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새로이 만나는 청년
아내와 결혼 전, 우리의 연애는 비밀이었다. 그녀는 커뮤니티의 봉사자였다. 참가자였던 나는 엉겁결에 신청한 사람들의 대표가 되었다. 두 달에 한 번 꼴로 50명씩 신청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259번째 공동체였다. 당연히, 프로그램과 연관된 사람이 많았다. 인원수가 늘면 말이 많다. 말이 늘면 뒷말이 흘러나온다. 뒤에서 하는 말은 오해를 낳는다. 원하지 않게 이별하는 커플을 눈으로 봤다.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생각보다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쉬웠다. 260번째 커뮤니티가 결성되는데 2년이 걸렸다. 우리의 마음이 가까워짐과 동시에, 코로나19는 사람들의 물리적 거리를 멀리 두게 했으니까. 서로 좋아하는 티를 낼 기회도 없었다.
매일 지하철 노선을 두 번씩 환승하며 출, 퇴근하는 여자친구가 걱정되었다. KF94 마스크를 껴도 불안했다. 사실, 이 핑계로 지금의 아내를 자주 보고 싶어서 꾀를 내었다. 일찍 퇴근하자마자 자동차로 여자친구의 회사 앞을 찾았다. 그녀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태운 차의 핸들을 잡고 집까지 데려다줬다. 반복되는 강동구와 강남구, 종로구를 오가는 서울 여행. 주행 거리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거리는 좁혀졌다. 회사일의 고충부터 각자 커리어를 성장하는 꿈. 서로의 가족을 염려하는 대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쌓여 사랑이 되었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우리가 결혼할 수 있었을까. 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멈추었을 때 캠페인처럼 반복한 말인 ‘덕분에’. 긍정의 말을 반복하니까, 그 힘 ‘덕분에’ 우리는 청첩창에 이름을 새기는 사이가 되었다. 손수 접은 결혼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배신감마저 들었으리라. 나와 그녀가 결혼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바이러스가 3년이나 우리를 괴롭힐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팬데믹 중의 연애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하객 수를 제한할 때도. 애써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임신과 출산은 차원이 달랐다. 임신 중에 코로나에 감염되어 사망한 여성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의사들이 정책에 반대하며 파업을 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감염 증상이 있다고 누구나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응급실에서 의사를 기다리는 환자가 즐비했다. 불안한 세상이었다. 나의 안전은 내가 지켜야만 했다. 내 몸이 곧 아내의 몸이자, 태아의 건강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철저하게 비말 감염을 막았다. 출산까지의 아홉 달 동안 점심 약속은 한 건도 없었다. 아침에 만드는 도시락이 일상이 되었다. 불가피하게 점심을 준비하지 못한 날. 지하철로 20분, 자전거로 5분 거리를 기꺼이 감수하고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회사로 복귀하는 2호선 차량 안. 마스크가 가린 입으로 되뇌었다. 생명이 찾아온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괜찮아?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봄(태명)이 태어나고 한 주 정도 지난 점심. 식사를 하다가 눈물이 터졌다. 괜찮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서 먹는 맛있는 음식이 그리웠다. 아니, 음식을 핑계로 친구와 하는 대낮의 대화가 고팠다. 출산하는 당일까지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하는 세상이 답답했다. 보호자가 동석하지 못해 아내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태아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신생아를 지켜야 하는 책임감으로 이어지는 것에 지쳤다. 지금의 마음을 아내에게 말해야 할까. 산후조리로 몸까지 고된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일까. 아내가 아니면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솔직한 마음을 고백했다.
힘들었어. 괜찮지 않아.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그중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괜찮아.’라는 말이다. 힘든 상황과 불편할 마음을 애써 감출 필요는 없었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첫 번째 과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건 속상한 일이었다. 집합 금지로 친구가 한 명뿐이었던 결혼식을 생각하면 속상했다. 마스크에 가려져 출산을 앞둔 아내의 표정을 읽을 수 없음이 갑갑했다. 괜찮지 않다는 말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제야, 고마워진다. 여자 친구와 둘만의 시간이 길어져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소수 인원으로 누구보다 경건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눈빛만으로 아내가 어떤 마음인지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울음이 잦아든다. 사랑이 채워진다. 지난날의 나를 안듯이 아기를 안아 들어 올린다. 아들의 탄생 때 만든 영상 속 편지를 읽는다. 편지 속 구절이 아내와 아이에게. 나에게 닿기를 바라며.
봄아. 세상에 와서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줘서 고마워.
어려울 때는 가족이 늘 함께 할 거야.
길이 굽었다면 펴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산이 가로막는다면 깎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청할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보며 사는 괜찮은 삶을 살길 바란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