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만으로, 충만해진 남자
* 이 글은 [봄아범 일기]로 썼던 글을 퇴고해서 발행함을 밝힙니다.
사람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랬다. 배고픔이 가신 후에야, 상대방에게 음식을 같이 먹겠냐고 물었다. 나의 기분이 좋을 때는 양보운전을 하지만, 조급해지면 끼어들기를 허락하지 않는 운전자였다. 무엇보다, 가족을 대하는 모습이 그랬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면서, 쌓인 설거지와 외출준비를 함께하면 스트레스의 임계치를 넘었다. 항상 예민해져 있었다. 집 밖을 나가기 전에 늦었다며 재촉하는 말을 하기 일쑤였다. 아내와 아이는 까칠한 남편과 아빠의 눈치를 봤다. 나는 아랑곳 않고 날이 서 있었다. 그게 힘든 나를 보호하는 장치라고 여겼으니까.
출장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전 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일주일치 짐을 싸는 모습보다 놀라운 건, 아이를 위한 식단표였다. 혹여 한 번이라도 부실하게 먹을까 봐 세끼에 더해 간식까지 촘촘하게 준비했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표를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인수인계를 할 때도 이렇게 할까. 이모님과 내가 적절히 요리할 수 있도록, 얼린 재료를 넣고 날짜를 적은 지퍼락까지. 자신보다 더 아들을 생각하는 모습에 엄마의 위대함을 느꼈다. 궁금해졌다. 사랑이 넘치면 이타심이 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힘들 때 가족을 덜 사랑하는 걸까.
"나만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어도 괜찮아. 다만, 이걸 기억해. 가족도 너 자신이야. 너에게서 사랑으로 만난 아내도 너 자신이고, 사랑으로 낳은 아들도 너 자신이야. 지금까지는 너를 지키고자, 너무 힘들어서 그걸 화로 표현했지. 이제부터는 너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너 자신인 가족들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극한으로 지쳐서 자해를 하는 사람을 생각해 봐. 나 자신을 괴롭혀서 남는 건, 결국 내 몸의 상처잖아. 그런 상처가 아내와 아이에게 남을 수 있어. 그러니까, 아이가 너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말아 줘.
지현아. 넌 행복한 사람이야. 넌 느끼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조금씩 네가 바라는 대로 되고 있다는 걸 믿어 봐.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지만, 아이를 낳기 전에 간절함을 생각해. 건강한 출산을, 건강한 아기를 바라면서 신에게 바랐던 때를 기억해. 일 할 수 있고,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고, 무엇보다 귀여운 아들이 있잖아. 너 자신을 사랑해 줘. 그러니, 또 다른 너 자신인 가족을 사랑해 줘. 그럼 더 기쁜 삶이 될 거야."
친한 형님 B의 조언이 완연한 봄의 햇살 같았다. 사랑으로 만난 아내도 나 자신. 사랑으로 낳은 아들도 나 자신. 지금까지는 나를 지키기 위해 예민함을 표출했다. 이제는 나를 아끼기 위해 또 다른 자신인 가족을 생각하자는 조언. 아내와 아이가 곧 나라는 말. 생채기가 났던 마음이 봄눈처럼 녹았다.
여전히, 사람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랑해야 할 또 다른 내가 많아지는 것 아닐까. 결혼할 때, 상대방을 나처럼 아끼겠다고 약속한 대로 행동하는 아내의 사랑이 증명한다. 자신의 분신인 아이의 끼니를 챙기는 아내의 마음이 알려준다. 또 다른 나를 아껴주라고. 그렇게, 내가 먹을 밥이라 생각하고 유아식을 만든다. 오늘 저녁은 치즈를 넣은 시금치 닭가슴살 파스타다. 경쾌하게 프라이팬을 들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