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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30. 2023

호주 바리스타 일상 : 단골손님과 친구가 되다

나의 소중한 친구 Nora

요즘 연습 중인 해마 라테 아트

호주 사람들은 정말로 커피에 진심이다. 단골손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호주 사람들에게 커피를 빼앗는다면 전국적 시위 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진심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골 카페가 있다. 여기서 단골이라는 표현은 한국에서처럼 단순히 자주 가거나 좋아하는 카페를 의미하지 않는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가서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카페가 단골 카페다.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나도 여러 단골손님들을 만나게 됐다. 7시 땡치면 들어와서 아이스 오트 라테 두 잔을 사가는 존, 12시쯤 디카페인 1샷과 카페인 1샷을 믹스한 아몬드 라테를 시키는 수잔, 1시쯤 정말 뜨거운 라테를 시키는 사만다, 하루 3번 스몰 플랫화이트를 시키는 월리스. 이 사람들 외에도 한 100명 정도 되는 단골들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다른 직원들이 단골손님과 그 사람들의 메뉴를 기억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커피 만드느라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의 메뉴까지 다 기억하는 거지? 생각했다. 일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이제는 나도 슬슬 그렇게 변하고 있다.


단골손님들의 주문을 받을 때면 이렇게 말한다. “Same as usual?” 너 항상 먹던 걸로 줄까? ‘내가 네 메뉴를 기억하고 있어.’를 은근슬쩍 뽐내며 혼자 뿌듯하고 있으면 손님들도 같이 기뻐한다. 그리고 윙크와 함께 이렇게 말한다. “Yes please my love.”


My love이라는 호칭처럼 바리스타와 단골들의 관계는 참 특별하다. 친구는 아니지만 친근한, 한국의 이웃사촌 같은 존재인 것이다. 호주 사람들은 회사에서 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안 한다고 하는데, 바리스타 앞에서는 참 많은 이야기를 한다.


강아지를 입양하게 된 사연부터 남자친구와 이별한 이유, 직장 옮기는 걸 고민 중이라는 소식. 콘서트 후기나 가족 모임을 다녀와서 생긴 에피소드까지. 가끔은 커피가 나왔는데도 떠나지 않고 수다를 떨다가 급하게 자리를 떠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스몰톡에 익숙하지 않고, 일한 기간도 비교적 짧은지라 다른 친구들처럼 모든 단골과 친하지는 않다. 대신 몇몇 손님들과 아주 가깝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당연 Nora다. 매일 11시쯤 오는 Nora는 내가 만든 커피가 젤 맛있다며 항상 나를 꼭 지목해 인사했다. 인사의 의미는 ‘주디, 내 커피는 네가 만들어줘야 해.’였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은 Nora가 오면 나에게 커피 만드는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Nora의 주문에 맞춰 거품이 많지 않지만 뜨거운, 하트를 4개 그린 커피를 만들어 서빙하고 나면 내 오전 일과를 마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Nora가 곧 아일랜드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Nora가 장난처럼 ‘아일랜드에 초대하면 올 거야?’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격렬히 흔들곤 했는데 아마 그 말이 진심이었나 보다.


자신이 사는 지역을 보여주며, 자기 아들들이 이사하고 나면 초대하겠다면서 내 연락처를 물어봤다. 그렇게 우리는 인스타그램 친구가 되었다.


Nora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친구’라고 했다. 그러니 언제든 자신의 집을 이용해도 좋고, 같이 여행을 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동안 매일같이 커피 한 잔의 행복을 나눠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커피를 열심히 만들었을 뿐인데 소중한 친구가 생겼다. 내 친구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Nora. 내 친구들 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Nora. 우리는 나이도 거리도 극복하고 그저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그렇게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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