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Jun 27. 2021

물 많은 여자(6편)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



풀옵션 작은 원룸으로 이사 온 전갑련의 일상은 느긋했다.

이삿짐이라고는 캐리어 가방  달랑 하나였기에 정리할 짐도 없었다.

일단 일자리를 먼저 구했다.

서울에서의 첫 일터로 출근하는 날 먼저

방문 요양센터에 들렀다.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청바지를 입은 전갑련은 머리를 한 갈래로 묶어서 30대로 보일만큼 젊어 보였다.

살집이 있는 몸매는 뚱뚱하다가기 보다는 농염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통통한 볼살에 처진 눈은 순진한 시골처녀를 연상하게 했지만 오뚝한 콧날과 갸름한 턱은 지적인 이미지를 풍겼다.

구다혜는 평범하면서도 야무진 전갑련의 인상에서 낯설지 않은 편안함을 느꼈다.



"전 선생님한테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이번 수급자는 기초생활보호자신데

독거노인 이세요.

근데 문제가 좀 있어요.

보호사 선생님들이 자주 바뀌는 분이세요."



그녀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경력사항을 보고  입을  삐죽 내밀 었다.

 사슴 같은 맑은 눈을 한 젊은 사회복지사 구다혜는 30대 중반의 싱글맘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느린 발음 때문에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차분한 목소리에는 맺고 끊는 결단력이 느껴졌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고 첫 일터인데 좀 수월한 분을 연결시켜 드려야 할 텐데 죄송해요."


전갑련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이 나이 동안 살면서 겪은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은 안 믿으실 거예요.

전 사람들을 가리지 않아요. 정 힘들면 그만두면 되죠.

일단 한번 시작해 볼게요."



전갑련은  구다혜가 맘에  들었다. 그녀의 직감으로 그녀는 입이 무겁고 자기 일에 소신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책상 하나와   2인용 접대 소파 하나로 꽉 찬 좁은 사무실 창문 선반에는 작은 화분 속 화초들이  오전 햇살을 받아 푸르른 빛을 내고 있었다.

구다혜는 센터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건이 좋은 수급자를 받을 형편이 아니었다.

10명의  수급자로는 수입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광숙 할머니는 스스로 전화를 해온 특이한 수급자였다.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들 사이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자 자신이 센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전갑련은 구다혜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단몇분의 얘기만으로도  이해했다.

수급자들을 더 모으기 위해서는 사람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물리치료사를 오래 하셨네요?  대단하세요. 제 친구 중에도 한 명 있는데.

힘들어서 벌써 관두고 살림만 하는 친구가 있어요."



"어디 물리치료사만 했겠어요. 알바로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이선생님은 상상도 못 할 그런 일도 해봤어요."



전갑련을 야릇한 미소를 그녀에게 지어 보였다.



"네? 제가 상상 못 할 일이라면 어떤....

어머 실례가 안된다면 여쭈어봐도...."



"나중에 시간 되면 얘기해 줄게요.

할머니 거동은  불편하신가요?"



"아뇨 기력이 좀 약하시지 건강하신 분이에요."



"근데 무슨 문제가?"



"6개월 만에 10명이나 선생님들이 바뀌었어요.

약간의 치매가 오시긴 했지만 인지능력은  있으시고요.

성격이 불같고 입이 거칠고 아주 사소한 것 까지 사람을 못살게 구는

악취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마음이 여린  요양사 선생님들은 상처를 받고 바로 그만두시더라고요. 거기다 조금만 맘에 안 들면 공단에다가 민원을 넣어가지고

일을 크게 만들어요. 골치 아파요."



" 원래 사람 다루는 일이 제일 힘들어요.

요양보호사 1년 정도 하면서 느낀 건  가사도우미 하고 별로 구별이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이라는 호칭만 바뀌었을 뿐

사람들의 편견이 심한 직업인 거 같아요."


"전 선생님 저도 사회복지사 자격증 따고 센터 오픈한 지 이제 3년밖에 안됐어요.

먹고살려고 시작한 일인데...  사회복지사도 그렇고 요양보호사도 그렇고

정말 힘든 직업 중에 하나예요."


오전 열 시를 알리는 괘종시계가 울렸다.


"요즘도 저런 시계가 있네요."



"돌아가신 아버지 유품인데 제가 사무실로 가져왔어요."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자 일어날까요. 할머니 댁으로 출발해요."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마치 브런치를 즐기러 가는 여유로운

 마음이 돼있었다.


전갑련은 그녀와 마음이 잘 통했다.


재개발 사무실이 보이는 상가를 지나 오래된 주택단지로 차가 힘겹게 접어들고

공터에   주차를 한 후 도착한 곳은 10평 남짓한 반지하 빌라였다.

잘 정돈된 거실에는  회장을 짙게 한  70대 초반의 노인이 앉아있었다.

가짜 큐빅 목걸이를 하고 외출복 차림으로 멋을 낸 노인은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맞았다. 전갑련은 집안을 훑어보았다.

바닥에는 머리카락 한올 없이 깨끗했다, 가구들은 오래된 골동품을 연상했지만 값비싸 보였다.

기초수급자의 집 치고는 가구들이 고가품들이었다.



"이분 이신가! 우리 집에서 일하실 양반이?"



"네 소개드릴게요.

전갑련 요양보호 사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어르신"



전갑련은 미소를 띠며  가벼운 목례를 했다.



현관에 놓인 전갑련의  굽이 반쯤 닳은 운동화를 보던 노인은   입꼬리를 내리면서  말했다.



"난 사람 지저분 한건 참을 수 있어도, 사람이 지나간 자리가 지저분한 건 참을 수가 없는 늙은이입니다."



노인은 몸에 베인 익숙한 눈동작으로 아래위를 훑었다.

" 손은 야물어 보이는데... 요양보호사 경력은  얼마나 됐죠?"



구다혜가  노인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어르신  그런 건 우리 센터에서 관여할 부분이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난 그 짝한테 질문한 게 아닌데."



김광숙은 턱을 들어 전갑련을 가리켰다.



'어르신?"



"김여사 님이라고 불러요!"



전갑련은 웃음을 터지는 걸 참으며 표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근데 여사님. 여기는  요양보호사가 왜 이렇게 자주 바뀌는 거죠?"



전갑련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구다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기분 상한  말투로 입술이 흔들렸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랑 같이 일 못하지.... 어떻게

뚫린 입이라고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나? 이 물건 이거

어디서 본때 없이 자란 물건이야?"



 구다혜는 익숙한 긴장감이었지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끼어들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전갑련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어르신 사람이 자주 바뀌는 이유를 말해주셔야지 제가 할머니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죠? 대뜸 화부터 내시면 어떡합니까?"



"구 선생 됐네. 딴 사람 알아봐 줘 난 이 물건 맘에 안 들어!"

노인은 전갑련을 외면하고 구다혜를 향했다.

구다혜는 노인의 손을 잡았다.



 "어르신  왜 그러세요.  아직 같이  지내보지도 않으시고..."

구다혜가 노인을 다루는 방식은  따뜻했다.

 감정을 싣지 않고  노인을  어르고 달래며

부드럽게  다루는 방식이 몸에

베어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전갑련은 전갑련만의 방식이 있었다.

억지를 부리는 환자들을 다루는 방식은 전갑련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어르신 요양보호사들한테 다 소문났어요.  제가 대표로 수습하러 온 거니까!

딴지 거시려면 제가  일하고 간 다음에 민원 신청을 넣으시던지 맘대로 하세요.

구선생님은 바쁘신데 얻은 가보세요.

전 이제부터 일해야 하니까요."



전갑련은 노인의 시선을 피해  그녀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구다혜는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전갑련이란 사람이 호락호락하게 노인에게 당하지만을 않을 것 같아

안심하고 집을 나왔다.



두 사람이 남은 집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내가 이래 봬도. 몇 년 전에는  기사 딸린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고..."

전갑련은 못 들은 척 일어났다.

"어르신 . 아니 여사님  집안은 깨끗하니까 됐고, 전 점심준비 좀 할게요."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여기 있는 과일은 모두 당뇨에는 독이고 반찬 종류도 장아찌가 너무 많은데..

약 드신다고 이렇게 음식을 함부로 드시면 안 돼요."



노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안방 문을 거칠게 닫고 들어가 버렸다.



안방에서는 강아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우리 예삐 일어났어?  엄마가 밥줄 테니까 기다려...."

노인은 강아지를 안고 나왔다.



"내가 자식들이 없지만 예삐 하나 보면서  한 14년  함께 잘 살았는데 요즘은 이 녀석이 갈 때가 됐는지.,

잘 먹지를 않네.... 그쪽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강단은 있어 보이니까......

전 선생이라고 했나? 냉장고에 북어 한 마리 있는데 물기가  없을 정도로 다 지근하게 북엇국 한 그릇

끓여 우리 예삐 먹이게...."

 노인은 마치 가사도우미에게 하듯 그녀에게 명령했다.



"여사님 이 냉동음식들은 누가 만든 거예요?



"얼마 전 우리 아들이 왔다 갔어."



"아까 자식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 어?  내가 그랬나?"

전갑련은 노인을 깊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노인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더니.

 졸음이 쏟아진다면서 강아지를 맡기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전갑련은  김광숙이라는 할머니를 맡기 전 서류상으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었다.

요양보호사 들은 노인 치매 예방치료를 위해 인지능력 교육 시간을 가진다.

보고서에 의하면 김광숙은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자기를 정신병원에 감금한

사건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서류상으로 할머니는 자식이 없는 독거노인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기초생활대상자라면 자식이 없는 게 확실했었다.

치매끼가 보인다고 했지만 그녀에게 비친 노인의 정신은 또렷해 보였다.



강아지가 화장실 앞에서 낑낑대자 화장실 문을 열었다.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깨끗한 집안과는 다르게 화장실은 난장판이었다.

오후 시간의 노동은 고스란히 화장실 청소로 시간을 다 보내야 했다.



청소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이 안방으로 가서  구대혜에게 전화를 넣었다.





"구 선생 저 물건 왜 저래

걸레에 물을 흥건하게 해서 방바닥을 적셔놔서 지나가다가 내가 넘어질 뻔했어!

딴 사람으로 좀 다시 바꿔줘!"



전갑련은 퇴근 준비를 하다가 안방에서 전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사님 저 퇴근합니다. 내일 봬요"

전갑련은 노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오후의  햇살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서울에서의 일상을 다시 예전으로 돌려놓은 듯

시간은 변함없이 제자리걸음인 듯했다.



10년 전 서울을 떠날 때 김승주와의 이별이 떠올랐다.

이제는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쓸려나가는 촉감이 더 크게 느껴질 뿐 그라는 존재는 아무런  감정의 여운이 없었다.



그녀는  영등포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옛 친구와의 약속이 있었다.

10년 전의 기억들이 박힌  영등포에는 박용재가 살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이야. 루피나"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는 온몸에 독수리 문신을 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10년 만이지... 나  살도 많이 찌고 아줌마 다 됐어."

헬스 트레이너 같은 근육질 몸을 가진 그는 10년의 세월은 비켜가기 힘들었는지

얼굴에는 주름이 생겼다.

하지만 건강한 구리빛얼굴을 친근하게

보이게 했다.



"내 눈엔 아직도 농염한  전설적 루피나로 보이는데.... "

어머니는 잘 계시고?"



" 이제 골골하지. 넌 아직도 오빠 포스는 여전하구나! "



"유사 이래 밤의 세계는 절대 어둠이 내리면 불이 꺼지지 않는 법이지.

환락과 밤은 내 인생의 영원한 먹이 양식이거든. "



"아직도 그 일 하고 있어?"



"예전만 못하지... 단속 뜨면 또 업종 바꾸고 그러다가 다 정리하고  요즘은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산다."



"서울엔 이제 정착하려고 온 거야?"



"나 물리치료사 때려치우고 요양보호사 일 하고 있어"



"얼마 전 승주가 너 전화번호 좀 가르쳐 달라고 전화했는데.

내가 모른다고 했어. 자식 마누라하고 지새 끼들 건사 잘하고 살면서

그래도 널 못 잊은 눈치더라고.... 옹졸한 놈 네가 뭘 잘못했다고...

오랜만에 너 손 하고 인사나 좀 하자"

박용재는 전갑련의  오른손을 잡았다.

다시 양손으로 박용재의 손을 잡은 그녀는 말했다.


"너한테 늘 고마워. 그때 네가 마련해준 돈 다 갚지도 못하고 그렇게 서울 떠나서 내내

마음이 안 좋았어."



"됐어 너 덕분에 나도 몇 년간 한철 장사 잘해먹었지...

밤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 루피나 덕분에  난 너한테 투자한 돈 이상 벌었으니까.

그걸로 퉁치고  부채감은 털어내도 돼. 어때 나 좀 멋있지 않아!"



그는 그녀에게 은인이자 악마 같은 이중적인 존재였다.

영등포 밤거리에 네온사인이 켜지면  술과 환락의 도시는

때때로 인간됨을 지키는 일이 허물어지는 무법천지로 변한다.

어느 존엄한 인간이 빈곤에 찌들어서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 검은 돈에 손을 잡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세상은 그들을 절대 심판해서는 안된다.


인간에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자발적이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운명 지어진 강제된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전갑련은 박용재가 던진 그 돈으로 자신 앞에서 타고 있는 거대한 불길을 잡고

과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었다.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