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일생 세 번의 행운이 온다고 한다. 누가 한 말이냐면 내가 방금 지어낸 말이다. 보통 일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는 말을 더 많이 하지만, 기회는 자신이 만들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여기선 그걸 행운이라고 바꿔 말해보겠다. 나에게 세 번의 행운이 다 오지 않은 것인지 두 가지를 꼽는 일은 아직 어려운데 한 가지 행운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교사이던 시절 겨울 방학과 함께 방학 보충수업 일정이 시작되었다. 다들 쉬고 싶어 했으므로 방학 수업에 투입될 교사는 몇 되지 않았고 연차가 적은 나는 어마어마한 수업 시수를 감당하며 3주간의 보충수업 기간을 일주일 유럽 여행을 가겠다는 생각 하나로 버텨냈다. 그리고 보충수업 마지막 날, 극심한 피로와 어지럼증을 느끼며 집에 간신히 돌아왔으나 몸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당장 이틀 뒤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던 나는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벽돌담과 전봇대 등에 의지해 가까스로 걸어 동네 병원에 갔다. 의사는 몸살인 것 같다며 수액을 놓아 주고 진통제 등등의 주사와 약을 처방했다. 주사를 맞고 또 이번엔 길거리 가게 앞 입간판과 아파트 펜스 등에 의지해 간신히 집에 왔다. 그러나 이내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 옷과 침대를 다 적시고 계속 구토가 나와서 화장실 앞에 드러누웠다. 남편은 타지로 출장을 가서 근처에 사는 친한 언니에게 와 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흠뻑 젖은 내 모습에 토를 해서 옷은 입은 채로 샤워기를 틀고 씻은 줄 알았다고 한다. 기다려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집 근처 큰 병원을 가게 되었다.
나이 지긋한 의사가 증상을 듣고 상태를 보더니 내 옆구리 방향 허리께를 쿵푸 팬더에 나오는 도사님처럼 집게손가락 한 개로 쿡 찔렀다. 으약! 나는 쿵푸 팬더의 악당 타이렁처럼 처참하게 쓰러졌다. 급성 신우염. 과로로 인해 신장에 급성 염증이 생겨 오줌을 투과 못 시키니 수분이 몸의 온갖 땀구멍으로 배출되고 노폐물이 전신을 돌아다녀 구토가 끊임없이 낫던 것이다. 탈수와 어지럼증은 사은품으로 딸려 왔다. 이 질환에 걸리면 옆구리와 아래 등허리를 찌를 때 엄청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노 의사는 도사가 아니라 명의였다! 약을 처방받고 집에 왔지만 설사, 구토, 탈수로 몸에 힘이 빠져 응달 시래기처럼 침대에 늘어진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 시래기 남은 물을 짜내듯이 엉엉 울었다. 내 항공권, 혼자는 못 가겠다는 친구의 항공권, 숙소 예약금, 유레일 패스권 등 어마어마한 취소 위약금이 허공에서 오줌발에 맞아 삭아 바스러지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나의 유럽행은 좌절되었다.
다음 해 여름방학 유럽행 재도전 티켓을 끊은 나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나의 투병과 좌절기는 이미 학교에 파다하게 회자된 상태였고 동료 교사들이 이번에는 앞부분 보충수업을 맡아 줄 테니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방학 다음 날짜로 다시 유럽행 티켓을 끊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보궐 선거가 잡히면서 학교가 하루 임시 휴업을 하게 되었고(학교가 투표소가 됨) 방학식도 하루 미뤄지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이 엄청 무섭고 독단적인 분이라 방학식 날 조퇴를 하고 일찍 퇴근하겠다고 얘기하러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당시엔 병가는커녕 조퇴도 쉽게 내주지 않을뿐더러 온라인이 아닌 대면 결재를 반드시 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학년 부장님이 출동했다. 부장님들과 교장, 교감 선생님이 참석하는 교무회의에서 당시 나의 담당 부장님이 〯〯〯OO이가 작년에 쉬지도 못하고 방학 내내 수업하다가 불쌍하게 휴가도 못 갔는데 올해는 꼭 가야 할 텐데…. 하며 밑밥을 깔고 다른 부장님들이 그래, 걔 불쌍하다, 이번엔 가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자 교장 선생님이 짜고 치는 거 다 보인다면서 나의 조퇴를 허락해 준 것이다. 애들도 하교한 학교에서 조퇴 하나 내는 데 눈치를 보게 했던 당시의 권위적인 분위기는 지금 생각해도 악습일 뿐이지만 당시에는 부장님들과 교장 선생님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떠난 유럽 여행, 좋았냐고요? 말해 뭐 한담. 빈대에 물리고 팔다리에 흉터를 잔뜩 남기긴 했어도 행복해 마지않던 여행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나는 어느새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 탑승구에 서 있었다. 여러 날의 배낭여행으로 행색은 꾀죄죄하고 파마머리는 유럽의 석회질 수돗물에 바스러져서 브로콜리가 된 채로 탑승을 알리는 방송에 맞춰 줄을 서기 위해 가던 나. “저년!, 저년!” ‘누가 이렇게 큰소리로 욕을 해대고 있어?’라고 생각하며 쳐다보니 에어프랑스 항공사 승무원들이 손에 종이 패널을 들고 저년을 외치고 있었다. 아니 어떤 년이길래 저렇게 한국어로 욕을 하며 찾나 싶은 찰나, 줄 선 사람의 여권과 탐승권을 한 명 한 명 확인하던 승무원이 내 앞에 멈춰서서 “저년!”하고 외쳤다. 그렇다, 그년이 나였다.
내 한국 이름 ‘정현’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힘들어서 이상하게 불릴 때가 많은데 그들에게 나를 최대한 정확하게 부른 발음이 저년이었나보다. 그래, 내가 그년이다. 근데 나를 왜 그렇게 찾았니? 갑자기 그동안 내게 몰려왔던 불행들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혹시 나 문제 생겨서 귀국 비행기 못 타는 거 아니야? 돌아가면 후반기 보충수업 투입돼야 하는데 어쩌지? 와인 한 병만 사야 하는데 욕심부려서 괜히 두 병 산 게 걸린 건가? 별의별 생각이 찰나의 순간 머리를 스쳐 갔다. 역시나 걱정은 현실이 되는지, 승무원이 내 탑승권을 휙 낚아채더니 기다란 직사각형 종이의 배때기를 반으로 부욱 찢었다. ‘으엥? 뭐 하는 거예요?’라는 말이 너무 놀라 목구멍에 걸려 나오질 않았다. 입을 뜨억 벌리고 바라보는 나를 심은하 주연의 옛 드라마 M을 생각나게 하는 초록 눈의 승무원이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리곤 그 무서운 눈이 갑자기 반달로 꼬부라지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레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나에게 건넨 말은 “너의 좌석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이 티켓은 쓸 수 없으니 비즈니스 보딩 패스를 다시 주겠다.”는 말이었다. 오! 마이! 갓!
줄을 서서 탑승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리더니 “우와~!”하는 부러움의 감탄사가 그들에게 터져 나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맨투맨(90년대 영어 문법 서적 이름)이 내가 아는 영어의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영어로 또박또박 입을 때였다.
나 : 리.얼.리⤤?
(줄 서 있던 사람들의 수많은 눈알이 승무원을 향한다.)
승무원 : Oui(프랑스어로 예스).
(사람들의 감탄)
나 : 와이. 미?
(사람들이 자기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승무원을 바라본다)
승무원 : I don’t know.
(사람들의 눈알이 나를 향한다. 너 뭐라고 할 거야? 라는 눈빛)
나 : (두 손을 치켜들고) 언빌리버블!
(서 있던 사람들이 와르르 웃기 시작한다)
열두 시간이 넘는 비행이었지만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그 짧은 시간 잠깐 참으면 될 걸 무엇 하러 큰돈 써 가며 두 배가 넘는 돈을 주고 비즈니스석을 타나? 돈지랄이라 생각하며 이해가 안 됐는데 타보니 좋더라. 왜 타는지 알겠더라. 코스 음식도 나오고 컵라면도 맘대로 먹을 수 있고, 간식 테이블도 있어서 마카롱도 몇 번이고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좌석. 무엇보다 허리도 다리도 하나도 아프지 않은 좌석. 나는 벌써 착륙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열 시간만 더 타면 안 되냐고 승무원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사정하고 싶은 심정으로 아쉬움에 가득 차 비행기에서 내렸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행운 세 번이 벌써 왔었는지 모른다. 아파서 낑낑대며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었는데 쿵푸 명의에게 운 좋게 찾아가 아픈 원인을 바로 알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행운. (신우염을 늦게 발견하면 신장이 영영 망가질 수도 있다고 한다), 미뤄진 방학식으로 조퇴를 못 할 수도, 다시 보충수업 전선으로 끌려갈 수도 있었는데 좋은 동료들을 만나 무사히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행운. 그리고 몇 년은 우려먹을 수 있는, 지루한 수업 시간에 써먹을 수 있는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 이야기를 얻게 된 행운.
이후로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몇 번 해 주었는데 나의 한국식 발음으로 잔뜩 발라진 영어 3종 세트를 들을 때마다 학생들이 그렇게나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곤 종종 본인들이 써먹기도 했다.
나 : 오늘 수행평가 보는 거 알지?
학생들 : 리.얼.리⤤
나 : △△이, 네가 젤 먼저 발표야. 나와.
△△ : 와이. 미?
나 : 여기 번호표 뽑았잖아.
△△ : 언빌리버블!
이후로도 돈을 내든 마일리지를 쓰든 비즈니스석을 내가 직접 구매할 일은 없었다. 탑승 브리지를 건너 비행기 출입구에서 승무원의 환대를 받고 비행기에 들어서서 널찍한 비즈니스석을 지나친다. 이내 따닥따닥한 이코노미석이 시작되고 나는 한참을 더 뒤로 들어가 가장 저렴한 섹션에 안착한다. 그래도 좋다. 비행기를 탈 수 있고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가난한 어린 시절의 나처럼 비행기가 뭔지도 모르고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사람. 일하느라 오늘도 내일의 약속으로 비행을 미루는 사람, 몸이 아파서 가고 싶어도 여행을 갈 수 없는 사람,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망설이거나 비행기를 거부하는 넓은 마음의 사람, 그 모든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래도 내가 오늘 비행기를 타게 된 상황에 복잡한 감사함을 느낀다. 내게 여행을 허락해 준 상황에 대한 감사일 것이다.
비즈니스석에 앉았을 때 감탄할 수 있게 비교 대상이 되어준 이코노미석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감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내게 주어진 것은 나에게 온 네 번째 행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