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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r 22. 2021

가재가 노래하는 곳

외로움


평생을 생태학자로 동물 생태를 연구하며 글을 쓰던 학자가 70이  첫 소설책을  출간한다.

그것만으로 흥미가 당겨 읽기 시작했다.

델리아 오언스라는 작가는 정확히
자신을  소설로써 표현한 듯하다.

한편으론.
이런  불굴의 의지를 가진 분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고맙다.

가독성이 끝내 준다.
하지만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곳곳에 주옥같은 시들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옥에 티라면
70세 작가의 소설이라서 그런지.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라서 그런지
 대사들이 조금 올드하고
사변적 사유가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이 두꺼운 책을 이틀 만에 정독하게 만드는
서사적 스토리의 힘이 강한 책이다.
마치 7년의 밤을 읽었을 때 느낀 그 휘몰아치는 스토리의 광풍처럼 손을 뗄 수가 없다.

카야가 어떻게 됐지?
카야는 정말 체이스를 죽였을까?
카야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체이스를.....

외로움과 배고픔, 그리움, 수치스러움.
이 네 가지 중 어떤 게 제일 고통스러울까!

배고픔은 모든 고통을 몰아내는 첫 번째 갈망이지 고통은 아니다.

하지만 배고픔이 채워지고 나면 그때 비로소 고통이라는 단어가 제대로 자리 잡는다.

7살 소녀가 세상과 단절된 오지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내 애간장을 태웠다.

소녀는 배가 고팠다.
혼자 남겨진 걸 잊을 만큼.....
주린 배를 채우는 법을 알고 나서부터.
자연에서  세상으로 나와
외로움. 배고픔. 그리움. 수치스러움이라는
감정들과 만난다.

그렇게 소녀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사랑이 고프기 시작했다.


1950년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습지 판잣집에 혼자 남겨진 소녀!

마을과는 먼 늪지대 마약쟁이, 범죄자들이 숨어 사는 외딴곳에 사는 카야.

소설 전반부 소녀의  나 홀로  성장기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페이지를 덮으면 그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7살 소녀  카야가 오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아무리 폭력적 남편이라고 해도
7살밖에 안된 여자애를 두고 엄마. 오빠 , 언니들이 하나둘씩 떠나버릴 수 있을까!

계속된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이라는 선택밖에 없었던 카야의 가족들....

책을 읽는 내내 혼자만 씩씩대고 있었는데 사실... 소설 속 카야는 너무나 차분하다.

노스캐롤라이나 해변의 깊은 습지를 누비는 갈매기. 왜가리들의 날갯짓, 늪을 채우는 풀과 나무들. 이안류가 흐르는 습지처럼. 소녀는 자연과 한 몸처럼 차분하다.

엄마와의 기억을 더듬어 혼자 밭을 가꾸고 홍합을 따서 아무 이게도 들키지 않게  보트를 타고 나가 팔아서 끼니를 해결하고 또다시 습지에 숨어
혼자 지낸다.

매일을 술과 도박으로 무서운 아버지를 피해 피난처로 미꾸라지처럼 도망갈 줄도 알고, 혼자서 돈 한 푼 없이 밭에서 자라는 무와 무순으로 끼니도 해결한다.

슬퍼하기에는 허기가 먼저 오고 사는 게 먼저였던 어린아이였다. 매번 술에 취해 돌아오던 아버지도 언제부턴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자. 카야는 완전하게 혼자가 된다.

이야기는 두 개의 시간대가 존재한다.


1969년 체이스 앤드류라는 마을의 가장
잘 나가던  젊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는 시점과
1950년 어린카야가 습지에 혼자 남겨지는 시점

이렇게 두 시간대가 평행선처럼 날실 씨실로 맞물리며 두 사건이 꼬여서 전개된다.


1969년대 시간은 카야가 체이스 앤드류의 살인범으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들로
시작한다.  


1950년대는
습지에서 혼자  성장하는  카야가 오빠 친구를 만나면서 순수한 사랑에 눈을 뜬다.
어린카야에게 글을 가르치는 오빠의 친구 테이트에게
처음 글을  배우게 된 카야는  시를 통해 언어의
즐거움을 맛본다.

카야는 문맹을 탈출하면서 "시"에 매료된다. 시를 쓰면서 테이트와 소통하고
자연과 이야기한다. 시는 가장 농축된 문학 장르이다.  시를 함께 배우는 두 남녀의
공감대를 생각해보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소설 전반에 흐르는 아름다운 시는 자연과 대화하는 카야의 노래 같은 언어로  동물학자로써 건조한 문체만을 썼을 것 같은 작가의 감성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카야의 성장기 속에는 실제 작가가 학자로서의 재능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아프리카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그 성과로 유수 학술지에 글이 실릴 수 있었던 7년간의 성과를 어린카야에게 빙의해 생존본능처럼 카야는 스스로 자연 속에서 하나하나씩 지식을 터득해 가는 과정이 리얼그자체이다.

.자연의 법칙 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성장시키는
카야가 생태습지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 같다.


그녀가 생명체 속에서 맺고 있는 유대감은 외로움의 부산물이다.
습지 동식물과 교감하면서 혼자 고독하게 살고 있는 그녀에게
1+1의 수학공식이 무슨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생식기의 본능적 욕구는 그녀를 사랑이라는
욕망에 자신을 베팅하도록 만든다.

첫사랑의 상대 테이트가 도시로 공부하러 간 사이
소식이 끊기자.
외로움에 지쳐가는 카야 앞에

동네의 바람둥이 섹스 사냥꾼 체이스가 앤드류가
나타난다. 야생마 같은 날것 그대로의 카야를 본 순간 체이스는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느낀다.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입담으로  인내를  가지고
그녀를 꼬신다.  그에게  카야는 정복 이상의 존재는 아니었다.

결국
그녀의 몸과 마음을 가지는 데 성공한다.

결혼이라는
달콤한 꿈을 꾸던 카야는 체이스의
그럴싸한 장밋빛 약속들을 믿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지만.
 배신당한다.

카야에게 체이스를 죽인 살해 동기는 너무나
명백했다.

하지만
카야는 무죄를 주장한다.

 
법정에서 편견과 맞서는
카야!
마치 앵무새 죽이기의 소설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카야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습지에서 야생인으로 살아온 카야에게
권력이 얼마나 배타적인지 소수자에게  행하는 횡포는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약자들에 대한 선입견과 멸시 조롱을
함께 담고 있다는 현실감을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카야는 습지가 물속에 잠겨 평온을 유지하듯이
모든 불렵화음을 빨아들이면서
조용히 세상과 혼자 싸운다.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인간들처럼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수를 늘이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적자생존에서 살아남는 유전자를 계속 유지하려는 것이다.
사마귀가 교미 시 암컷의 반응을 받아내고자 수컷은 자신의 몸뚱이가 먹혀가면서까지 번식능력에만 치중한다.

인간의 윤리와 교리로 판단 내리기 어려운 그곳.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부딪기며 살아갈 때 카야는 자연의 섭리를 몸으로 체험한다.

본문 발췌

수컷 사마귀가 포니처럼 허세를 떨며 고개를 높이 치켜들고 왔다 갔다 하며 구애를 했다.

암텃은 흥미를 보이며 촉수를 마술 지팡이처럼 마구 흔들었다.

수컷의 포옹이 힘찼는지 부드러웠는지 카야는 알 수 없었지만, 수컷이 생식기로 암텃의 알을 수정시키려 이리저리 찌르는 사이 암컷은 길고 우아한 목을 돌려 수컷의 목을 물어뜯어 버렸다. 쑤시고 박느라 바빠서 수컷은 눈치채지 못했다.

수컷이 제 볼일을 보는 사이 머리가 뜯기고 목만 남은  자리가 흔들렸고 암컷은 수컷의 흉부를 갉아먹더니 날개까지 씹어먹어 버렸다. 마침내 수컷의 마지막 앞다리가 암컷의 입 안에서 툭 튀어나왔을 때도 머리 없고 심장 없는 하체는 완벽하게 리듬에 맞춰 교미했다.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 상대를 잡아먹는다.
암컷 곤충들은 연인을 다루는 법을 잘안다.
.p340


최종 인간의 마지막에서도 교미 후 수컷은 버려질 수도 있다.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그녀만큼 이 지구라는 별과
그 속의 생명체들과 끈끈하게 유착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흙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
대지의 어머니에서 태어나서............

이 소설은 스릴러 , 러브스토리를 가미한 성장소설이면서 한 여인의 영혼을 담은 소설이다.

작가가 70세의 나이에 첫 소설을 출간했으니 어쩌면 꿈을 가진 우리의 응원의 메시지 같은 소설이다,

인간에게 닥치는 모든 시련은  저마다 다르지만
극단적 시련은 어쩌면 더 극복하기 쉬운지 모른다.
세상과 격리된 시련은 절대적 자아를
통해 스스로 성장시킬 수가 있다.
주인공 카야가 그렇다.
늪지대에 혼자 고립되어 있어도
카야는 불행이라는 걸 느끼지 않는다.

동물들을 관찰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유대감을 얻는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 부딪히기 시작하며 카야는 편견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불행을 경험한다.

진정한 외로움이 무언지
사랑은 무언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간을 주는 책이다.


(덫에 걸려나오지 못하는
사랑은 우리에  갇힌 짐승
제 살을 갉아먹는다.

시랑은 자유롭게  배회하다가
선택한 해변에  상륙해
숨을 쉬어야만 하는데)

카야는 죽을때까지
어맨다해밀턴이란 이름으로 아무도 모르게 한지역 신문에   수많은 시를 올린다.

일독을 권한다.

스포  하나를 날린다.

사마귀가 수컷을 포획하듯이 남자를 포획하고 그 비밀은 습지 속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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