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길을 걸을까 골목길을 걸을까

일요일을 잘 보내려면, 마냥 멍을 때릴 수만은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데, 그중의 하나는 운동인다. 이제 나이를 생각해서 뛰기보다는 걷기를 하는 중이고 일요일에는 오래 걷기를 한다.


별 생각 없이 사용한 단어인데 일요일을 보낸다는 표현이 조금 거슬린다. 다른 단어로 고치려하다가 그냥 두고 나를 본다. 나는 시간을 누리기보다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무엇이라도 해야하는 사람이고, 그러하지 못하면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끼는 효용 없이 피곤한 스타일인 것 같다. 좋지 않다.


아무튼 평소에 40분 정도 소요되는 산길 대신에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오후에는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코스를 택한다. 산 정상에 약간의 운동기구도 있어서 턱걸이를 하고, 역기도 들어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오늘은 왠지 산길로 마음이 가질 않았다. 지금은, 사실 언제나 좋지만, 지금은 연두색 잎들이 산을 채우고 있어서 아름답고 그늘도 만들어주기 때문에 봄볕에 얼굴이 그을릴 염려도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이 주저되어 잠시 네이버 지도를 들여다보고는 산길 대신에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온수역을 지나서 와룡산 자락 아래 있는 마을의 골목길을 걷다가 역곡고등학교를 지나 우회전하여 까치울역까지 걸어갔다. 모르는 동네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여행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활기와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와 별 차이가 없지만 새롭고 신선하다. 비슷한 카페인데 좀더 커피가 맛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역곡고등학교를 지나서 까치울역까지 걸어가는 대로변 길은 의외로 산책을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이미 꽃잎은 약간의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제법 인도를 덮을 정도로 가지를 드리운 벚나무들이 길게 줄지어 자라 있었다. 벚꽃은 지고 난 후 꽃받침이 분홍색으로 물들고, 잎이 나기 시작하면서 연두색과 어우려져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까치울역에서 우회전을 하려다가, 직진하여 지나치고 작전동 전원마을을 왼편에 두고 걷다가 부천 교회가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까치울 터널까지 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는 산길로 접어들어 국기봉을 통과하여 돌아왔다.


막판에 산길을 걸으니 역시 좋다. 잠간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왜 코스를 잡을 때 자주 가던 산길로 마음이 가질 않았을까? 산길이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쓸쓸했던 것이다. 일주일 동안 사람들에게 부대꼈다면 아마도 분명 조용한 산길이 그리웠으리라.


요즘은 그리 잘 사는 것 같지 않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복식이 단식보다 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