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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Sep 13. 2020

퇴사는 코에게 맡겨봐.

결정 장애는 코가 해결할 거야.

의사 선생님은 부러진 콧대를 바로 잡는 수술이란  코 뼈를 세우는 일이라고 하셨다.

다른 수술에 비하면 간단하다지만, 내 평생 수술을 해본 적이 없어서 무척 무서웠다.

티브이에서 보면 수술실로 갈 때 천장의 형광등이 머리 위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도 딱 그랬다. 그런 식으로 형광등이 있는 복도를 지나 어둡고 차가운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은 엄청 추웠다. 이 이후로도 수술할 일이 있었는데 똑같이 차갑고 추웠다.


눈을 떴을 때 내 코에 솜이 백개쯤  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코 뼈를 바로 세우려면 이 솜을 이틀쯤 막고 있어야 하며 절대 빼면 안 된다고 했다.

들을 때는 쉬웠는데 실제로는 진짜 고통스러웠다. 입으로만 숨을 쉬려니 입은 계속 바짝바짝 마르고 코는 답답하고 이마는 계속 욱신거리고...

그때 신랑에게 이렇게 말했다.


" 미운 사람이 있다면 코를 세게 쳐서, 코뼈를 부러뜨려주고 싶어.

  짧지만 강력하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이야."


이틀 후 병원에 가서 솜을 빼고 코 깁스라는 걸 받았다. 코에도 깁스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시 출근하는 첫 날도 이 깁스를 코에 하고 출근했다.

내가 없었어도 달라질 것 없는 병원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다시 출근 한 그 첫날.

코의 욱신거림과 이마의 아픔이 온 얼굴 전체를 감쌌다. 일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계속 아래쪽을 바라봐야 하는 일이었기에 갈수록 아픔이 더 했다.

아무래도 하루만이라도 더 쉬어야 할 것 같아 부서장님을 찾아갔다.


"부서장님 제가 얼굴을 숙이고 일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하루만 더 쉴 수 있을까요?"


그날은 내가 2박 3일 휴가를 받고 출근한 첫날이었다. 아침에 잘 왔다고 인사도 드렸고 나 없이 일하게 해서 죄송했다고 부서 직원들에게 커피도 한잔씩 돌렸다.

하지만 오후까지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아침 정규 일을 마치고 부서장님의 방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부서장님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네가 놀다가 다친 건데 어디서 하루를 더 쉬겠다는 거야? 네가 빠져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남아 있는 사람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나이 많은 너를 뽑아준 건 네가 갈 때도 없을까 봐 그런 건데 어디서 쉬긴 쉬겠다는 거야? 아파도 참고해야 정상이지 네가 쉬겠다는 말이 나오냐?"


그렇다. 보통 20대 갓 졸업한 사람들을 뽑는 병원에서 일 한번 해보겠다고,  31살이라는 나이에 들어가긴 했었다. 그런데 부서장님은 나이와 관계된 인신공격에다가 저기에 다 쓰지 않은 온갖 말들을 내뱉었다.

몸도 너무 아프고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몸살 기운도 계속 있었다.) 얼굴도 아픈데 지난 4년간 일해온 곳에서 단 하루를 더 쉬지 못하게 하는 가시 같은 말들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퇴사를 결심했다.


"저 오늘부로 관두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합니다."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지는데 얼굴이 욱신거려서 정신까지 혼미했지만 이 말 한마디는 던지고 나왔다.

사물함으로 바로 내려가 옷을 찾아 갈아입고 , 그동안 감사하다고 사람들에게 크게 인사 한번 하고 내 짐도 챙기지 못하고 나왔다. 정말 1초도 있기 싫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할까, 잠시 쉴까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래도 같이 있는 사람들이 좋아서 버티고 있었는데 부서장님이 너무나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게 해 주셨다.


코야 고맙다. 너 덕분에  힘들던 내 결정을 빨리하게 도와줘서 고마워.

그런데 계속 귓가에 그 말이 맴돌았다.


"나이 많은 네가 어딜 갈 수 있겠냐?"


아파서 쉬겠다면서 관두었지만 나의 쉼은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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