는 게 아니라.
자기 성찰을 통한
깨달음으로써 우리의 마음 안에 자신의 목소리를 심어주신다.
인간이 거룩해지는 마음은 바로 창조하는 마음이고 강해 짐이 아니라
부서지면서 내는 아름다운 소리들이다.
인간적인 모습과 마음을 잃는다면 인간은 아름다워질 수 없다.

신이 우리에게 준 모든 감정들을 잃어버리면 아름다움을 빼앗기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세상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걸 할 수가 없다.
누가 신에 대해서 함부로 결론 내릴 수 있는가!
단지 우리가 믿는 믿음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따를 뿐이다.
그 목소리는 인간의 창조력의 원천이다.
신의 사랑은 그리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이브가 선악과 열매를 따먹은 것은
선악의 분별과 동시에
창조성을 가진 존재가 된 것이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숭고한 존재가 된 까닭이기도 하다.

신은 인간의 창조력을 사랑한다.
모두가 똑같아 지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신이 부여한 생명의

고귀함안에서 애쓰면서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삶을  사는
각기 자기의 모습을 원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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