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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무슨 일이든 핑계대지 말고, 꾸준히 하자!

by sposumer

사랑하는 원이야,

지금 편지를 쓰기 전에 찾아보니 2019년 1월달 아빠의 편지가 마지막이구나.

오늘 편지에서 너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을 편지 제목에 적었다.

"무슨 일이든 핑계대지 말고, 꾸준히 하자!"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지만, 아빠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란다.

니가 작년 5월에 태어날 때, 사랑하는 너에게 편지를 매우 자주 쓸 것 같았다만, 역시 무슨 글이든 쓰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오늘 덧붙이는 이야기는 아빠 자신에게는 별로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빠는 올해 마흔이 되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40년을 살았다는 것인데, 가끔 아빠도 이런 사실이 잘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나이가 먹었다고 인정하게 될 때가 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덤덤할 때 그렇다. 너와 같이 밖에 나가면 너는 지나가는 자동차는 물론이고,(요즘 너는 가장 좋아하는 것이 '빠방'이란다) 모든 것들이 신기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오늘도 덥기는 했지만 너는 밖에서 구경한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을 거야. 흔히 하늘색이라고 부르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골목을 지나가는 자동차와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까지...아빠는 그런 너를 바라보는 것은 즐겁지만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아도 별로 신기하지 않단다. 아빠에게는 새로운 풍경들이 아니기 때문이지.


아빠는 할아버지와 비교하면 참 이직을 많이 했다. 할아버지는 IMF 외환위기 사태 때문에 회사에서 명퇴(명예퇴직) 하기 전까지 한 회사만 다니셨단다. 하지만 아빠의 이력서에는 1년 미만으로 다녀서 이력서에 적지 않는 회사도 있고, 다양한 회사에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고 되어있다. 사실 한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이 좋은 것인지, 자신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서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빠는 아직도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역시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한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자꾸 아빠가 말을 빙빙 돌리고 있으니까...아빠는 지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또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아빠가 15년 동안 일을 하면서 이직을 많이 했는데,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회사 경영진에게 일을 못한다는 이메일을 받았고, 고민을 하다가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등반을 할 때 동료들을 신뢰한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어느 한 사람의 행위가 팀 전체의 안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매듭을 엉성하게 묶어놓는다거나 발을 헛디딘다거나 돌을 건드려 굴러떨어지게 하는 것을 비롯한 모든 부주의한 해동은 팀 동료들에게 심각한 과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 존 크라카우어 중-

만약에 아빠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회사 경영진에게 일을 못한다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 감정적으로 반응했을 것 같다. 이메일에 내용을 보면 아빠는 거의 1년이 되는 기간동안 회사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는 무능한 마케팅팀 팀장이라고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빠는 그 이메일에 동의할 수는 없다. 그 이메일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 아빠의 15년의 회사 생활 아니 인생이 의미가 없어지니까. 위에 '희박한 공기 속으로'라는 책의 일부를 인용한 이유는 무슨 일을 하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야.


아빠를 신뢰하지 못하는 회사 경영진을 아빠 역시 신뢰할 수 없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것은 성공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아빠는 이번에 회사를 다니면서 과로와 주말 근무 때문에 몸도 피곤했지만,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곤했다.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아빠는 좀 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모습으로 너를 키우고 싶다. 아빠는 원래 병원에 가는 일이 별로 없는데, 이번 회사에서는 '축농증'이 생겼지만 치료를 못하고 있었어. 축농증은 숨쉬기 불편한 것이 다가 아니라, 머리까지 아프다는 것을 알게됬다. 감기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서 비염이 되고 비염이 축농증이 되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아빠가 더 큰 병을 얻기 전에 신뢰할 수 없는 회사 경영진과 결별은 어쩌면 더 잘 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엄마가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거다.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아빠는 좀 더 너의 육아에 신경을 쓰려고 해. 엄마도 출산 후에 약 2년 간의 직장생활 공백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아빠에게 요즘 가장 즐거운 시간이 언제인지 아니? 너를 재우기 전에 너와 함께 샤워를 하는 시간이란다. 회사에 그만두겠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야근은 하지 않고 너와 샤워를 할 때 아빠는 참 즐겁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부쩍 큰 것 같은 너를 보면 예전에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오지다'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아쉽지만 다음 주에는 아빠가 마지막 제주도 출장이 있다. 단 하루를 샤워를 함께 못하는 것이지만 벌써 아쉽구나. 아빠가 대신 주말에 더 재미있게 놀아줄께. 물놀이를 좋아하는 우리 원이랑 같이 수영장도 갈 생각을 하니 벌써 신이 난다.


아빠는 무슨 일이라도 계속하면서 새로운 좋은 자리를 찾아보려고 해. 무슨 일이든 핑계대지 않고 꾸준히 하려고 한다.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일도 핑계대지 않고 꾸준히 해볼께. 또 편지하마!


-원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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