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트라우마로 잉태된 내 글은
과거의 거리를 어슬렁 거린다.
그곳에는 망각이라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무수한 내가 하나의 자아라는 모습을 하고, 웅크리고 앉아 있다.
마치 구천을 떠도는 귀신처럼, 불안과 두려움의 신호를 감지하면
나에게 달려든다.
이 자아들을 처음 알았을 때 무서워서 도망 다니기만 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 누군지를 알고 나서, 내 안의 자아들에게 관심이 생기고, 애정 하게 되었다.
누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이름도 지어주었다.
찌글이, 덤벙이, 첨벙이, 덤덤이, 피 칠칠이, 꺼무댕댕이.
이 아이들이 나라고만 착각하고 살았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 들이 일어날때,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일어나는 감정들에 저항하는 아이들이 있다.
타자들의 욕망을 먹고 자란 자아들.
이 아이들은 불안정하고, 결핍덩어리들이다.
끊임없이 자신들의 욕망만을 향해 질주한다.
자신들에게 브레이크가 걸리면
저항한다.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감이 올라온다.
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누가 누군지도 모른다.
몸은 과도한 호르몬을 분비한다.
어김없이 증상으로 나타나는 통증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인정 욕구로 찌들어진 아이
두려움에 움츠린 아이
자만감과 우울감 열등감으로 폭주하는 아이.
결핍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
하나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아이들은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와 자신을 알아달라고
소리친다.
이때 이런 아이들은 알아차려 주는 나!
누군가는 이 나를 "참나"라고 부른다.
참나는 그 어떤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태어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무념무상의 나!
참나는 수행을 하고 고행을 해서 발견하고
찾아지는 존재가 아니다.
원래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으니.
만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어느 날의 사고로 나는 죽었다.
그리고 이 참나라는 존재가 깨어났다.
이 나라는 존재를 만나기까지
아주 긴 고통의 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나라는 존재가 깨어나고 나서도 한동안 에고라는 자아들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참나는
에고는 나쁜 것이고, 나를 망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기에
참나와 에고는 서로를 괴롭히고, 서로 소멸할까 봐 두려워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둘은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기 객관화라고 부른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는다.
지금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주체는 나이기도 하고
내 안의 자아들이기도 하다.
오늘은 누굴까?
언제 이 감정에 가장 저항하고 상처 입고, 숨어버린 자아일까?
그때 나는 왜 이 자아들을 내버려 두었을까?
그때는 자아들밖에 없는 세계였다.
나의 자아들이 전부라고만 알았던 세상.
한 번도 나를 만나지 못했던 세상.
피 칠칠이 일까?
지금 현재 일어난 상황이지만 비슷한
감정의 느낌을 따라 과거로 간다.
그때의 마음의 결을 온전히 기억으로 꺼내 본다.
피 칠칠이가 저항했던 그 감정을 지금의 내가 온전히 느껴준다.
그때 상황 속 두려움과 불안감은 사라지고,
피 칠칠이와 나만 남는다. 우리 둘 만의 문제로 남는다.
과거의 기억들을 곱씹어 과거의 나를 소환해서 그때의 나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가 나를 쓰고 있다.
나를 괴롭히는 건 모두 과거의 자아들이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정시키고, 진정시키는데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수습하는데,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땅에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는데도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저 지금 심장과 함께 날뛰고 있는 감정의 주인을 내 안에서 찾는 거였다.
그리고, 내가 그 자아를 알아주고, 자아 대신 그 고통을 느껴주면서
느껴도 괜찮다고 말하면 되는 거였다.
이 간단한 걸 해 주지 못해서, 내 안의 무수한 자아들은 고통받았다.
오늘 아침은 과거의 자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책상에 앉은 게 아닌데,
마지막 주제를 정하고 글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주제가 생각나서 글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글을 쓰다 보면 글은 늘 하나의 주제로 흘러버린다.
나의 글은 저마다 다른 글로 시작하지만 모든 방향의 글은 하나의 주제로
만난다.
바로 새롭게 바라보는 내면의 세계이다.
내 글은 글이기 이전 하루의 수행 같은 행위이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따라가는 글을 쓴다.
내 안의 자아들은 흔히 말하는 에고라는 단면이 아니다. 나를 만들어가는 입체적인
존재들이다. 그 자아들 덕분에 연약함을 쓰고, 두려움을 쓰고, 강인함을 쓴다.
나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던 자아들은 이제 친구가 되었다.
에고는 때로
고통이고
두려움이고,
아픔이고,
괴로움이다.
하지만
나라는 참나가 에고의 고통을 느껴주면
깨달음이라는 선물을 준다.
그때
에고는
나의 감사함이고,
사랑이고,
기쁨이 된다.
망각의 강을 건너는 에고들이 하나씩 늘어난다.
그만큼 나는
평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