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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Sep 09. 2020

우리 회사에 숨은 진상이 있다.

지난 8년간 그녀는 너무 꽁꽁 숨어 있었다.

나는 현재의 직장을 8년째 다니고 있다.

내가 입사할 무렵, 우리 부서는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친 후였다.

다니던 사람들이 임금 인상을 주장하며 집단행동에 돌입, 원장님께 사표를 냈는데 황당하게도 모든 사표가 수리되었다.

임금은 오르지 않았고 그들 모두 사표를 내고 나가서 20명 일하던 곳에 15명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채용 공고를 내면 지원자가 와서 면접을 보고 거의 다음날부터 근무가 시작되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면접을 보면서 사람들을 충원해 나갔다.


 K는 내가 입사하고 정확히 10일 있다가 들어온 중고 신인이었다. 그녀는 예전 직장에서 7년쯤 일한 경력으로 경력직으로 지원했고, 아이 육아 때문에 오전 근무 계약직으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나는 정규직 전일 근무자로 들어왔기에 부족한 인원으로 일하는 고충을 매일매일 몸으로 겪었다. 5명이 일할 분량을 한, 두 명이 일하다 보니 매 순간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배짱인지 여기서 한번 잘해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어도 묵묵히 일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결혼하고 1년쯤 되는 때라서 힘들었던 회사 일도 신랑과 달콤한 데이트로  풀었기에 그 시기를 견뎠으리라.

나름 나도 적응하는 시기였고,  K는 부서의 다른 파트에서 근무하여 우리는 업무상 전혀 겹치는 일은 없었다.  K 도 혼자 하는 일이라서 어느 누구랑 큰 교류를 할 틈은 없었다.

가끔 업무상 말할 일이 있을 때의 느낌은  침착하고 조용한 말투가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입사 5개월 차에 나는 임신에 성공했다. 우리 부서는 점점 인원이 채워져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쓸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첫째를 출산하고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육아 휴직까지 채워서 쓰며 아이를 키웠다. 

복직 한 달 전 부서장님께 전화가 왔다. 복직을 딱 한 달만 먼저 해달라고, 또 누가 관둬서 사람이 없다면서. 

그때 나는 큰 실수를 했다. 부서장님의 말은 부탁이 아니라 통보였는데 나는 직장 생활이 오래되지 않아 그 말의 숨은 의미를 몰랐다.  그냥 한 달 전에 나오라는 통보라는 것은 복직 후에 알게 되었다.

한 달 후에 갔을 때 K는 오전 근무 계약직을 전일제 정규직으로 전환하였고, 부서장이 이야기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악연은 시작되었다.

그녀는 책임이라는 직급을 달았다.

 직급에 대한 수당은 없지만 내가 평사원이라면  그녀는 이미 대리쯤 되었다고 할까.

나도 예전 회사의 경력은 비슷하지만 복직 후에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신입이 맡는 업무가 주어졌다. K는 기록을 만들고 관리자 급의 일을 하면서 가끔씩 내가 일하는 곳으로 나왔기에 역시 크게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 업무도 혼자서 하는 일이기에 아무도  K의 업무 스타일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부서에 대대적인 업무 변동이 있었다. 그녀가 여러 명과 같이 일하는 부서로 이동했다. 물론 책임급이라 부르는 관리자 자격으로.

나는 여전히 신입이 하는 업무 주위를 맴돌았다. 그 사이 아이를 하나 더 낳았고 복직 후에는 여지없이 신입 업무가 맡겨졌기 때문이다. 출산 후 돌아올 때마다 나보다 뒤로 들어온 사람들이 승진했다. 



 K에 대해 말이 들려온 것도 그 무렵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자꾸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K의 평소 이미지나 말투가 너무나 사람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K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는 B는 부서에서도 소문난 프로 불만러였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B 때문에 K가 힘들 수도 있다고 단정 지었다.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인지 자세히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친한 사람들이 없었고 그 부서일에 관심도 없었다. 내가 배치받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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