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우리학교 근처에는우동촌이라는 이름의 맛집이 있었는데 그 집 크림소스돈가스는 대학시절 동안 먹어본 음식 중 나의 최애이다. 졸업한 후에도 그 맛이 생각날 때가 있는데 폐업했는지 검색창에서는 가게 정보가 사라졌고, 영업을 하고 있다 해도 부산에서 찾아가기엔 너무 멀고, 멀리서 찾아갔다 해도 그때 그 맛이 아닐지 모른다.
어쨌든 두껍고 촉촉한 돈가스 위에 이불처럼 덮여있던 고소한 크림소스. 그 꾸덕꾸덕한 맛이 간간이 생각나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런 걸 파는 집이 없어서 기억을 더듬어 내가 만들어 보았다.
돈가스와 크림소스는 시판 제품을 사용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만든 요리라 부르기엔 뭔가 민망해진다. 정확히는 내가 조합한 밀키트 정도가 되겠다. 야채는 냉동실에 남아 있던 자투리 야채를 사용했다. 언젠가 사놓은 양송이와 언젠가 배달음식에 딸려왔던 청양고추, 양파, 마늘.
돈가스부터 에어프라이어로 바삭하게 데운 후에 소스를 준비한다. 소스가 준비되는 대로 뜨거울 때 돈카스 위를 덮어야 하기 때문이다.
돈가스는 에어프라이어로 180도 15분에 맞춰놓고,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자투리 야채를 볶기 시작한다. 야채가 어느 정도 볶이면 시판 크림소스를 적당히 부어준다. 소스가 눌어붙을 것 같으면 우유를 조금 넣어서 끓이다가 모차렐라 치즈를 넣어 녹인다.
튀긴 돈가스에 체다치즈 한 장을 깔고 그 위로 모차렐라 치즈를 녹인 크림소스를 차르르 덮어주면 끝. 치즈 덕분에 더 꾸덕꾸덕하고 풍미가 살아나는 크림소스는 돈가스와 아주 잘 어울린다. 청양고추 덕분에 입안에 느끼한 맛은 남지 않는다. 깜빡했지만 마지막에 후추를 솔솔 뿌려줘도 좋을 것 같다.
접시 한쪽엔 샐러드 파스타를 곁들일 생각이었는데 크림소스와 치즈가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바람에 공간이 애매해졌다. 그래서 애매한 자리는 딸기 두 개로 데코를 하고, 샐러드 파스타는 다른 그릇에 담아낸다. 청양고추 덕분에 크림소스 돈가스가 그다지 느끼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식탁에 상큼함을 더하고 영양소 균형도 맞추기 위해 샐러드 파스타를 같이 준비했다.
하지만 요린이에게 동시에 메뉴 두 개는 역시 무리였다. 스파게티면을 건질 때가 되었는데 돈카스 소스도 눌어붙기 시작하고, 머리만 급했지 손은 따라주지 않고 부엌은 아주 엉망징창이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요리 유튜버가 되는 꿈은 글러먹은 듯하다.
샐러드 파스타는 오리엔탈 소스를 이용하면 잘 어울린다. 한국식 개운함이 필요하다면 오리엔탈 소스에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조금만 넣어주면 굿! 매콤한 끝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한다. 다만 고춧가루와 고추장은 절대 많이 넣지 말 것!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많이 넣으면 샐러드 느낌도 파스타 느낌도 아닌 비빔국수가 되어 버린다. 드레싱이 찰랑찰랑하게 유지될 수 있게 고춧가루, 고추장은 소량만 넣어준다.
평화로운 식탁 뒤엔 폭격을 맞은 듯한 주방. 설거지감이 산더미다.
자기가 만들면 무조건 맛있다는데, 그래서인지 돈가스도 파스타 샐러드도 맛있고 잘 어울린다. 그런데 15년 전 우동촌에서 먹었던 그 맛이 맞나? 그건 모르겠다. 한 입 먹으면 떠오를 줄 알았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절 우동촌을 찾아가던 그 언덕길과 재잘대던 20대의 친구들, 그날의 뜨거운 햇볕은 어제 일처럼 생생해진다.
누군가는 말했다. 학교 다닐 때 맛있었다고 기억하는 학교 앞 음식점을 사회인이 되어 다시 찾으면 맛이 없을 것이라고. 일단 내가 변했고 실제로 그 집이 변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쩌면 그 맛이 그리웠던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맛이란 건 애초부터 상관없었을지도. 어차피 맛에 관한 기억은 휘발성이 강하니까. 지나간 어떤 것을 한 번쯤 꺼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다거나 그때가 그립다는 감성적인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문득 옛날 사진을 들춰볼 때의 느낌이랄까, 어릴 때 좋아했던 가수의 유물 같은 음반을 지금도 소중히 소장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옛날 그 맛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늘 찾은 맛은 아주 만족스럽다. 다시 만들어 먹을 의사 있음. 하지만 다음번엔 하나만 하자! 두 가지 메뉴는 아직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