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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Apr 01. 2020

저녁 7시,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4

아쉬운 사람이 을

부산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 중 하나인 곳.
그 동네에서도 큰길가가 아닌 어느 구석탱이에 테이블이라곤 세개밖에 없는 아주 옛날식 분식점이 있다.
간판도 없고 주차도 힘든 이 분식점의 공식메뉴는 딱 두가지.
김밥이랑 열무국수.


가끔 메뉴에 없는 칼국수와 떡국도 번외로 파실 때가 있다는데 풍문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먹어 본 적은 없다.
하긴 공식메뉴인 김밥과 열무국수도 늦으면 못 먹을 수 있다.
봄날이 계속되다 어느 하루 기온이 뚝 떨어지던 날, 그렇게 맛있다고 소문난 칼국수를 한 번 먹어보고 싶어서 사장님 기분을 살폈다.
눈치보며 조심스럽게 열무국수 하나, 칼국수 하나 시켜도 되나요 물었더니,
"뭐라카노 똑띠 크게 말해라."
다시 한번 또박또박 열.무.국.수. 하나, 칼.국.수. 하나 이렇게 시켜도 되나요하며, 되나요는 자신없게 끝을 흐렸다.
"칼국수 읎다. 안한다."
그럼 열무국수 두개요 하고 얼른 앉았다.
"칼국수 안한다. 여기 아재들이 을매나 좋아하는데, 근데 안하기로 했다. 이제 안해."
네네 하며 살얼음 가득한 열무국수를 그릇째 들고 들이켰다.
국물 남기면 사장님한테 혼난다.
여기 사장님은 불친절하기로 유명하시다.
오죽하면 구글맵 정보에도 사장님이 불친절하다는 리뷰가 남겨져 있다. 말을 툭툭 던지시니 타지 사람들은 놀랐을지 모른다.



그런데 사장님, 말씀 저리하셔도 마음은 약하시다.
나름 오픈 주방. 여기저기 손님들에게 호통치시더니 쭈뼛쭈뼛 말을 이어가신다.
내가 통장에 돈이 안모이니까 자꾸 짜증이 난다. 국수값을 올려야 되는데 올리지도 못하고...이게 그냥 국수가 아이라, 이 국수국물은 보약이지. 얼마나 재료가 많이 들어가고 이거 만드는게 보통일인줄 아나...팔수록 나는 손해다 아이가....이리 만들어줬는데 국물을 남기고...국수 이렇게 만들어주는 데가 어데 있나? 이리 좋은 거 다 안먹고 남기면 내가 가르치 줄라고...그러믄 손님들은 돈냈는데 왜라지...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았지만 국물 남김없이 쭉 들이켰다.
그릇 반납해 드리자 사장님 민망하게 웃으시며
일부러 다 먹었재 하신다.
아니요, 맛있어서 다 먹었어요.
사장님, 국수값 올려받으셔도 돼요.
국물 버린다고 혼내셔도 되구요.
많이 팔고 부자되세요.




못 사먹은 칼국수는 직접 끓여보자.
시원한 해물칼국수로.
해물을 다듬는 게 보통일이 아니므로 대형마트의 해물탕 키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구성품과 원산지 확인은 필수!
해물탕 육수와 딱새우, 오징어, 곤이만 쓰고 나머지는 해물된장국이나 해물라면에 쓰기위해 소분해서 다시 냉동실로.
육수에 다진 마늘, 감자, 양파, 곤이만 넣고 끓여준다.
칼국수면은 다른 냄비에 따로 끓여내어 찬물에 한번 씻어줬다.
면을 육수에 같이 넣고 끓이면 국물이 걸쭉해지고 해물의 시원한 맛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딱 먹기좋은 면발보다 10프로 남겨두고 삶긴 면은 찬물에 담갔다가 국물과 다시 끓여준다. 이때 딱새우, 오징어, 호박을 같이 넣어 한소끔 끓여준다. 비린내 잡는 청주 한 스푼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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