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멕시코 음식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몇 번씩 시켜먹을 만큼 좋아한다. 고기와 치즈를 듬뿍 넣은 쌈이라니, 도저히 맛없을 수 없는 조합이잖아. 하지만 늘 아쉬운 점은 한국에서는 멕시코 음식이 흔히 먹을 수 있는 값싼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멕시코 음식 전문 프랜차이즈는 웬만한 패밀리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식대가 많이 나오는 편이며 프랜차이즈가 아니더라도 멕시코 음식점은 힙한 외식장소이다. 현지인 멕시코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물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뉴욕보다 멕시코 음식만큼은 한국이 더 비싸다.
물론 뉴욕 어딘가 펜시한 멕시코 음식점이 있을지 모르고 임대료까지 반영된 그 집 음식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비쌀지 모른다. 하지만 멕시코 이민자가 많은 뉴욕에서 멕시코 음식은 푸드트럭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값싼 음식이었다. 값싸고 흔하지만 맛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전국의 모든 맛집이 서울에 있는 것처럼 전세계 모든 맛집은 뉴욕에 있다. 절대로 웬만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문득 예쁘고 고급진 한국식 멕시코 음식 말고 뉴욕의 길거리 멕시코 음식이 그리워 야매로 한 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먼저 양파 1/4, 피망 한 개, 양배추는 조금(양파 양과 같거나 그보다 적게, 없으면 생략), 소시지를 채 썰어서 볶는다. 순서는 양파, 양배추, 피망, 소시지 순서로. 어차피 에어프라이어에 한 번 더 구울 거라 귀찮으면 한꺼번에 다 볶아도 상관없다. 그리고 굴소스 한 스푼 넣고 15초만 더 볶아준다.
토르티야에 모차렐라 치즈-체다치즈-볶은 야채와 소시지-다시 모차렐라 치즈-다시 토르티야 순서대로 잘 쌓아준다.
에어프라이어 180도로 8분만 구우면 끝. 비주얼만은 뉴욕 길거리 음식보다 고급지고 맛은 뉴욕 길거리 음식만큼 친근하지만 이국적인 맛이다.
벌써 4년 전이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뉴욕에서 꾀죄죄한 몰골로 거리를 헤매고 있었지만 이래 봬도 난 세계 금융의 중심이라는 월스트리트에서 출장 중인 비즈니스 우먼이었다. 뉴욕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출장 일정이 끝나서 홀가분하게 뉴욕을 즐기기엔 너무 피곤하고 너무 추웠다. 솔직한 속마음은 호텔로 돌아가 쉬고 싶지만 여기까지 와서 일만 하다 돌아갈 수는 없잖아. 뮤지컬도 한 편 봐야지. 라이언킹을 예약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한 끼 거하게 먹는 것이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에 웬만한 레스토랑은 전부 풀 부킹이었다. 아니면 나의 꾀죄죄한 몰골 때문에 문전박대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꺼운 패딩으로 몸을 감싼 이 동양 여자는 눈까지 맞아서 몰골이 말이 아닌 데다 혼자서 식사를 하겠다고 하니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반길 만한 손님은 아니었다.
그렇게 문전박대를 당하다 보니 춥고 피곤하고 이제는 배까지 고프다. 20만 원이 넘는 뮤지컬 티켓을 포기해 버릴까 고민도 된다. 하지만 호텔로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 일단 배가 너무 고프다. 뭐라도 먹어야겠는데, 차가운 샌드위치는 죽어도 먹기 싫다. 그 순간 한 부부가 운영하는 푸드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맞나 싶게 어눌하였던 그들에게서 받아 든 그날의 치킨 퀘사디아는 나의 인생 퀘사디아이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뉴욕 길거리에서 테이블도 없이 순식간에 한판을 다 먹어 버렸다.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은 추억의 팝업창이 되어준다. 야매로 만들어낸 음식을 내밀며 말하긴 부끄럽지만, 좀 오버하자면 나는 오늘 함박눈 쏟아지는 뉴욕의 거리를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